말하는 감자

인턴 1일 차

by 차열음

방송국 인턴 첫날이다. 여기 인턴 첫날이 되어서야 자신이 가장 싫어하고 못하는 일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바보가 있다. 그녀가 업무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지원한 것일까? 아니다. 거기에는 분명 '라디오 제작 보조'업무, 그러니까 그녀가 바라던 업무가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프리미어 프로와 포토샵을 다루는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 업무로 배치되었다. 물론 이 중에서 다룰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인사 담당자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팀장님께서 자소서를 잘 못 읽으신 것 같단다. 입사 포부에 '프리미어 프로 자격증을 따서 -를 하겠다.'라고 쓴 것을 '땄다.'로 이해하신 것이다. 덕분에 그녀는 정말 말하는 감자가 되었다. 이 부서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기 말라 비틀어진 커피 방울이 되고 싶다.'




그녀의 퇴근길은 유난히 추웠다. 그녀의 자존감이 이미 흩날린 재가 되어 불씨조차 남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맥북으로 한/영 변환을 할 줄 몰라 대리님께 도움을 받고, 창 조절도 할 수 없어 폰으로 몰래 '맥북 신호등 버튼' 따위를 서칭해야 했던 고단한 하루에 그녀는 정말 울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제 그녀는 '으른'이었다. 씩씩하게 이겨내야만 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그녀는 서점에 들러 포토샵과 프리미어 프로 책을 샀다. 아무도 그녀에게 뭐라 하지 않았지만 혼자서 온갖 부담과 압박을 받는 그녀의 이상한 성격은 결국 오늘 밤을 뜬 눈으로 지새게 만들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녀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처음에는 평균보다 현저히 뒤떨어졌으나 앞선 그 '이상한 성격'이 그녀를 채찍질하면서 종국에는 좋은 성과를 내곤 하는 것이다. 그건 모두 피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기에, 그녀는 그 과정들이 영 달갑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바퀴벌레 같은 질긴 성격을 믿어보기로 다짐한다. 내일은 부디 팀장님이 드신 생강차의 찌꺼기 역할만이라도 할 수 있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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