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찬실이는 복도 많네."
바야흐로 욕망의 시대다. 사람들은 남보다 더 많이 가지길 원하고, 더 좋은 것을 가지길 원한다. 어제보다 더 좋은 옷을 입길 바라고, 어제보다 더 나은 집에 살길 바라고,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길 바란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성공보다 실패에 가까워서, 진이 빠지게 뛰어도 매 순간 좌절해버리기 일쑤다. 영화 속 찬실은 그러한 버거운 삶을 살아내는 모든 이들을 대표한다. 많은 것을 빼앗기고, 처절히 짓밟혀도 내일은 다시 일어나 내일의 하루를 살아내는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잘 살고 있다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2019)>는 천천히 한 여성의 삶을 따라간다. 주인공 찬실은 올해로 마흔이 된 영화 PD다. 새 영화 제작이 확정되고 한창 들떠 있던 그때, 찬실은 가장 큰 위기를 맞이한다. 평생 함께 일할 줄 알았던 지 감독이 심장마비로 죽어버리면서, 영화 제작이 전부 무산된 것이다. 이래저래 찬실은 영화사에서도 해고되며 순식간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그녀는 급한 대로 달동네의 단칸방을 얻어 그곳에서 몸을 누인다. 그 후 찬실은 가장 친한 배우였던 소피의 집에서 가사를 도우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찬실은 그래도 여전히 꿋꿋하다. 이까짓 실패쯤이야 별 것 아니라는 듯이. 그리고 그녀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사랑을 찾아낸다. 소피의 집으로 불어 과외를 오는 김영으로부터.
집으로 돌아온 찬실은 집주인 할머니와 함께 콩나물을 다듬고, 그녀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그리곤 별 거 아닌 대화에 실없이 웃다가, 방으로 들어와선 제 방에 사는 귀신 ‘장국영’과 마주한다. 찬실을 지긋이 바라보던 장국영은 그녀에게 말한다.
당신 멋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봐요.
찬실은 그에게 자신의 고민거리를 나누고, 제 감정을 솔직히 털어낸다. 장국영은 때때로 찬실을 다그치다가도, 그녀를 달래고 위로하며 그녀의 곁에 남는다. 이후에 찬실이 김영으로부터 차이고 나서도, 장국영은 그녀의 마음을 위로한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속에도 모두 장국영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상처 받은 나를 어르고 달래줄 어릴 적 나의 순수했던 마음. 장국영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건, 그 순수했던 마음을 잘 간직하고 있으라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찬실은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심지어는 사랑도 잃었지만 참 ‘복’이 많다. 조금 정신없고 어수룩하지만 착한 친구 소피, 그녀에게 흔쾌히 밥 한 상을 내어주는 집주인 할머니, 그리고 그녀의 사랑은 거절했지만 여전히 곁에 남아 있는 김영까지. 벼랑 끝에 내몰린 여자의 삶에서 희망이 보이는 건 이 시대가 가진 아이러니다. 우리는 왜 행복의 기준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었을까? 영화 속 찬실의 삶은, 영화를 보는 우리의 삶에도 돌이켜보면 수많은 복이 남겨져 있었으리라는 일종의 찬사이자, 희망가다. 여전히 꿋꿋이 오르막길을 오르는 찬실처럼, 내일도 꿋꿋이 살아내기를. 우리의 삶에는 참 복이 많기도 많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