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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이 Sep 29. 2021

실패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이제 곧 대학에 입학하는 아들을 둔 40대 가장, 브래드. 대학 시절 친구들은 전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는 아직도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불안정한 삶을 산다. 왜 이렇게 됐을까. 지나치게 쉽게 만족하는 아내 때문일까? 그래서 현실에 안주해버린 걸까? 아니면 자신 때문에? 고민해보지만 쉽사리 답은 나오지 않고, 오히려 그럴수록 자기 비하와 후회의 늪에 빠져들 뿐이다.


브래드는 자신이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믿어왔다. 끊임없이 1%의 삶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었는데' 생각하고, 때로는 '신념을 팔아 부자가 된 그들'과 자신은 다르다며 자신의 도덕성을 높게 평가한다. (전부 합리화일 뿐이라는 것을 그 자신도 알면서 말이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과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을 생각하며, 현재의 자신을 끊임없이 억누른다. 20대의 그는 세상을 사랑하고, 이상을 꿈꾸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자신이 지금의 실패한 인생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허무맹랑한 꿈이, 돈 한 푼 되지 않는 비영리사업을 하고 있는 40대 가장의 삶을 그려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가 동경하고 있는 성공한 친구들의 삶도,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적이고 때로는 추악할 뿐이다. 그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누렸지만, 그중 누군가는 마약 중독자에 알코올 중독자이고, 누군가는 사업이 망한 뒤 쫓겨다니는 처지이며,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잘난 체만 하는 성차별주의자 교수로 비춰진다. 삶을 언제나 이중적이다. 성공한 삶이 다른 면에서는 그리 화려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은 실패했다고 믿는 브래드의 삶이, 누군가의 눈에는 아들을 성공적으로 키워낸 아버지로 보일 수도 있는 것처럼.


난 나를 추켜세우거나 비하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렸다.


열등감은 누구에게나 있다. 누군가는 그걸 부끄러워하고, 누군가는 그걸 밖으로 표출해내기도 하지만 그 여부와 관계없이 열등감은 자신과 남을 비교할 때 언제나 쫓아오기 마련인 당연한 감정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듯이, 그러한 감정으로 자신을 너무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또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기 위해 지나치게 추켜세울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고, 우리의 삶은 우리의 생각대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성공했다고 믿으면, 삶은 그 자체로도 이미 성공한 삶이다. 거기에 굳이 타인의 평가를 얹을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확실하게 실패한 삶은 없다. 자신이 실패했다고 믿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우리는 모두 그 나름대로의 삶을 살고, 그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뒀다. 그렇게 믿으면 그러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브래드는 자신의 젊음을 사랑했고, 그 시절 자신의 이상을 사랑했으며, 그는 아직도 세상을 사랑한다. 그의 곁에는 자신을 닮은 아들이 있고, 쉽게 만족하는, 그래서 매 순간 행복을 주는 아내가 있으며, 언제든 돌아갈 집이 있다. 그래서 그의 삶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여전히 괜찮다. 한순간도 그의 삶은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영화의 제목은 너무나도 적절하다.


우리는 오늘도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삶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이왕이면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으면 좋겠다. 사실이 이미 그러할 테니까 말이다.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거라고 자신에게 말해주는 하루가 됐으면 좋겠다. 우린 여기 살아있고, 세상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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