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다

사장은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깼다. 우리는 어디로 흘러갈까?

by 숨니


2025.08.04 - 2025.08.08


'우리 거 하면 어떨까?' 광고 대행사에서 10년 쯤 일하며 상상만 했던 우리 거. 그 '우리 거'를 하려고 기획 회사를 차렸다. 사업이라는 거창하고 무거운 과업 앞에 발을 디딘 첫 주. 홍남기획은 과연 어디로 흘러갈까? 결론이 뭐가 되었든 일생일대의 경험이 될테니 흘러가는 소중한 시간들을 글로 기록해두기로 했다.




이직이 빈번한 광고업계, 그것도 한 회사만 인턴부터 팀장까지 10년을 다니던 우리는 재미보다 갈증에 허덕이는 날이 더 많았다. 머리가 커서일까? 조직은 이렇다는 걸 알고 난 다음부터일까? 재미 한방으로 상쇄되던 일의 고단함은 풀릴 생각 없이 계속 쌓여만 갔다. 그렇게 나는 올해 초 퇴사를 했고, 몇 개월 뒤 기다리던 프로젝트가 빠그러진 어느 날 진이 퇴사 결심을 알렸다. 나는 퇴사 후 깍두기 명함 100장을 뽑아 여기저기 껴서 재밌는 프로젝트를 하는 일명 '깍두기 프로젝트'의 50번 언저리 명함을 소진할 때였고, 깍두기라는 타이틀의 ‘비겁함’ 대해 고민이 많을 때라 아싸 잘됐다 싶었다. 혼자는 외롭고 둘은 즐거운데 심지어 진이라니. 천하무적이다. (진과 나는 서로의 번호를 홍무적, 남천하로 저장해뒀다)


7월 말, 진행하고 있었던 깍두기 프로젝트들이 모두 끝나고 진지하게 우리의 NEXT를 설계하는 워크숍을 가졌다. 어떻게 돈을 벌지 이전에 어떤 기획을 하고 싶은지, 어떤 기획자가 되고 싶은지. 어떻게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지, 회사에서는 채우지 못한 갈증을 이 소중한 시기를 활용해 어떻게 채울지를 고민했다. 회사에 필요한 역할을 나눌 때는 나는 작은 돈 관리하는 총무, 진은 큰돈 관리하는 재무라는 엉뚱한 역할 배분을 하면서, 어떤 기획자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나는 빛을 보지 못한 가치 있는 구슬을 발견해 꿰어주는 사람, 진은 생각에만 머물러있는 것을 손에 잡히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라고 꽤 멋지게 스스로를 정의했다. 사업의 원대한 목표는 사업이 잘되어서 아이를 비슷한 시기에 낳고 아이를 봐주는 선생님을 옆에 두고 일하는 것으로 정했다. 파이어족을 꿈꾸는 시대를 거스르는 워커홀릭 정신(?!) 아자아자!


워크숍을 끝내고, 진득하게 고민할 공간이 필요해 오피스를 계약했다. 호텔 예약하듯 일사천리로 계약. 진이랑 의견을 조율할 때 가장 좋은 점은 서로의 제안에 싫다는 이야기보다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는 것. 그 좋다는 말이 으레 하는 대답이 아닌 흔쾌함이 상대에게 전해지는 말이라는 것. 그리고, 마냥 좋다기보다 마음에 남은 작은 의문을 서로 던져주고 현명한 답에 가까워질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의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이 생겼다. 퇴사를 하고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적자는 내지 말 것'이라는 내 안에 원칙이 있었다. (사실 사장이 되지 않겠다는 원칙도 있었기에 임시 타이틀을 '깍두기'로 두었었다) 그래서 오피스 계약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집세를 두배로 내는 거니까? 그런데 시간도 돈이라고, 어쩌면 지금은 돈보다 더 귀한 게 시간이라고 생각한 다음부터는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건강을 위한 PT, 특별한 경험을 위한 여행에는 그렇게 아낌없이 투자하면서 일은 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했을까? 일을 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일을 하는 게 이렇게나 즐거운 사람인데 말이야.


진이랑 '홍남기획' 도장을 파고 나오는 길. 결혼도 사업도 결국 어제오늘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저 이 종이 한 장에 도장 찍는 거 하나로 어떤 큰 책임감의 선을 넘는 것 같다는 말을 했는데 그 선을 우리가 넘었다니. 이번 주 세무서에 가서 코드 책자를 뒤적이며 '사업자' 타이틀을 달았다. 신고서를 작성하는 작은 테이블, 누군가는 폐업신고서를 작성하고 누군가는 발급신고서를 작성한다. 자영업자 폐업기사가 연일 피드에 오르내리는데 이 와중에 샘솟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광고를 30년 넘게 하신 어느 광고회사 대표님께서 우리에게 선뜻 프로젝트를 제안 주셨을 때, 처음에는 재미있게 듣다가 이야기가 진지하게 되어 이런 질문을 했었다. '대표님, 그런데 저희 아세요? 저희 실력을 모르실 텐데 왜 이런 제안을 주시는 거예요?' 대표님 왈. '공기요. 기운이 좋아요' 그렇지, 우리는 기운이 좋지. 인생은 기세지.


진과 우리가 지향하는 기획의 방향성, 우리가 일을 하는 마음을 명문화했다. 10년간 일하면서 언제 가장 짜릿했는지, 보람 있었는지 반대로 좌절감을 느꼈는지, 하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꼈는지를 이야기하며 우리의 기획방향을 잡았다. 공통적으로 뽑은 세 가지는 고객이 우선인지, 우리만의 새로움이 담겨있는지, 그래서 고객에게 정말 의미 있는 경험을 주었는 지다. 생각과 말로 하는 컨설팅과 직접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실행은 천지차이라고 생각하는데 세 번째는 결과에 대한 책임이 담겨있다. 작성한 내용들은 머리와 마음으로는 늘 품고 있는 중요한 가치들이지만 대행업의 한계로 해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 이제 진짜 실현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설렌다.


홍남기획이 일을 하는 마음. 홍남기획은 정말 고르고 싶지 않은 이름이었다. (홍남기획을 작명하신 전 직장동료가 정말 그 이름으로 했는지 물었다.) 그런데 한번 들으면 모두 기억하는 이름이라 결국 이렇게 되었다. 이름을 걸고 진정성 있게 일한다는 군더더기 없는 정직한 의미, 설명이 필요 없는 우리가 일을 대하는 마음이다. 브랜딩은 이름값을 만드는 일이라고 하는데, 홍남기획은 그 이름부터 사명감을 담았으니 출근할 때마다 보이는 명패가 우리를 채근하지 않을까? 두 번째는 즐겁게 하기. 즐겁지 않으면 '이유를 찾고 제거한다'로 썼다가 ‘인정하고 극복한다'로 바꿨다. 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제거할 수 없는 게 사업이고, 결국 극복의 연속일 테니. 그 외에도 우리의 교만함을 잡아주는 촌철 같은 말들을 써두었다. 일은 머리로 하는 것 같지만 마음으로 할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걸 믿는다. 우리의 마음도,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도 우리답게 잘 헤아리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첫 번째 기획 아이템. 3년 전 일에 대한 갈증이 극에 달았을 때, 진과 생전 처음 가보는 6호선 저 끄트머리 동네 에어비앤비를 빌려서 워크숍을 했었다. (참.. 성장에 대한 욕구가 대단했다) 각자에 대한 SWOT분석을 포스트잇에 적어 벽에 붙여두기도 하고, 우리가 만약 사업을 하게 된다는 가정을 하고 사업 아이템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때 이야기했던 내용 중 한 꼭지가 '부모님'에 대한 거였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가게일로 집에 안 계신 아빠한테 매일 아침 등굣길 전화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그게 회사 출근할 때까지 루틴이 되었다. 그런데 웬걸. 세상에 나만 그런 딸인 줄 알았는데, 퇴근길 엄마한테 전화하는 진을 보고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각자의 부모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겠지만 자칭 효녀인 우리는 부모님 세대를 위한 무언가를 기획하고 싶었다. 그 페이지를 3년이 지난 다음 이어가기로 했다.


대한민국 국민 5명 중 1명은 65세 이상. 가장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나라. 진이랑 오피스 계약한 날 빕스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우리 주위를 둘러싼 모든 테이블에 사람들이 어르신들이라 놀랐는데 정말 초고령화 사회가 맞구나. 우리는 시니어에게 어떤 고정관념을 갖고 있을까? 혹시 이런 언어가 역으로 시니어에 대한 편견을 만든 건 아닐까? 지금 이 분들에게는 어떤 게 필요한 걸까? 본인들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한 마음이 있는 건 아닐까? 질문을 주고받으며 주변에 있는 시니어의 모습을 어렴풋이 그려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회사에서는 제안 기간이 짧고, 동시에 돌아가는 프로젝트가 있기도 해서 깊이 있게 고객을 고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하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생각이 깨고 더 깊게 공부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기획을 하고 싶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기획을 하고 싶다. 진심으로.


퇴사를 한다고 하니 불경기에 퇴사를 한다는 주변의 걱정, 이제 사업을 한다니 주변에서 비즈니스 조언들이 들린다. 뭐든지 초짜에게는 걱정 어린 시선이 따르는 법이니까 감사한 일이지만 그 걱정이 없던 불안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퇴사를 하고 나니 불안했던 밥벌이는 아무런 걱정이 아니었고 (밥은 누구보다 잘 먹는다) 오히려 새로운 환경에 맞는 예상치 못한 고민들을 무방비로 마주해야 했다. 사업도 마찬가지 아닐까? 대비하지만 언제든 소나기 같은 시험에 빠지게 될 운명이라는 것. 사업자를 개인으로, 법인으로 낼 지 고민할 때 모든 사람들, 심지어 챗GPT조차 세금 측면에서 조언을 해줬다. 당장의 예상되는 매출이 없는 우리에게는 크게 의미 없는 조언이었다. 그러던 중 한 대표님이 ‘회사가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지향점’을 기준으로 선택하라고 이야기해 주셔서 생각이 트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조언이었다. 결국 각자의 환경에서 부딪혀야만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매 순간 경험하면서 느낀다. 그래서 조언은 조언으로 받고, 우리의 선택으로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실패에도 배우는 게 있으니 해야 하는 건 과감하게 발을 디뎌보는 것.


출근하고 맞는 첫 번째 금요일. 이제 일주일이 지났다. 지금의 환경이 가장 좋은 건 회사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시간의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 그리고 함께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머리를 맞대어 고민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걸 알기에 앞으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즐겁게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는 시간들로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다. 의미 있는 일을 재미있게 하다 보면 돈은 따라올 테니, 재밌게 푹 빠져서 해봐야지! 귀한 시간이 지나가는 게 아쉬워 진과 매주 한 편씩 글을 남겨두기로 했다. 누가 볼지는 모르겠지만 무모한 도전을 한 번쯤 꿈꾸는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길 바라며. 용기를 받은 누군가가 또 홍남기획에 용기를 전해주길 바라며.


WEEK1 포토덤프





매주 금요일 그 주를 회고하고, 브런치를 통해 날 것의 생각을 기록합니다.

격주로 숨니와 진, 둘의 글을 일부 발췌해 뉴스레터로 발행합니다.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weareghongnam.stibee.com/


keyword
작가의 이전글뒷담화는 됐고 진짜 '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