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감수성에 왜 '나이 감수성'은 포함하지 않았나?
2025.08.18 - 2025.08.22
'우리 정도면 그래도 효녀 아니니?'
이번 주는 이 말을 다시 주워 담고 싶어 질 만큼 부끄러운 한 주였다. 시니어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우리는 편견 덩어리였고, 효녀의 탈을 쓴 '나이 차별주의자'였다. 평소 자연스럽게 썼던 말들, 배려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정작 누군가에게 '나이'라는 잣대로 선을 긋는 행동일 수 있겠다고 깨달은 한 주. 광고를 만들 때 늘 조심하고 또 조심했던 성 감수성, 소셜 감수성에 왜 '나이 감수성'은 고려하지 않았지? 반성과 배움의 한 주.
광고 회사에서 일할 때 맡은 프로젝트 50% 이상의 MZ가 타깃이었던 터라 매일 지금 핫한 게 무엇인지, 유행하는 밈을 못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닌지, 즉 ‘트렌드’ 쫓기가 일의 시작이자 루틴이었는데, ‘시니어’라는 주제를 잡고 공부를 시작하니 새로운 문이 열린 한 주였다. 홍남기획은 뭐해요?라는 말에 아직 브랜드의 형태가 구상된 건 아니라, ‘시니어’와 관련된 어떤 걸 해보려고 한다고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 뒤에 매번 이야기했던 ‘시니어에 관심이 많아서요’라는 말이 부끄러워지는 한 주였다. 과연 우리는 시니어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게 맞았을까? 그저 부모님을 보며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다’라는 어쭙잖은 위선을 관심으로 착각한 건 아닐까.
우리는 선량한 ‘나이’ 차별주의자 일지 모른다
뜬뜬 유튜브 채널에 나오는 영상을 보는데, 이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었다. 예전에 패밀리가 떴다라는 예능이 있었는데 남녀가 한방에서 자고 그러는 예능이 있었다는 게 지금 보면 뜨악스럽다고. 그렇지, 성감수성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 인종차별, 성차별, 더 나아가 광고에 부부가 나오는 장면에 여자만 요리를 하면 부정 여론이 한가득한 예민한 시대에 우리는 왜 ‘나이’에 대해서는 왜 차별하고 있다고 인지하지 못했을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노화 앞에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쉽게 던지는 말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무력하게 하고 있나. 그리고, 그런 말들이 자연스럽게 관념화되어 스스로의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나. 배려 또한 예의를 차리는 선량한 사람이라는 자아도취일 뿐 시니어들에게는 하나의 차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우리 안에 있는 편견부터 깨기로 했다. (매일 아침 어제 본 콘텐츠에서의 나이 차별 발언을 나누며 시작한다.)
도움 받는 사람도 좋아하는지 물어봤어?
도움을 준다는 말에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나눠져 있다. 시니어를 공부하면서 가장 생각이 많이 바뀐 부분은 ‘그들은 도움을 환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돌봄의 대상, 수혜자라는 낙인 자체가 그들을 약자로 보고, 힘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선이가 키오스크 앞에서 어려워하는 어르신에게 선뜻 도와드릴까요? 했다가 그렇게 반기지 않는 눈치라 당황했었다는 경험을 들려주었다. 아마, 그분은 도움 없이 하고 싶었을 텐데 ‘도와드릴까요?’라는 한마디로 상대를 디지털 약자로 만들어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을 바꿔보니 시니어를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이 어떻게 보면 지극히 주는 사람 입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돕지 않아도, 위하지 않아도 우리의 제품으로 자연스럽게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가치는 가치를 받는 사람이 정한다
방향이 좁혀지고, 국내외 사례를 디깅 하는 중이다.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꾸준하게 고민해 온 플레이어들이 있어서 놀랐다) 국내 케이스들도 좋은 취지와 인사이트를 가지고 이미 몇 년 전부터 사업을 꾸려가는 분들이 많아서 영감이 되었다. 대부분 젊은 분들이 창업자라 동질감도 들고,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그중에서도 진정성 있어 보이는 몇 개의 브랜드를 깊게 디깅 했는데, 생각보다 발신하고 있는 가치와 실질적인 프로그램이 매칭되지 않는 게 아쉬웠다. 젊게 사는 법, AI와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법 등 시니어의 삶에 대한 존중보다는 ‘주류 문화’를 쫓아가는 법을 시니어의 눈높이에 맞게 알려주는 것들이어서 (실제 타깃인 시니어 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그 부분이 기대와 달랐던 것 같다. 홍남기획의 기획 지향점을 명문화할 때 가장 우선순위에 ‘우리의 기획이 정말 고객에게 의미했는 경험을 주었는가?’를 두었다. 우리만 멋지고 좋으면 의미 없다. 가치는 선언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고객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 진짜 변화가 생겼을 때 의미가 생긴다. 케이스를 찾고 의미 있는 포인트를 나누고 서로서로 ‘왜’라는 질문을 100번씩 묻고 답하며 우리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선명해져 가는 느낌이 든다.
임영웅과 영웅시대라는 커뮤니티
케이스를 찾다, 문득 대한민국 중년 여성들의 삶을 바꿔준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이름값 제대로 하는 사람. 임영웅. 자녀들에게는 엄마가 아빠만큼 좋아하는 연예인이라 ‘새아빠’라는 별칭이 있다고 한다. 영웅시대 팬덤의 화력, 미담은 여러 차례 뉴스에서 봤던 터라 익히 알고 있었는데 그 힘의 원천이 궁금했다. 노래가 좋아서? 가수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 이유만으로 이렇게 견고한 팬덤을 만들 수 있다고? 영웅시대의 팬은 다양한 연령대 중에서도 5060 세대의 비중이 높다. 그들의 삶을 돌아보면 사회 활동의 주축에 있었다기보다 가정 중심의 생활을 했고, 대중문화에서도 소외된 그룹이었다. 다만, 교회, 동창회, 부녀회, 반상회 등 늘 커뮤니티 활동을 즐겨하던 분들이다. 자녀의 독립, 부모 부양의 종료와 더불어 삶의 중심이었던 가정의 공허함을 느끼는 빈집 증후군 앓는 그녀들에게 ‘영웅시대’는 정서적 연대, 소속감을 주는 21세기형 공동체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임영웅이라는 사람의 서사와 그 서사를 지지하는 팬덤의 선한 영향력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니, 하나의 자부심이 되었을 것이다. 임영웅 유튜브 게시물은 조회수는 50만 정도인데 댓글은 3천 개를 웃돈다. 댓글 하나하나가 정성스럽다. 그녀들은 영웅시대안에서 소속감과 성취감을 누리며 건강한 노후를 살아가는 원동력을 얻고 있는 게 분명하다. 요즘 시대에 발맞춰야 하는 의무감이 아닌, 내가 좋아해서 스트리밍을 배우고, 굿즈를 사고, 티켓팅을 하며 디지털 기술과 가까워진다. 고립되지 않고 가정 밖에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친목을 쌓는다. 도우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돕는다는 건 이런 거 아닐까. 큰일하는 영웅님. 내가 상을 줄 순 없으니 유튜브 구독 버튼을 눌렀다.
아침에 눈을 뜨고 싶은 이유가 있나?
재미있는 단어를 찾았다. 이키가야. 세계 몇 대 장수마을 중 하나가 오키나와인데 그곳 사람들의 삶에는 ‘이키가이’라는 정신이 스며있다. 이키(삶), 가이(가치)의 합성어인데 사는 이유, 사는 보람과 같은 의미다. ‘오래 살아서 뭐 해 자식에게 짐만 돼지’와 같은 말을 자주 하는 시니어들에게 꼭 필요한 말 아닐까. 이키가이의 핵심은 그 이유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화분에 물을 주기 위해, 예쁜 꽃을 보기 위해, 햇살을 맞기 위해와 같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삶의 이유가 된다면 내일 아침 눈을 뜨는 이유가 된다. 월요병을 겪는 직장인이 고민해봐야 할 질문이 ‘내가 오늘 회사에 가야 하는 이유’라면, 인생의 끝자락 무기력을 겪는 모든 사람들이 고민해봐야 할 질문이 여기 있다. 개념이 재밌어서 절판된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두었다. 주말에 읽어봐야지.
관심에서 학습의 단계로 가는 시간. 우리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분야에서 알고 싶은 분야가 생기고 하고 싶은 기획의 아웃라인이 그려지고 같이 ‘재밌겠다!’라고 외치는 짜릿함. 어느 정도 아이템이 구체화되면 시니어들이 모여있는 이런 곳에 가볼까, 이런 사람들을 만나볼까 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결국에는 고객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니까. 여전히 겉핥기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경계하고, 생각을 연결해보며 막연한 그림을 선명화 해가고 있다. 진득하게 공부를 하다 보니 삶에서도 ‘시니어’라는 하나의 필터를 씌워 세상을 보게 된다. 출퇴근길 버스, 지하철에서 만나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괜히 귀 기울이게 되고, 광고에 나오는 시니어 모델과 제품이 다시 보인다. 마이클 아이스너라는 전 디즈니 CEO가 창립한 재단이 있다. 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세대간의 연결과 관련한 프로젝트 후원을 오랜기간 해오고 있다. 언젠가 우리의 일도 확장되어 사회에 선한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큰 꿈을 품어본다. 다음 주에는 또 어떤 새로운 생각이 열릴까? 기대중! 재밌다!
매주 금요일 그 주를 회고하고, 브런치를 통해 날 것의 생각을 기록합니다.
격주로 숨니와 진, 둘의 글을 일부 발췌해 뉴스레터로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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