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자 하는 길에 더욱 책임감 있게 진정성 있게 다가갈 다짐
2025.09.01 - 2025.09.12
아빠께 부치지 못한 편지
아빠를 보내드리는 날부터 일기예보가 매일 비였다가 맑음으로 바뀌는데 아빠가 예쁜 하늘로 바꿔주시나 하는 생각을 해요. 괜히 하늘도 구름도 자주 보게 되는 요즘이에요. 아침마다 집을 나서면서 습관적으로 아빠에게 전화하려다 휴대폰을 다시 꽉 쥐어요. 앞으로는 그럴 때마다 슬퍼하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볼게요. 처음에는 혼자가 된 것 같아서 무섭고 겁이 났는데 주변에 가족 같은 좋은 사람들이 많이 생겨 다행이에요. 사랑 많은 아빠를 닮아서 사랑 많은 사람으로 자라 그런 사람들이 곁에 많은가 봐요. 그래서 잘 먹고 잘 웃고 씩씩하게 일상으로 돌아왔어요. 계속 잘 해낼 수 있게 지켜봐 주세요. 늘 곁에 계신다고 생각하고 잘 살게요. 아빠 딸 호랑이답게. 10월에 예쁜 사진 출력해서 뵈러 갈게요! 애교 없는 딸이라 태어나서 열 번을 못해본 말 같은데, 사랑해요 아빠. 편안히 쉬세요.
전화를 걸어도 받아 줄 아빠가 없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2주 전만 해도 이런 글을 쓰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장례를 치른 지 2주가 지났는데 그 시간이 꿈만 같다. 거짓말 같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여느 때와 같이 출근길 아빠께 전화를 했는데 신호만 오래가고 받지 않으셨다. 평소에도 그런 적이 자주 있었지만 최근 건강이 안 좋으셔서 괜히 신경이 쓰였다. 제주에 있는 오빠에게 퇴근하고 가게에 가보라고 이야기하고 해외 출장 전 제주에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진선이에게 말하고 비행기를 끊었다. 그런데 너무 늦었다. 아빠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떠났다. 서울에 올라와 산 지 10년, 1년에 많아야 세네 번 정도 제주에 간다. 제주에 있을 때도 아빠는 늘 가게에 계셔서 혼자인 게 익숙한 나는 마음속으로 달라진 건 없다고 스스로 최면을 건다. 철없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아빠가 그 자리에 계속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아무것도 달리진 게 없다고 느껴졌다. 일상으로 돌아와 밥도 잘 먹고, 웃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살민 살아진다’라는 말처럼 정말 살아지는구나. 그런데 그 마음이 한 번에 무너졌다. 나도 모르게 집을 나서면서 습관적으로 아빠 번호를 누르려다가 멈칫. 아, 이제 전화를 걸어도 받아줄 아빠가 없구나. 밥 먹었는지 묻고 아프면 병원 가라고 해 줄 아빠가 없구나.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괜찮다가도 이렇게 전화를 걸어도 받아 줄 아빠가 없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계속 무너지겠지. 한참을 또 울었다.
귀한 딸이라는 말이 부끄러웠다
장례식장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뵌 적 없었던 아빠 친구, 아빠 가게 손님, 친척 분들 모두 나를 모고 ‘아빠한테 수민이가 참 귀했는데’, ‘그렇게 수민이를 자랑스러워했는데’, ‘호랑이가 최고였는데’라고 하셨다. (아빠는 나를 호랑이라고 부른다) 매번 내 일이 우선이라 다음에 찾아봬야지 하던 딸이 아빠는 뭐가 그렇게 귀했을까. ‘자랑’이라는 말이 그저 지 밖에 모르고 살았던 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자랑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숨고 싶었다. 아빠의 인생에서 고작 자랑할 거리가 나라는 게 슬펐다. 떳떳한 자랑거리가 되기 전에 빨리 가버린 아빠가 미웠다. 장례식장에서 새벽에 손님들이 가고 슬기랑 (슬기는 오래된 내 남자친구다) 둘이 향 앞에 앉아 아빠 이야기를 했다. 슬기가 몇 년 전 아빠한테 수민이는 아버지께 어떤 존재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고 했다. 아빠는 내가 억척스럽게 살아온 아빠를 유일하게 녹여주는 존재라고 했다. 그래서 절대 자기가 못 이기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그런 딸이 남자친구가 하자는 대로는 다 하는 것 같아서 밉지만 그러니까 슬기가 수민이 좋은 거 먹이고 좋은데 보여주고 아빠가 못하는 걸 해주라는 당부도 했다고 한다. 아빠한테 나는 그런 존재라고. 한 번도 아빠는 나한테 귀한 딸이라고,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 칭찬받고 싶어 이야기했을 때는 늘 말을 돌렸고, 야근이 많은 날에는 일 못하니까 야근한다고, 힘들어할 때는 원래 남의돈 버는 건 힘든 거라고 핀잔을 줬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귀한 딸이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사랑 많은 아빠께 물려받은 사랑
오빠에게 부고 전화를 받고 늦은 시간이라 비행기가 없어 다음날 새벽 비행기를 끊고 누웠다. 잠이 안 와서 뒤척이는데 오빠가 영정 사진에 쓰일 사진이 필요하다고 찾아봐달라고 했다. 휴대폰 사진첩 스크롤을 한참 내리는데 아빠 사진이 없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덜컥 겁이 났다. 사진 하나 제대로 담아둔 게 없다니. 겨우 찾은 사진 한 장. 2016년 사진이다. 건강해 보이는 아빠. 웃고 있는 아빠와 나. 회사에서 가정의 달이었는지, 명절인지 가족사진 제출이 필요해서 제주에 내려왔다가 찍은 사진이었다. 장례식 내내 전 회사 분들이 연락이 왔다. 제주에서 장례를 했는데도 비행기를 타고 와주신 분들이 많았다. 가장 감사했던 건 아빠를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들인데 아빠의 따듯함을 저마다 기억해 주신다는 것. 아빠는 내가 회사에 다니는 9년 내내 매년 귤을 보내주셨다. 전사 직원들이 일주일 내내 먹어도 남을 만큼 많이. 그런 아빠를 함께 추억해 주시고, 아빠의 평안을 기도해 주시는 분들의 메시지를 받고, 매일 새벽 아빠 사진 앞에 앉아 메시지를 읽어드렸다. 회사에 귤이 온 날, 회사 사람들이 아빠에게 감사를 전하는 메시지를 모아 보내드리면 아빠가 엄청 좋아하셨었는데 그분들의 마음을 아빠가 들으면 행복해할 것 같아서 같은 메시지를 몇 번씩 읽었다. 아빠는 모두가 기억하듯 사랑이 많은 분이셨다. 작년 말, 퇴사하기 전 마지막 해에 건강이 안 좋으셔서 귤을 못 보내신 게 마음에 걸리셔서 한참을 이야기하셨는데 장례를 치르고 서울로 돌아와 그런 아빠의 마음을 대신 전했다. 회사 분들은 나를 보고 같이 울어주셨고 꼭 안아주셨다. 나에게는 회사 사람들 그 이상의 아빠의 사랑을 나눠 받은 서울 가족들이 생겼다. 아빠가 이 모습을 하늘에서 보시고 안심하시길 진심으로 바랐다.
아빠를 위한 브랜드
진선이랑 시니어를 위한 브랜드를 만들기로 하고 아이데이션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우리 아빠가 할까?’, ‘우리 아빠는 그런 거 안 해봐서 어려워할 텐데’, ‘아빠는 시작조차 안 하려고 할걸?’. 시니어를 위한 브랜드라고 했지만 사실 아빠를 위한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비즈니스 적으로는 부를 갖추고, 자기 삶을 즐길 줄 아는 타깃, 액티브 시니어, 프리미엄 에이지에 기회가 있다고 하지만 가장 첫 사용자가 우리 아빠가 되길 바랐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해 온 아빠. 휴일 없이 매일 새벽 가게 문을 여시고,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하며 대부분의 일생을 보내온 분. 쉬는 것보다 일을 하는 게 마음 편하고, 쉬는 날에 뭘 하고 놀 지 고민하는 게 오히려 일인 분. 늘 본인의 행복보다 자식들의 행복이 우선순위인 지극히 대한민국 평균 부모님. 그런 아빠, 엄마가 열심히 살았던 지난 시간을 인정받고, 인생 2막을 즐겁게 살아볼 용기를 주는 그런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자식 때문에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사는 삶의 기쁨을 누리는. 비록 이제 ‘아빠 내가 이런 거 만들면 해 볼 거예요?’라고 물어볼 아빠가 없는 게 슬프지만 내가 만드는 첫 번째 브랜드는 여전히 우리 아빠를 위한 브랜드가 될 거다. ‘귀한 딸 수민이가 아빠의 행복을 그렇게도 바랐구나’라고 아빠가 하늘에서 보실 수 있으니. 그제야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 타이틀 앞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네 부모님들을 위해
시니어에 대해 공부하면서, 지하철을 탈 때도, 은행 업무를 볼 때도 온통 ‘우리네 부모님’ 들이 눈에 밟힌다. 오전에 주민센터에서 서류 뗄 일이 있었는데 아침부터 실랑이하는 아빠뻘 되는 어른들로 시끌벅적하다. 무인 발급기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다 체면 때문에 쉽사리 도움을 청하지 못한 어르신들도 보인다. 아침부터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니 짜증을 꾹꾹 누르며 이야기하는 주민센터 직원들의 목소리에 어르신 마음에 긁힐까 조마조마했다. 서로의 입장 모두 이해가 되지만 매일 이 전쟁이 일어나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진다.
지난주에는 진선이와 쇼핑몰에 갔었는데 삼삼오오 앉아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하고 있는 엄마뻘 되는 시니어 여성분들이 많이 보였다. 점심시간 회사 근처에 있는 어린이 대공원에 가면 아빠뻘 되는 시니어 남성분들이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고 계신데 각자의 모임 장소? 가 있는 느낌이다. 저분들은 동창일까? 교회 같은 데서 만났을까? 사회적으로 소속이 이어지는 시기에는 자연스럽게 학교든, 회사든 어떤 ‘관계’ 안에 일원으로 살아가지만 사회를 졸업하고 ‘은퇴’ 후에 그들에게는 가족이 관계의 전부일까? 나처럼 가족의 품을 떠나 사회생활을 시작한 자녀가 있거나, 결혼을 해서 출가하게 되면 부모님들이 ‘빈집 증후군’을 느낀다는 게 내 소속이 없어지는 게 아닌 나의 유일한 소속에 나밖에 남겨지지 않는 공허함 때문이 아닐까.
낚시 가게를 운영하시는 아빠가 올해 처음으로 정기 휴일을 선언하셨었다. 아빠의 첫 휴일. 막상 쉬는 날이 되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휴가에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아빠도 참. 나는 내가 자주 가는 제주 해안도로에 있는 스타벅스 주소와 기프티콘을 보냈다. ‘바다가 보이는 통창 앞에 앉아 바닐라 라떼를 마시며 책 읽다오기’가 아빠에게 주는 첫 휴일 미션이었다. 그 흔한 카페에 가는 것도 가게에만 있는 아빠에게는 낯설고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다음은 절물 휴양림에 가서 나무 사진 찍으며 산책하고 친구들과 맛있는 오리탕 한 그릇 먹고 오기. 아빠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미션은 그게 마지막이었지만, 내일이 휴일이라며 미션을 보내라고 연락 오던 아빠가 참 신나 보였었다. 아빠의 밝은 에너지가 반가웠었다.
사람들은 나이 듦을 인생의 쇠락, 낡음과 같이 부정적인 것으로 이야기한다. 나이 들어서 못해, 이 나이에 무슨, 나잇값 못하고. 나이가 뭐길래 나이를 무기 삼아 이야기하며 얼마나 많은 어른들을 움츠러들게 하는가. 아주 어려운 일이겠지만 나이를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고 싶다. 뭐든 시작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고 믿게 하고 싶다. 지나온 시간들을 그냥 살았다고 하지만 반드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느끼게 해 드리고 박수쳐드리고 싶다. 나이 듦이 얼마나 그 자체로 멋진 것인지 그 의미를 발견하고 이야기해 주는 일을 해야지. 꼭.
매주 금요일 그 주를 회고하고, 브런치를 통해 날 것의 생각을 기록합니다.
격주로 숨니와 진, 둘의 글을 일부 발췌해 뉴스레터로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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