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오래 붙이고 있다고 답이 나오냐?

회사 밖을 나오자 보이는 것들

by 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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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생각이 정체되어 글이 써지지 않았다.

2025.11.03


‘집 꾸미기’ 전문가는 ‘집 짓기’ 전문가가 아니었다는 걸 몸소 깨달으며 한참을 헤매던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집 짓는 방식을 배우기로 했다. 먼저 그 길을 가 본 사람의 책을 읽고,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조언자를 찾아간다. 생각에 확신을 얻기 위해 앉아서 토론만 할 게 아니라 직접 고객이 있는 곳으로 간다. 고객을 찾을 수 없다면 고객이 찾아오도록 판을 만든다. 이런 우리에게 ‘그렇게 하면 뭘 얻는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엉덩이 오래 붙이고 앉아 있는다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걸 잘 안다. 책상 밖을 벗어나는 순간 또 하나의 세상이 열린다.




돈 벌 준비? 책임 질 준비!

집 꾸미기만 하던 우리가 오늘 당장 집 짓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며칠을 앉아 노트북만 끄적이고 이야기를 하는데 좀처럼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뭐든 새로운 인풋이 필요한 시기다. 그러던 중 SNS에 추천글이 부쩍 많이 보이는 책 하나가 눈에 띈다. 구 퍼블리 창업가이자 대표님이 쓴 <실패를 통과하는 일>. 고구마 100개 먹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우리의 엉덩이라도 차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의 한줄평은 '돈을 버는 것 이면에 감당해야 할 것을 미리 알려주는 책’. 우리가 답답했던 이유는 비전을 그리고, 아이템을 고민하며, 핑크빛 미래만 그리다 빛 뒤에 그림자, 현실을 하나 둘 이야기 하면서부터다. 그에 대한 답을 명료하게 내릴 수 있는 경험치도, 확신도 없어서 답답했던 거 아닐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책은 우리에게 '감당할 준비 됐어?'라고 질문한다. 호되게 매를 먼저 맞은 기분이다. 창업이란, 사업이란 그저 꿈꾸는 걸 실현하는 데 있지 않음을 명확히 알려준다.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돈을 버는 것은 고객의 요구를 변화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고객을 만족시킨 것에 대한 보상이며, 고객이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주고 받는 것이다.

고객을 계몽하는 건 순전히 내 욕심이고 결국 인간의 본성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우리가 그리는 그림들이 진정 시니어를 돕기 위함인지, 우리가 꿈꾸는 시니어 모습을 실현하고 싶은 건지 다시 생각해 본다. 왕관을 쓰는 자는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말처럼 남의 돈을 받는 데는 감당할 준비가 필요하다. 책임 질 준비가 우선이다. 책을 읽고 난 뒤 막연한 답답함이 책임감으로 바뀌었다.



Confidant 만나기

주변 사업가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자만의 멘토단(?)이 있다. 비즈니스, 시스템, 마케팅 등 각 분야에서 가장 리스펙 하는 사람을 조언자로 둔다. 책 <실패를 통과하는 일>의 저자도 곁에 Confidant를 두라고 이야기한다. Advisor가 아닌 Confidant를 두라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단순히 전문성을 가지고 이성적인 의견을 주는 사람이 아닌 나의 마음을 헤아리며 애정을 가지고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맥락에서 생각할 때 AI는 절대 Confidant가 될 수 없다) 진선이와 홍남기획의 Confidant 리스트를 작성하고 한 명씩 만나기로 했다. 첫 번째 Confidant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업가이자 전 회사 대표님. 진선이와 나, 둘 다 회사를 나오긴 했지만 10년 간 정말 좋은 회사를 다녔다고 자부하기에 대표님은 건강한 가치관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조언을 해주실 분이었다. 경영서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이야기, 직원이 아닌 대표라는 타이틀을 달고 보니 보이는 궁금한 질문리스트를 적어갔다. 회사를 창업할 때의 출발점, 언젠가 그릴 회사의 끝점, 반드시 지키는 원칙, 선택의 기준…… 말씀해 주신 내용들 모두 의미 있는 인풋이 되었지만 가장 놀라웠던 건 답변에 시간차가 없었다는 거다. 정답이 없는 질문에 아주 선명한 답이었다. 스스로, 더 나아가 동료들이 끄덕일 수 있는 답을 내기 위해 고민해 온 대표님의 시간들이 느껴져서 존경스럽고 부러웠다.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다섯 시간의 대화. 대표님은 사업적 조언부터 우리 둘이 뭘 잘하는지, 어떤 강점을 더 살리는 게 좋을지 진심을 다해 이야기해 주셨다. 다음날 진선이와 각자 마음에 남았던 조언들을 다시 한번 복기하며 홍남기획의 방향을 정돈하는 시간을 가졌다. 좁은 생각의 그릇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N년 뒤 우리에게 누군가 똑같은 질문을 해왔을 때 선명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고객을 찾아서

답답함을 돌파하기 위해 책 읽기, 조언자 만나기 외 가장 우선으로 두었던 건 직접 고객을 만나는 것이었다. 구상한 아이템 중 ‘이거다!’ 싶은 것이 없었고, 결국 사용자 입장에서 기대하는 반응들도 모두 추측이기 때문에 매번 대화가 끝맺음 없이 허공을 맴도는 느낌이었다. 회사에서 담당했던 브랜드는 대부분 MZ가 타깃이었다. 데스크리서치 만으로도 정보를 충분히 찾을 수 있었고 심층 조사를 위한 인터뷰이 모집도 수월했다. 하지만, 시니어 시장은 달랐다. 디지털 활용량은 높아졌다지만 보이스를 직접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디지털 내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았다. 진선이와 어린이 대공원을 걸으며 산책 나온 어르신들을 보고 ‘시니어가 이렇게 많은데 우리가 무작정 다가가면 사이비 종교처럼 보이겠지?’하며 먼발치에서 지켜만 봐야했다. 안전감 속에서 시니어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나는 5개월 째 등록을 미루고 있던 교회에 새가족으로 등록했고, 진선이는 회사 근처 탁구장에 일일 클래스를 들으러 가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고객 찾기 여정은 계속되었고 바라던 몇 번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아래 글은 고객을 만나고 바뀐 생각들.


나이보다 중요한게 있다

서울시 각 구에는 50대 이상 시니어들을 위한 교육, 채용, 취미 등을 지원하는 50플러스 센터가 있다. 마침 강동구에서 ‘오플제’라는 행사를 한다기에 무작정 찾아갔다. 이전에도 오프라인에서 시니어 대상으로 하는 몇 개의 행사를 찾아봤었는데 나이 제한에 걸렸던 터라 입구컷(?)을 당하면 어쩌지 걱정되었다. 걱정이 무색하게 50플러스 센터에서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축제 부스엔 센터 시니어 수강생분들이 일일 선생님이 되어 여러 가지 클래스를 운영했다. 모두 에너지가 대단했다. 강사 한 분께 시니어를 위한 브랜드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해주신 이야기가 인상 깊다. 50대부터 시니어라고 이야기하지만, 50대인데 70대처럼 사는 사람도 있고, 70대지만 50대처럼 사는 분도 있다고.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셨다. 실제로 오플제에서 만난 시니어들은 코딩을 게임으로 배우고. 3D프린트 기술을 배워 로봇을 만들고. 요양원에 계시는 분들을 위한 놀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인생 2막의 새 ‘업’을 준비하고 계신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힘없고 약한 모습이 아니었다.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고, 저마다 신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모든 시니어가 김부장은 아니다

시니어 모임에 침투하는 것이 쉽지 않아 고민 끝에 우리가 직접 시니어를 초대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 타이틀에는 ‘MZ와 수다 떨며 젊게 사는 모임’ 임을 강조했다. (진선이는 모임 개설 후 5분에 한 번씩 앱을 열어보며 실망했다…..) 모임 전날 저녁, 40대 후반 남자 한 분이 참여 신청을 했다. (진선이는 마치 로또에 당첨된 반응이었다) 첫 모임 대화 주제는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기인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드라마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모임에 참여한 분은 게임과 관련한 대기업, 중견 기업을 거쳐 현재는 프리랜서로 일 하시는 분이다. 게임을 온라인 게임에 한정하지 않고, 본인의 직업을 개발자로 한정하지 않는다. 게임 자체를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규칙을 푸는 것 또는 노는 것’이라는 큰 그릇으로 정의하시는 것 같았다. 게임과 관련한 오프라인 행사. 강연, 코칭, 콘텐츠 제작 등 NN잡들로 본인을 소개했다. ‘김부장’과는 정반대의 삶 사는, 평생직장이 이미 옛말인 예비 시니어들이 있다.


시간의 축적만큼 쌓이는 서사

위 두 분 말고 터키 출장에 함께했던 50대 여성 작가님과도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개그맨이 되고 싶어 대학에 갔던 이야기, 미술 학도로 편입해 미술학원 선생님이 되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던 기억, 아이 셋을 키우는 엄마의 삶, 서울, 부산, 대전 등 지역을 옮겨 다니며 적응해야 했던 이야기. 인터뷰 전 막연하게 생각했던 '아이를 키우는 50대 여성의 삶'과 실제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건 사뭇 달랐다. 예상대로 ‘아이’가 삶의 중심이긴 했지만 이 분에게 ‘육아’는 의무나 책임이라기보다 ‘자부심’이었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는 아이들이 모두 독립하고 난 후의 꿈이 작게나마 꿈틀대고 있었다. 진선이와 시니어를 공부하면서 우리가 믿는 하나의 명제가 있다. 시간의 축적만큼 반드시 지혜가 쌓인다는 것. 고객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면서 한번 더 그 명제를 생각한다. 정말로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법이 없구나. 시간의 축적만큼 이야기가 쌓였구나. 지혜가 쌓였구나. 그 안에서 발견한 인사이트들을 잘 다듬어 그들을 돕는 것이 우리의 일이겠구나. 앞으로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게 될까?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파도에 몸을 맡기는 중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인사말처럼 듣는 이야기가 있다. ‘잘하고 있어?’, ‘홍남기획은 잘 돼가?’ 사실 이 물음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고는 있는데 아직 시작 단계이고, 이룬 건 없으니 잘 돼 간다고 하긴 그렇고. 멋지다고 건네는 응원에는 왠지 초라해지고, 안되고 있다고 하기에는 매일매일이 재밌고. 정의 내릴 수 없는 상태라 ‘그냥 하고 있어요’라는 의미 없는 답만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하나 둘 쌓여가면 없던 조급함도 불쑥불쑥 올라올까봐 겁이 나기도 한다. 진선이와 함께 일하면서 나는 일하는 습관을 바꿔보는 중이다. 나는 유독 책임감이 높은 사람이다. 좋게 말해 책임감이지 나를 부단히도 갉아먹는 나에게는 없애고 싶은 악습관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모든 걸 혼자 꽉 진 채로 뭐 하나라도 놓칠까 전전긍긍하며 일을 해왔었던 것 같다. 애쓴 만큼 성취는 달콤했지만 마음은 늘 편안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하면 절대 오래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이번 phase는 단거리 승부가 아닌 장거리 마라톤이니까 파도에 몸을 맡기는 심정으로 일하고 있다. 추진력 높은 진선이가 파도를 만들어주고 나는 거기에 올라타서 지금 가는 방향이 맞는지 점검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나의 몫인 한쪽 노를 젓는다. 나머지 한쪽 노는 말하지 않아도 이미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 친구가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벌써 11월이다. 월 초에는 늘 계획을 세우고 시작하는데 무계획으로 새 달을 맞이해본다.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기고 오늘을 충실히 살다 보면 길이 보이겠지?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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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그 주를 회고하고, 브런치를 통해 날 것의 생각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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