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최근에 지독한 독감에 고생한 것을 시작으로
약간의 도피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야
글씨 쓰는 걸 그렇게 좋아하던.. 그래서 하루도 빠짐없이 글씨를 써대던 내가
시답잖은 회의감에 여러 가지 핑계 삼아 글씨 쓰기를 게을리 하니 말이지.
하루하루 글씨밖에 모르던 나의 생활에 글씨가 빠져버리니
정말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더라.
이런 허전함을 달래려 찾은 곳이 서점이었다.
글씨에서 도망치려고 찾은 곳이 글이라는 게 참 웃기지 않나.
원래 글씨를 쓰면서도 책은 틈틈이 읽었어.
남의 글일 베껴 내 글씨로 옮기는 걸 싫어해 나름 작문도 하고 있기 때문에
책은 가까이했지만 도피처로서의 책은 또 다른 기분을 느끼게 한다.
마치 시험기간에 공부하기 전 주변이 눈에 거슬려서 하는 청소처럼 즐겁다.
시시함의 연속이던 나의 인생에 색다른 즐거움을 찾은 것 같아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네
그거 알고 있나.
이런 편지글로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거 말이야
겨울. 1月 2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