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있습니까? 그들의 목소리를?

어쩌면 내 인생 책, <묵묵> 리뷰

by 수빈 Soobin

대학에서 글쓰기 수업을 듣다가 인상적인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너희 학교에 수유실은 있니?", "과연 이 학교는 모두가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일까?". 질문을 건넨 이는 교수님도 아닌 외부 강사님이셨다. 학교를 자주 오시진 않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학교의 문제점을 발견하신 거다.


그때부터 어딜 가든 수유실의 위치나 "휠체어 접근 가능"이라는 단어가 적혀 있는지를 찾아보게 됐다. 부끄럽게도 내가 다니는 학교는 수유실도 없고, 휠체어가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다. 아무도 수유실이나 휠체어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이 책에서는 이렇게 답한다.


"세상에 목소리 없는 자란 없다. 다만 듣지 않는 자, 듣지 않으려는 자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존재로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그들은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들을 수 있는가'이다." (112p, <묵묵>, 고병권)




이 책은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나 <밤이 선생이다>에 이어 베스트로 꼽고 싶은 에세이다. 사실 이 세 권 중에서도 나는 <묵묵>이 가장 좋다. (묵묵> 밤이 선생이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순) 생각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의 일상과 강의 현장으로 우리 독자들을 데려간다. 노들 장애인 야학과 광화문 거리, 수용시설 등 다양한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그 시간에서 얻은 배움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장애인 야학에서 만난 학생들, 기초생활수급권자, 후원받는 사람들, 심지어 약물 실험의 대상이 된 동물과 인간에 의해 버려진 동물들까지 등장한다. 주로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이 말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의 눈과 귀가 닫혀 있음이 아닌지를 저자는 묻고 있다.



"타자에게 책임 있게 다가간다는 것은 타자가 이미 내게 다가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타자가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다만 내게 들리지 않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임이란 단지 '들을 수 있음'을 통해서만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들으려 함'에서 성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타자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청취 능력이 아니라, 타자의 말을 들으려는 의지, 욕망, 노력이라는 것이다."


'묵묵', 무슨 뜻일까. 이 책의 디자인이나 전반적인 분위기를 보면 '묵묵'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긴 한다. 그러나 어째선지 이 책을 읽는 내 마음은 묵묵하지가 않다. 오히려 뜨거워진다. 감탄을 하게 된다. 묵묵히 걸어온 그의 작은 외침을 이제야 발견한 것이 억울하고 분통하달까. 마땅히 제 할 일을 하면서도 생색내기 바쁜 세상에서, '묵묵하게' 제 길을 걸어온 그의 침묵이 더 빛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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