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르지 마세요.

by 수빈 Soobin

15년 전, 그러니까 초등학생 때 아주 잠시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었다. 이름은 똘똘이였다. 종은 기억이 안 나지만 초롱초롱한 눈이 예뻤고, 윤기 나는 갈색빛 털을 가진 강아지였다. 자주 아프고, 조용하고, 낯을 심하게 가리는 친구이기도 했다.


KakaoTalk_Photo_2019-11-24-23-13-16.jpeg 사진 :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문학동네


나는 좋은 주인이 아니었다. 똥오줌을 치우는 게 싫었고, 똘똘이의 예쁜 모습만 보고 싶었다. 몸이 아파 축 처진 똘똘이를 보자 내가 아는 강아지가 아닌 거 같다며 엄마에게 찡찡 거리기도 했다. 워낙 어린 시절의 일이라 더 이상은 기억나지 않지만, 똘똘이를 생각하면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다. 나는 자격 없는 주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 똘똘이 생각이 많이 났고, 그래서 더 죄스러웠다. 좀 더 사랑해줄걸, 좀 더 신경 쓸 걸. 만약 그랬다면 똘똘이는 지금까지도 우리와 함께 있지 않았을까.


KakaoTalk_Photo_2019-11-24-23-13-11.jpeg 사진 :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문학동네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자체가 그만큼 덜 사랑해서라는 걸, 사랑했으면 어떻게든 알아나갔을 거라는 걸 어째서 깨닫지 못했을까. 난 소유욕과 측은지심은 있었을지언정 진실로 그 애들을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나 같은 놈은 기르지 않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염치없지만 그나마 현실적인 깨달음을 실천하는 정도일 뿐." -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p.166, 이석원, 문학동네


너무나도 일찍 맞닥뜨린 똘똘이의 죽음은 지금까지도 내가 반려 동물을 집에 들이지 않은 이유다. 집 안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고, 경제적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내 처지를 보면 자연스레 답이 나왔다. 기르지 말아야 한다고. 나 같은 놈은 기르지 않는 게 그나마 도와주는 거라고.


KakaoTalk_Photo_2019-11-24-23-13-25.jpeg 사진 :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문학동네


며칠 전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배우 방성훈 씨가 그의 반려견 양희와 함께 하는 일상을 다룬 적이 있었다. 그때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유기 동물을 입양하라는 추천보다는, 유기 동물이 안 생기게끔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스크린샷 2019-11-23 오전 1.49.00.png 사진 : MBC 나혼자산다


최소한의 책임감이란, 어쩌면 애초부터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차라리 기르지 말고 돕는 방식을 택했다. 유기 동물을 돕는 시설에 후원하거나, 길냥이를 위한 간식을 들고 다니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다. 참, 이 책을 사는 것도 유기 동물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주변 도서관에 이 책을 희망 도서로 신청하고, 지인들에게도 선물해야지.




KakaoTalk_Photo_2019-11-24-23-13-27.jpeg 사진 :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문학동네


똘똘아. 거기서는 잘 지내니. 15년이 지났지만 네가 화장실에서 토하던 모습은 아직도 눈 앞에 선명해. 처음 맞닥뜨린 생명의 위기에 놀라 어찌나 펑펑 울었는지. 가끔 랜선으로 강아지들을 볼 때 그 생각이 번뜩 스쳐서 한없이 죄스러울 때가 있어. 나 같은 게 뭐라고 감히 너를 거두어들였을까. 나 같은 게 뭐라고. 하나부터 열까지 난 부족하고 자격 없는 주인이었고, 그걸 깨달은 순간 너는 이미 가고 없더라. 어두운 화장실 구석에서 쪼그리고 낑낑거리던 네 모습만 기억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어.


너무 부끄럽고 죄스러워서, 글을 쓰면서도 수차례 쓰고 지우길 반복했어. 한참을 고민하고, 쓰고, 지우길 반복하다 그냥 포기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렇게라도 빚을 갚고 싶어 똘똘아. 부디 거기서 만큼은 아프지 말고 신나게 뛰놀고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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