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이 내 삶에 스며들 때

매슈 대니얼스,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리뷰

by 수빈 Soobin

내가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순간은 우연히 찾아왔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길을 걷다 문득, 홍대입구 지하철에는 수유실이 아주 구석에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또 내가 다니는 학교에는 수유실이 아예 없을뿐더러, 계단이 많아 휠체어조차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단지 내 주변에 관심을 갖고 관찰했을 뿐인데, 내가 모르는 차별이 이렇게 많았다.


그때부터 나는 어떤 책임감을 느꼈다. 내가 이 상황을 좋아하든 아니든, 나는 다른 사람들은 가질 수 없는 어떤 가치를 지닌 혜택을 누리고 있었으니까.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이런 사회에 내가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되묻게 됐다. '넌 이런 차별 가득한 세상에서 뭘 하고 있니?'


내 책임은 무엇일까? 어떻게 행동해야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까? 세상의 폭력과 차별들이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편히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택했다. 침묵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매슈 대니얼스, 포레스트북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를 생각하면 새삼 기술의 발전에 감사함을 느끼곤 한다. SNS가 없었다면 우리는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차별을 알지 못했을 테고, 또 그들과 연대하지 못했을 테니까. 다행히 지금 우리는 인터넷과 #(해시태그)를 통해 세상의 부조리와 맞설 힘을 갖게 되었다.


타인의 죽음을 간과할 때 우리의 품격은 손상된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은 자신의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과 같다. 이후 나는 이 영원한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의 업적을 기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 p.25~26


p.10,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매슈 대니얼스, 포레스트북스


우리는 SNS를 통해 다른 이들의 삶을 보다 쉽게 접하고,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또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글을 올리고, 좋아요를 누르고, 해시태그와 함께 공유하고 있다. 우리는 그 간단한 행동이 다른 이의 삶을 변화시킬 힘을 준다는 것을 믿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모을 때, 세상에는 기적이 일어나는 법이니까.


병원에서는 아이에게 맞는 기증자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남자가 페이스북에 자신의 사연을 올린 순간, 24시간 만에 70명이 기증이 가능하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모두 아이의 집 주변에 살고 있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페이스북의 힘은 실로 놀라웠다. --- p.68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매슈 대니얼스의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러한 디지털 미디어 속 인권 운동의 실제 사례들을 모은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인류의 보편적 인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도록 독려한다. 1장에서는 왜 우리가 침묵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 본질을 설명하고, 차별을 없애는 데 디지털 미디어가 필수적인 이유를 말한다. 2장에서는 '재난', '여성', '빈자', '저항'이라는 4가지 키워드와 그에 맞는 사례를 통해, 해시태그와 SNS가 가진 힘을 보여준다. 마지막 3장에서는 우리가 디지털 인권 운동을 하기 이전에 먼저 이루어져야 할 사생할권, 디지털 권리 보호에 대한 얘기를 한다.



우리가 인류의 보편적 인권에 대해 고려하고 실천하게 된 시기는 언제일까? 놀랍게도 1948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 인권 선언문'이 발표되었고, 이는 세계인이 서로 연대해서 지구 상의 모든 사람이 동일한 권리를 온전히 실현하도록 해야 함을 주장했다. 여기에는 전 세계인이 양심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재산을 가질 자유와 사생활을 누릴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선언문에 따르면 우리는 노예제도와 고문, 차별을 비난하며 인종과 국적, 성별과 상관없이 평등하게 모든 이들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72년이 지난 지금, 세계 곳곳에는 여전히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고 있다.



#세계 인권 선언문을 거부한 나라

p.17,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매슈 대니얼스, 포레스트북스


책에 담긴 사례 중, 여성 인권에 관한 부분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인상 깊었다. 나는 세계 인권 선언문을 거부한 나라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거부'를 할 수 있다는 걸 이 책으로 처음 알았다. 그리고 난 이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계 인권 선언문을 국익에 따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 경악스러웠다. 국민 한 명 한 명의 권리가 국가의 이익에 의해 무시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으니까.


당시 세계 인권 선언문을 거부한 나라는 대표적으로 소련, 남아프리카 공화국,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다. 소련은 정부의 개입이 적다는 이유로 거부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당시 국가적 인종청소가 자행되고 있어 투표를 거부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또한 자국의 종교와 여성을 차별하는 문화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투표를 거부했다.


p.95,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매슈 대니얼스, 포레스트북스


#운전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끌려갈 수 있을까?


2017년까지만 해도 사우디아라비아라면 가능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은 미성년자와 같은 법적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적 시스템에 반기를 든 이는 평범한 시민 '마날 알 샤리프'다. 그녀는 법 어디에도 여성 운전이 불법이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위민투드라이브'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벌여 페이스북에 사람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직접 운전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영상이 유명해지며 전 세계 사람들은 그녀의 행보를 응원했지만, 그녀는 자국에서 온갖 살해 협박과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했다. 실제로 정부는 즉시 그녀를 체포했는데, 그녀를 지지하는 수많은 게시물이 SNS에서 빗발치자 정부는 그녀를 석방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추방당했고, 그녀의 가족 또한 자국에서 안심하고 살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p.106,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매슈 대니얼스, 포레스트북스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일에는 종종 엄청난 용기와 희생이 요구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지지와 연대가 반드시 전제된다. 용기 있는 행동이지만 지지가 없다면 그것은 아무런 영향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의 권리와 운전권이 전 세계적으로 논의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알 샤리프의 용기 있는 행동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18년 6월,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 운전 금지 정책을 폐지했고 남녀 구분 없이 운전면허증을 발부하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의 법적 평등과 자유를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거부하는 나라이자, 오늘날까지도 남성들과 동등한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다. 그들은 이것을 문화라고 말하지만, 인류의 보편적 권리를 인정하는 전 세계 여론에서는 이것을 문화가 아닌 억압과 폭력으로 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부에는 여전히 불평등이 존재한다. 거의 모든 시설이 남성의 공간이기에 여성은 남성의 허락 혹은 동행 하에만 시설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천국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다만 이 세상의 삶이 지옥이 되게 하지 말라고 했을 뿐이다. 우리는 은밀한 자유가 아니라, 진짜 자유를 누리고 싶다.

- p. 121,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매슈 대니얼스, 포레스트북스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례를 보다 보면 '여성들이 너무 큰 걸 바라는 건가?'싶을 정도로 여성 차별이 당연해서 당황스럽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지 삶의 주인이자 독립적인 시민이 되는 것인데, 사우디아라비아는 기본권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운전 금지 정책 폐지가 위선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언론을 통해 신문방송의 헤드라인을 여성 운전 허용으로 장식하면서, 마치 신세기에 진입한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젠더 감수성은 여전히 형편없는데, '이 정도면 나라 다시 세운 꼴이지!'라며 떵떵 외치는 느낌이랄까.



#디지털 인권 운동의 선한 효과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SNS를 악용해 조직 규모를 키우는 테러 집단이 떠올라 디지털 미디어에 반감을 가졌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SNS 덕분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억압과 차별들, 예를 들어 #미투 운동, #문단 내 성폭력 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스 버킷 챌린지 또한 사람들이 루게릭병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모금 운동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우리는 소셜 미디어의 확산 덕분에 지리적, 문화적 경계를 넘어 연대하고, 보편적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누군가를 지지하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사례들은 각기 다르지만, 독자의 '인권 감수성'을 높이고 실천으로 옮기도록 동기부여한다는 점에서 모두 같다.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다소 막연한 이유로 해시태그를 공유했고, 어떤 날은 귀찮다는 이유로 넘겨버리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연대해야 할 분명한 이유를 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안 하면, 세상에는 그만큼의 폭력과 차별이 생겨난다. 그걸 알게 된 이상, 나는 더 이상 무관심으로 대응할 순 없다.


"자유는 무언가에 맞서 기꺼이 행동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영감을 얻고 힘을 모아 억압에 저항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이를 더 빨리 깨달을수록, 세상은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할 것이다."
- p.33,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매슈 대니얼스, 포레스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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