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한국어가 낯설게 느껴진다.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리뷰

by 수빈 Soobin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나는 미움을 많이 받았다. 나를 좋아하는 친구보다 나를 싫어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너무 나대서’였다. 내가 많이 나댔다고 한다. 체육시간에 원반 던지기 게임을 팀 별로 진행했었는데, 나는 당시 팀장이었고 우리 팀이 이겼으면 하는 마음에 열심히 했다. 그런데 열심히 한 게 문제였다. 아이들은 지치고 하기 싫어했는데, 팀장이 ‘눈치 없이’ 열심히만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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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나는 눈치가 없었다. 분위기를 읽을 줄 몰랐고,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 지를 재빨리 캐치할 수 없었다. 나는 그냥 나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좋았다. 내 귀로 나의 험담을 듣기 전까진 말이다.

그때 내가 배운 게 있다면, ‘눈치가 생명’이라는 것. 순간순간 불쑥 드는 감정을 거르고 거르면서 나를 온전히 드러내지 않도록 노력했다. “00아 너 오늘 화장 잘 먹었다~”라고 하면 “고마워~”가 아니라 “에이 나 요즘 여드름 폭발하는데 무슨 소리야~”라고 한 번쯤 튕길(?) 줄 알아야 했다.


종종 한국어의 모든 신호에는 암호가 걸려 있는 것만 같다. 항상 주변을 탐색해야 하고 은근한 신호를 읽으며 들리지 않는 말을 들어야 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 부러웠고, 가끔 한국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어는 단어가 내포하는 문화적 맥락이 큰 언어라고 한다. 우리가 ‘네’인지 ‘응’인지를 결정하려면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 지, 나랑 친한지 안 친한지, 지금 내가 아쉬운 입장인지 상대가 부탁하는 상황인지를 순식간에 계산하고 판단해야 한다.

“눈치(nunchi)라는 단어는 영어 위키피디아에도 등재되어 있다. ‘타인의 기분을 들어주고 읽어주는 미묘한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설명을 보면 한국인들의 높은 사회적 민감성에서 비롯되는 능력이며, 조화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남들이 말하지 않은 것까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한다. 눈치 있다는 것은 상황 파악이 빠르다는 평가인 동시에 상식이 있다는 말이고, 눈치 없다는 것은 맥락을 못 읽는 것부터 몰상식한 것까지를 망라한다고도 적혀 있다.” - p.28-29, 허새로미,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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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댓말은 어떨까? 아르바이트할 때 종종 지나친 존댓말에 나 스스로도 놀랄 때가 있다. “편하게 골라주세요”를 “편하시게 골라주세요”라던가, “퇴근하실 때 걸어가시면 힘드실 거 같아서요”라고 말한다던가. 무수히 남발하는 존댓말에 내가 말해놓고도 ‘엥?’할 때가 많다. “편하게 골라주세요”는 예의가 아닌 걸까? “퇴근할 때 걸어가면 힘들 거 같아서요”는 상대에 대한 충분한 존중을 보이지 않는 걸까? 나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계산해서 ‘시’를 하나하나 붙인 것이 놀랍다. 뼛속까지 베인 존중이 한도 끝도 없이 길어진 언어로 돌아오는 걸 체감할 때면, 한국어가 참 피곤하다는 생각이 든다.

“눈치가 너무 많은 지시 사항을 생략하는 준엄한 백지이고 우리가 거기에 뭐라도 적어야 하는 수험생일 때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말이란 하는 사람이 바꿔나가야 한다고 믿으며, 눈치의 시험장을 박차고 나가는 것이 최선인지도 모른다.” - p.33, 허새로미,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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