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는 나무에 관한 이야기

by 수빈 Soobin

어렸을 때 나는 할머니 댁에 살다시피 했다. 임학동과 귤현동. 집에서 차로 3분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걸어서는 30분 정도려나. 아무튼 그 정도로 가까웠다.


할머니 댁 후문에는 아주 큰 고목 한 그루가 있었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최소 200살에서 400살은 되는 나무란다. 굳이 묻지 않아도 느껴졌다. 내가 살던 임학동에선 볼 수 없는 나무, 볼 때마다 묘하게 기이하고 엄숙해지는 나무였으니까. 마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거대한 나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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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꼭 그 나무를 보러 갔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존댓말로 인사했다. 동네에 또래 친구가 없어 심심할 때마다 나무 앞에서 조잘조잘 떠들곤 했다. 하지만 가끔은 단둘이 있는 이 상황이 묘하게 무서워서 냉큼 달아난 적도 있었다. 그땐 그랬다.


시간이 흘러 학교를 들어가고, 친구를 만나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는 자연스레 그 나무를 잊었다. 오랫동안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나무의 말>에서도 말하듯, "오래 살았다고 해서 불멸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기회가 있다고 해도 그 기회가 마냥 기다려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비교적 접근하기 쉬워 보이고 긴급해 보이지 않았기에 내 우선 순위에선 계속 뒤로 밀리고 있었다."(p.111)


그로부터 몇 년 후, 그 마을은 개발로 인해 사라졌다. 나무도, 할머니도, 풀을 뜯으며 한가로이 거닐던 소들도... 오래된 것들은 새 것으로 교체되었다. 귤현동은 이제 더 이상 시골이 아니라 신도시다. 이웃과 안부를 주고받으며 지나다녔던 흙길(비포장도로)이 없어졌다. 각종 버스가 들어오면서 굳이 걸어 다닐 필요도 없어졌다. 학원이 들어서자 놀이터는 점점 휑해졌다. 이런 것쯤이야 다 참을 수 있었는데. 그 나무가 개발 업체에 의해 뿌리가 뽑혔다는 소식을 듣자, 나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그제야 그 나무가 내게 얼마나 특별했는지를 깨달았다. 나무는 내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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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무의 말>을 완독했다. 최소 2000년에서 많게는 60만 년을 살아온 나무와 생명체에 관한 에세이였다. 그들이 살아온 그 긴 시간은 내가 살아온 고작 이십 몇 년을 되돌아보게 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부쩍 할머니와 그 나무와, 예전의 귤현동 마을이 생각난다. 소멸했기에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것들. 점점 흐릿해져 가는 이 기억들이 아쉽고 서러워, 자꾸만 기록하고 싶어 진다.


"세계화로 인한 사회, 문화, 언어 다양성의 소멸처럼 오늘날 우리는 여러 측면에서 소멸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소멸은 현재 생태계가 심각하게 겪고 있는 문제기도 하다. 동물종과 식물종의 소멸은 매일, 매시간 일어난다. 과학자들은 인류 문명의 소멸, 심지어는 인간종 자체의 소멸 가능성도 점점 더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다." - p.16, 레이첼 서스만, <나무의 말>, 윌북


어쩌면 '소멸'에 관한 문제는 비단 귤현동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지구 곳곳에서 수천 년을 버텨온 생명들은 기후 변화와 인간의 개발로 조용히 사라지고 있으니까. 이 책은 '나무'라는 많고 많은 생명체 중의 하나를 다룬 에세이지만, 독자들은 저자가 보여주고자 했던 '숲' 또한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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