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 소셜딜레마
잉여북스를 운영하면서 나도 모르게 sns에 잠식된 적이 있다. 최근 번아웃에 빠지게 된 결정적 이유도 sns 때문이라 생각한다. 처음 잉여북스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가벼운 마음으로 책 사진을 찍고, 간단한 리뷰를 남기곤 했다. 그러다 북튜브를 시작하고, 잉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면서 나는 점점 내 sns 채널이 가진 이미지에 책임감을 갖게 됐다.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라는 마음보다 '오늘은 어떤 게시물을 올려야 할까'하고 고민하게 됐다. 진지한 얘기를 할 땐 좋아요 수가 낮았고 책 하울이나 언박싱 영상을 올리면 좋아요 수가 많았다. 자연스레 나는 sns에서 진지한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이 요즘 읽는 것, 요즘 많이 거론되는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왠지 그걸 읽어야 할 것만 같았다. 화제성이 높은 신간은 인기가 많았고 구간은 반응이 미미했다. 나는 점차 내가 좋아서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북튜버니까, 북스타그래머니까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마음이 책을 읽게 했다. 그때부터 번아웃이 찾아왔다.
"마술사는 카드를 보여 주며 아무 카드나 고르라고 하지만 당신은 이미 다 조작된 것이라는 걸 모르고 그들이 고르게 만든 카드를 고르는 겁니다. 페이스북도 똑같아요 페이스북은 이러죠. '직접 친구를 선택하고 팔로우를 할 링크를 고르세요' 하지만 다 난센스예요. 마술사와 똑같죠. 당신의 뉴스 피드는 페이스북이 통제하니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uaaC57tcci0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부계정을 운영하다 보니, 지인들은 나를 소셜 미디어의 'Geek'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나는 관심사도 많고 이를 sns에 전시하고 공유하는 걸 즐기는 관종이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를 보니 sns에 내 모든 것을 기록하고 전시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SNS는 내 관심사만을 추천해줄 뿐, 정반대의 관심사는 추천하지 않으니까. 언젠가는 다큐멘터리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는 정답을 알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모르지? 사람들은 멍청해"라는 무서운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현재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갈등이 심하다. 중간이 없는 양극화 상태인 것이다. 나는 여기에 인터넷과 소셜 미디의 책임이 있다고 확신한다.
'오늘은 절대로 침대에 스마트폰을 가져가지 않을 거야. 밥 먹으면서 핸드폰 진짜 안 볼 거야!'라고 스스로 되뇌지만, 결국 나는 자기 직전까지 유튜브를 봤고, 밥을 먹으면서 sns 알림을 확인했다. 가장 소름 끼쳤던 건, 이 다큐를 보는 와중에도 스마트폰 모니터가 켜지면 저절로 고개를 돌리는 내 무의식 그 자체였다.
나는 내가 sns에 잠식되었다는 걸 체감하기 전까지는 sns의 위험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왜 유튜브가 추천해주는 영상을 보면 안 되는 거지? 왜 내가 인스타그램에 시간을 쏟으면 안 되는 거지? 나는 내가 콘텐츠를 직접 고른다고 생각했지만, 이 다큐를 통해 내게 노출된 모든 콘텐츠들이 조작된 것을 알게 됐다. 그 유명한 '알고리즘' 말이다.
요즘 유튜브를 켜면 댓글에 '축하합니다. 당신의 영상이 알고리즘에 의해 선택받았습니다.'라는 댓글이 많이 보인다. 나 또한 처음엔 알고리즘이라는 단어를 단순한 웃음거리로 생각했지만, 이 다큐를 보고 난 후엔 알고리즘이 정말로 무서워졌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이스북, 스냅챗, 핀터레스트 등 각종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어떻게 하면 더 오랫동안 이 공간에 머물게 할지를 고민하고 전략을 짜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알고리즘'이다. 우리가 소셜미디어에 더 많은 '시간'과 '좋아요'를 할애할수록, 알고리즘은 더욱 강해져 우리를 가상의 공간에 머물게 한다. 어제는 20분 순삭이지만 내일은 3시간 순삭인 것이다.
'상품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네가 상품이다'. 우리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한 문장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서비스를 무료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무료일까? 많은 it 기업들은 우리가 서비스를 무료로 사용하는 대신, 우리의 관심사와 온갖 정보를 제삼자에게 판매한다. 우리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광고에 노출되고, 콘텐츠를 실험하는데 쓰인다. 그러면 우리 눈은 수많은 가짜 뉴스와 광고들을 보게 되고, 몸과 마음은 피폐해지겠지.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하늘을 쳐다본 횟수는 손에 꼽지만, 전자기기를 쳐다본 횟수는 도저히 셀 수 없다'는 생각 말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기술은 분명 인류에게 편의를 가져다주었지만, 그만큼 사회의 어두운 면을 끌어낸다. 순간순간의 콘텐츠에 시선을 유도해, 진짜 문제에 집중할 수 없게끔 만든다. 내 모든 행동은 세심하게 관찰되고 기록되고, 측정된다. 사회는 점점 혼란스러워지는 것만 같다. 그 어느 때보다 미래가 어둡게 느껴진다.
"좀 무모한 거 같죠? 마치 이것들을 디자인하는 근본적인 방법이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는 것 같아요. 전부가 말이죠. 그러니 모든 걸 바꿔야 한다는 게 무모하게만 들립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해요."
"우리가 할 수 있을까요?"
"그래야만 합니다."
"기술 그 자체가 실제로 위험하다는 게 아니라 사회의 어두운 면을 끌어내는 기술의 능력과 사회의 어두운 면이 실질적인 위협인 거예요. 기술이 대량 혼돈을 야기하고 분노, 무례, 서로 간의 불신과 외로움, 소외, 분극화, 선거 해킹, 포퓰리즘 등으로 진짜 문제에 집중할 수 없게 더 한눈을 팔게 만든다면 그건 그냥 사회인 거예요. 그런데 이젠 사회에 스스로 회복할 능력이 없고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경쟁은 끝나지 않을 겁니다. 기술은 우리 삶에 더 깊게 침투할 거예요. 인공지능은 퇴보하기는커녕 더 발전해서 우리의 시선을 잡아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