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전생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먼저 하게 될까? 나라면 전생에 사랑했던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지 확인하거나, 나이가 들어 하지 못했던 걸 마음껏 해보고 싶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여기, 전생을 기억하는 소년이 있다.
12살 소년 앙뚜는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는 '린포체'다. 린포체란 전생의 업을 이어가기 위해 몸을 바꿔 다시 태어난 티베트 불가의 고승으로, 살아있는 부처로 불린다. 앙뚜는 자신이 전생에 '티베트 캄'의 스승이었다며, 제자들과 함께했던 그때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앙뚜는 어려서부터 린포체라는 특별한 존재였지만, 또래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소년이기도 하다. 신나게 눈썰매를 타다가도 높이가 있는 썰매는 넘어질까 무섭다며 머뭇거리기도 하고, 공이 날아오는 게 무서워 자리를 피하는 귀여운 아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같은 사원에서 두 개의 해가 존재할 순 없는 법. 이미 린포체가 존재하는 라디크에 살고 있었던 앙뚜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만의 사원이 필요해지게 된다. 우르갼은 그런 앙뚜의 곁에 늘 함께하며 앙뚜를 정성스레 보살피고 앙뚜가 좋은 린포체가 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지를 보낸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땐 사실 속물적인 생각을 많이 했다. 대체 전생을 어떻게 기억한다는 건지. 앙뚜는 진짜로 린포체인지 아닌지.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앙뚜가 린포체인지 아닌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앙뚜와 우르갼이 서로를 의지하고 보살피는 장면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으니 말이다.
앙뚜는 티베트에 전생의 사원이 있어 그곳에 가고 싶어 하지만, 중국으로부터 가로막힌 국경 때문에 갈 수가 없는 상황. 린포체로서 사원이 있지 않고 린포체만의 교육을 받지 못하기에 앙뚜는 점점 초조해하고, 일부 라디크(인도) 마을 사람들은 앙뚜가 가짜 린포체라며 비웃는다. 점점 떨어져 가는 자존심과 초조함에 앙뚜는 힘들어하고, 그런 앙뚜를 위해 우르갼은 돈을 모아 앙뚜와 함께 티베트로 떠난다.
전생의 사원을 찾기 위해 티베트 캄으로 가기로 결심한 앙뚜와, 그런 앙뚜를 위해 헌신하는 스승 우르갼의 동행. 이 둘의 여정은 단순한 제자와 스승의 관계를 넘어서 원초적인 우정이 느껴졌다. 세대를 초월한 우정 말이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밭을 걷는 와중에도 스승 우르갼은 앙뚜의 발이 얼지 않았을까 걱정되어 젖은 양말을 벗기고 자신의 두 손으로 감싸 녹인다. 추워하는 앙뚜에게는 장갑을 사주면서 우르갼 자신은 맨손을 비빈다. 앙뚜는 어린 나이에도 3000km가 넘는 고행길에서 불평 하나 하지 않는다. 어린아이에게서 느껴지는 성숙한 영혼이 내게는 퍽 낯설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 다큐는 종교의 얘기가 아니라, 앙뚜와 우르갼이라는 사람 대 사람의 깊은 사랑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에 극찬을 받은 게 아닐까? 극명한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고 여정 중에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는 앙뚜와 우르갼 두 사람을 보며, 그동안 관계를 선 긋듯이 살아왔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어쩌면 나는 내가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일부러 남들에게 먼저 선을 그어왔던 건 아닐지. 무언가를 주면 그에 대한 대가를 꼭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나를 갉아먹은 것은 아닌지. 앙뚜와 우르갼의 관계를 보며 비로소 내가 놓치고 있던 소중한 관계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헌신하고, 베풀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