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왕이면 둘 다 잡고 싶다.
“나는 내가 나름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자꾸만 내가 잘 못 가고 있다고 말하는 거 같아. 누가 직접적으로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그냥 내가 그렇게 느껴.. 그래서 가끔은 혼란스러워. 내가 원해서 이 길을 선택한 건지, 아니면 괜한 자격지심에 그렇게 우기는 건지. 확신이 안 서.”
오랜만에 만난 대학 친구는 위태로워 보였다. 자신이 그동안 무엇을 향해 달려왔는지 모르겠다고, 독립은 해야겠는데, 할 수 있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친구들은 그동안 착실히 뭔갈 준비해온 거 같은데 자기는 뭔갈 꾸준히 해온 적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날 이후, 나는 몇 가지 메모를 했다. 아마 앞으로 더 많은 메모가 쌓일 것이다.
1)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뭘 해도 완벽하게 만족할 순 없지 않을까. 그러면 둘 다 할 순 없는 걸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어느 쪽을 선택하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이 오히려 내 선택을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닐까?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에 ‘체계’ 없는 삶으로 던져진 기분은 심히 참담하긴 하다. 학생이었을 때는 시험과 과제 등 체계적인 계획에 따라 내 일정이 세워지고 그에 맞는 에너지를 쓸 수 있었다. 그런데 대학교를 졸업하면 그 순간 모든 것이 중단된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자유’가 주어진다. 나는 이 자유 하나를 가지고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 누구 하나 가르쳐주는 이 없는 외로운 여정이 착잡하게 느껴진다.
3)
내가 좋아하는 책, <아무튼 메모>에는 이런 말이 있다. “사회 속에서의 삶이 수동적일수록 능동적인 부분을 늘릴 필요가 있다. 고정관념, 효율성, 이해관계와 무관한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45쪽)
4)
선배 밀레니얼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나보다 먼저 사회에 나가신 분들, 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계신 분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것이 내게 도움이 되든 안 되든, 이야기는 언제나 가치 있으니까.
5)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분야를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면 참 좋겠다. 세상에 꼭 이런 길만 있는 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그런 확신을 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좋겠다. 사실 내가 그런 확신을 주고 싶기도 하다. SNS라는 좋은 기술이 있는데, 이걸 가지고 뭔가 해볼 순 없을까? 나 같은 비주류의 창의 노동자들이 느슨한 연대를 통해서, 서로의 밥벌이를 도울 수 있는 그런 고정된 연결망이 없을까? 곧 학생이란 타이틀을 벗고 백수가 될 예정이라 부쩍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