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리뷰
지식은 개념이 모여 만들어진다. 여기서 개념은 어떤 대상에 대해서 ‘틀’에 들어갈 수 있는 공통적인 것, 공유될 수 있는 것만 남기고 특별한 것, 사적인 것은 여분의 것으로 인지해 깎아낸 생각의 형태로 저장한 것이다. 쌀을 한 움큼 쥐어 흘러나오는 것들은 배제하고 손안에 남는 것만 남겨놓은 것과 같다. 우리가 흔히 개념을 ‘파악’한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세상은 개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개념은 공통의 것만 남겨놓지만, 이 세계는 공통의 것으로 남겨지지 않는 것까지 포함한다. 무엇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것들이 여전히 많다. 개념이 출발부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모든 지식은 개념의 형태로 되어 있으니, 지식 또한 마찬가지로 한계를 가진다.
이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해왔던 것들, 이를 테면 질서를 잡는 일, 체계를 마련하는 일, 정의하고 이름을 짓는 일에 공허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는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 그만큼 이름을 짓는 것, 개념을 모아 지식을 만들고 하나의 언어로 정의된다는 것은 사회에서 큰 의미를 가져왔다.
복잡한 것들에 질서가 부여되면 우리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이름이 있고 개념이 있다면 눈앞에 있는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보며 ‘도대체 저건 뭐지?’ 하고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우리는 인류의 편리를 위해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것들을 개념 짓고 이름을 붙여왔다. 이름이 없는 것들, 개념이 없는 것들은 여전히 많기에, 지금까지도 학계는 연구를 통해 둥둥 떠다니는 이름 모를 것들을 특징짓고, 이름을 부여한다.
그렇게 개념과 지식이 쌓여 튼튼한 체계가 마련된다.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은 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많은 이름들, 지식들을 통해 세상을 이해할 것이다.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이름 없이 그저 둥둥 떠다니던 무수한 존재들을 이제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저것들은 사실 ‘물고기(비건지향인인 나는 물살이라고 부른다)'라는 거야. 개념을 알면 크게 어려울 것이 없단다”. 그렇게 아이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정해온 언어와 분류 체계로 많은 것들을 쉽고 빠르게 파악할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 정말 괜찮을까?
최근 어느 카페는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MBTI를 물어보고 특정 유형의 지원자를 탈락시켜 논란이 되었다. 이것만이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MBTI에 대한 관심 내지 숭배는, 본래적 자아들의 복잡성과 다양성이 주는 생명력을 가려버렸으니까. 어쩌면 우리는 지식을 손안에 놓고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지식은 분명 좋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더 많은 것들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질서를 잡고 개념을 만들어 분류하는 것이, 진정 우리를 자유롭고, 행복하고, 성숙하게 만드는가? 지식은 진리가 아닌데도, 우리는 지식과 신념에 갇혀 그동안 물어야 할 질문을 묻지 못했다. 이를테면 이 책에서 말하는 “물고기는 존재하는가?”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혹은 나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이 글은 최진석 교수님의 강연을 참고 및 인용하여 쓴 리뷰입니다. 세바시 강연 꼭 들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