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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 Soobin Feb 22. 2022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짐이고, 또한 힘이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리뷰


작년 여름에 읽고 너무 좋아서 다시 곱씹어보는 책. 이 책은 초반 100p까지가 압도적이다. 경이롭다. 돌봄에 대한 내 식견을 깨부수고 확장시킨다. 취약함을 사유하는 데서 돌봄이 출발한다니. 취약함을 공유하기에 시민이라니.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짐이고, 또한 힘이다.” 이 한 문장은 내 삶을 바꿔놓았다. 누군가에게 짐이 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이었거든.


나는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나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기를 바랐고 그것이 마땅하다고 여겼다. 독립적인 개인이 되고 싶었다. 개인주의자 선언 뭐 그런 거, 나도 해보지 뭐.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왠지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주체적인 사람, 독립적인 개인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변 어른들은 내 기대와 달리, 한시도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았다. 1년 동안 즐겁게 다니던 배드민턴만 해도, 외향인인 나를 내향인으로 만들었으니 오죽할까.


안 먹는다고 해도 굳이 손에 귤을 쥐어주던 아주머니, 멀찍이 바라보다가 조용히 다가와서 자세를 가르쳐주는 아저씨, 몇 살이냐, 남자 친구는 있냐, 얘가 너보다 나이가 어리니까 반말하면 되겠다며 일방적인 토크를 늘어놓는 어르신들.. 정신이 혼미해서 잠시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면 화장실 짓고 왔냐며, 빨리 와서 게임하자고 멀리서 소리치신다. ‘젊은 사람들이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구시렁대면서도 후다닥 공을 가지러 간다.



내가 무너진 것은 그로부터 얼마 안 되서였다. 작년 겨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날을 마주했다. 상상해본 적 없었기에 더더욱 힘들었던 그날. 그때도 나는 버텼다.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힘든 티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을 달랬다. 상황을 조용히 지켜만 보았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뭐라도 해야겠다며 배드민턴장에 갔다. 한 아주머니가 고구마를 주셨고, 다른 한 분은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며 잔소리를 하셨다. 그러다 평소 장난끼 많던 아저씨가 살며시 다가왔다. 괜찮냐며 묻고는 살짝 안아주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오지랖이 넓고 말도 많고 서툴렀지만, 모두 날 위하는 마음들이었다. 그렇게 멀고도 가까운 사람들의 품 안에서 나는 목놓아 울었다.


그때 깨달았다. 최악은 무관심이라는 것.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은 없고, 그러려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 독립과 의존은 반대가 아니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있었기에 내가 1년이 넘도록 배드민턴을 다닐 수 있었던 거 같다.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고통을 겪을 때,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압도적으로 중요한지 이제는 안다. 요즈음 내가 다시 책을 읽고 나에 관한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위한 것도 있지만, 나와 같은 아픔을 겪었거나 지금 힘든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해서다.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지만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감정들을 오롯이 느끼겠다며 용기 낸 당신을 기꺼이 돌보고 싶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언제나 서로의 짐이고, 또한 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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