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불편러'면 안되나요?

일상 속 불합리와 부당함을 알려주는, 《프로불편러의 일기》

by 수빈 Soobin

1.

무한도전의 장면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그 속에 담긴 풍자적 의미를 알아내 보신 적 있으세요? 뉴스를 보면서 '이 뉴스는 틀림없이 우릴 속이려는 언론의 횡포임이 틀림없어, 난 숨겨진 의미를 파헤치겠어!'라고 생각해본 적은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한 목적 없이 습관적으로 TV를 시청할 겁니다. 만약 위와 같은 생각으로 텔레비전을 본다면, 우리는 극도의 피로감을 느껴 TV를 잘 켜지 않겠죠.


우리는 아주 편안한 자세로,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면서 혹은 공감하면서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싶어 합니다. 가뜩이나 현실조차 불평불만으로 가득한데, TV를 보면서까지 불편을 느끼고 싶진 않겠죠. 그래서 우리는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것들을 받아들일 뿐, 그 속에 숨겨진 의미나 부당함은 없는지 생각하진 않습니다. 아, 이게 잘못됐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혹은 정반대의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어떤 걸 보고, 듣고, 접하면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들고 기분이 께름칙한 사람들이 있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별 거에 말이 많네, 불만 있으면 보지 마!", "저렇게 생각하면 일상생활 어떻게 하냐;;", "프로불편러니까 걍 무시하세요~ㅋ"라는 소리를 듣기 때문입니다. 'X선비', '키보드워리어'라며 악플이 달리기도 합니다. 목소리조차 내기 부담스러운 분위기에, 그들 마음속 불편함은 주눅 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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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불평등한 한국사회에서 '프로불편러'는 필요한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대로 부수고, 제대로 치이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죠. 토론을 위해서는 작은 이슈 하나하나에도 그 속에 숨겨진 불합리함과 부당함이 없는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이들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지배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의문을 품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프로불편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생각과 의견을 보면서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숨겨진 의미를 발견할 수도 있고, 그 의견에 반박하기 위해 나름의 조사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이슈를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도 얻게 되죠.


2.

만약 '불편러'가 없다면 어떨까요? 뉴스 댓글에는 한쪽의 의견이 지배적이겠죠. 댓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댓글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양한 시각으로 뉴스를 보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거기서 의문을 갖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뭐야,게 옳은 말 아냐?'라며 기존에 갖고 있던 관념에 의구심을 품게 되고, 직접 사실관계와 옳고 그름을 따져보게 됩니다. 결국, 세상에 무시해도 되는 불편함은 없습니다. 사회적 상식으로 통용되는 어떤 것이든 누군가 불편함을 느낄 때 그것에 대해 성의 있게 논의하지 않으면, 그것이 틀렸는지 맞았는지 따져볼 기회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3.

이 책은 딱히 우리가 생각해보지 않을 법한 것들에 대해 '불평'합니다. 그것도 꽤 일리 있게 말이죠. ['개저씨'라는 말이 싫어요?]라는 저자의 불평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넘어갔던 것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p.37-40
'개'와 '아저씨'의 합성어인 '개저씨'가 온라인에 등장한 거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등장 자체가 최근인 건 아니다. '개저씨' 피해 사례라고 공개되는 수많은 일화는 결코 낯설지 않다. 택시 기사는 여자 승객에게 "자기야" 소리를 서슴지 않고, 남자 손님은 식당 아주머니에게 반말이 예사다. 지하철에 탄 할아버지가 의자에 앉은 수많은 사람 중 20대 초반의 여성에게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며 고래고래 욕을 하고 삿대질을 한 건 약 10년 전 개인적으로 직접 목격한 일이다. 요컨대 만만한 대상, 거의 대부분의 경우 여성에게 한 줌 혹은 그 이상의 권력을 폭력적으로 행사하는 나이 든 남성들은 오랜 시간 장소를 불문하고 존재해왔다.

'개저씨'나 '된장녀'나 특정 성을 비하한다는 면에서 똑같다는 주장이 안일한 건 그래서다. '된장녀'가 일부의, 그것도 딱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소비 행위를 젊은 여성 전반의 것으로 일반화하는 개념이라면, '개저씨'는남자 상사의 프리허그가 있는 직장과 아저씨가 초면인 젊은 여성에게 치마가 짧다고 시비를 거는 등 우리 일상에 권력으로서 실재한다.

이것은 전근대적인 남성 본위 사상의 잔재일까. 어느 정도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의 사례에서 남자들은, 남자는 하늘이라는 식의 호기보다는 눈앞의 상대적 약자를 놓치지 않는 계산적인 음험함을 보여준다. 정규직이 되기만을 바라며 성추행도 견디다가 정규직 전환 실패에 자살했던 스물다섯 살 계약직 여성처럼, 다른 선택지가 마땅치 않은 약자를 정확히 골라낸다. 그들의 세상은 강자와 약자, 갑과 을로 구분된다. 한국에서 학습되는 남성성이란 이런 위계관계를 내면화하는 것에 가깝다.
...
즉, 상당수 남성들에게 서열 관계를 통한 권력 행사는 편의적이기 이전에 옳은 것이다. 그래서 쉽게 정당화된다. 그래서 이런 상당수 중년 남성의 무례함과 폭력은 개인 인격의 문제만으로 소급하기 어렵다. 그들도 시스템의 피해자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갑을 관계에서 '갑질'을 하지 않는 인격적 성숙함도 중요하다. 하지만 인격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상을 서열화해서 바라보는 관점 자체다. 깨어 있는 남성은 여성의 입장에 서는 것에서조차 여성을 능가하기에 여성을 이끌 수 있다. 이것이 '개저씨'의 논리다. 그들에게 좌우보다 우선하는 건 상하다.

물론 여전히 '개저씨'라는 표현이 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썰렁한 농담을 하는 순간에조차 웃기는 나와 웃어줘야 하는 너희의 구도로 권력을 재확인하고야 마는 아저씨들 중심의 세계에서, 심지어 자신들의 입장을 말하는 포지션조차 깨어 있는 아저씨들에게 빼앗긴 세상에서, 사회적 약자는 담론의 영역에서조차 주변부로 밀린다.


4.

이 책은 성차별에 대한 '불평'을 자주 했는데, 특히 이 부분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 중인 '미투(Me Too) 운동'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예전부터 '#문단_내_성폭력'과 같은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유명 인사들의 성추행을 고발해왔습니다. 최근에는 한 여검사가 '안태근 검사장 성추행'을 폭로하면서 미투 운동이 촉발되기 시작했죠.


표 : 동아일보
미국에선 안젤리나 졸리와 같은 유명 인사들이 나서는 형태지만, 한국은 아직까지는 정상급 스타나 유명 인사들이 나서기를 꺼리고 있다. 고은 씨의 성추문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 정도가 그나마 대중적으로 익숙한 이름이다. 문화예술계 안팎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높지 않았던 과거에 성희롱과 성추행이 더 심하고 훨씬 많았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공공연한 비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유명 여성 문화예술인들이 미투 운동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선, 한국이 아직까지 성폭력과 여성 지위 향상 같은 이슈를 자유롭게 논의하기 어려운 분위기임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유명 인사들의 경우 자칫 자신이 갖고 있는 특권이나 지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에선 연예인들이 어떤 정치적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지지하는 연대가 존재하고 이어 사회적인 목소리가 만들어지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는 지적이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의 경우 양성평등과 차별 방지에 대한 교육이나 논의의 역사가 길다”며 “한국에 비해 여성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도 적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상급의 여자 배우들이 할리우드 권력자(와인스틴)를 대상으로 정면 대결을 펼칠 수 있다는 것도 사회적으로 이런 문제 제기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80303/88934356/1#csidxe3c43b8d86426079ed7c6710ee4154c


5.

개저씨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통찰과 미투 운동은 각 시기는 다르지만, 독자에게 같은 생각거리를 줍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들이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 속에서 알게 모르게 남성중심주의적 권력이 실재했죠.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용기 있는 '불평' 덕분에, 비록 그것이 최종적으로는 잘못된 것으로 판명 났다 하더라도, 여성들이 공론장에 참여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가정폭력이 개인의 사생활 문제가 아닌, 공적인 문제이자 범죄로 인정받은 것은 채 50년도 안 된 일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불편함을 제기함으로써 비로소 '우리'의 문제로 인식된 것이죠.


6.

프로불편러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하는 저자 위근우 씨 또한 다양한 방면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프로불편러입니다. 그는 2008년 엔터테인먼트 전문 웹진 《매거진 t》에 입사해 대중문화 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텐아시아》를 거쳐 현재 웹매거진 《아이즈》에서 취재팀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그는 직장 외에도 네이버 스포츠 고정 칼럼과 네이버 캐스트 웹툰 작가 인터뷰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글을 써왔습니다. 그의 저서로는 『웹툰의 시대』(2015). 공저로 『야구 읽어주는 남자』(2012). 『웃음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2013). 『혐오_주의』(2016)가 있습니다.


7.

이 책은 사회적 현상이나 대중문화 텍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지는 야만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의 원고들을 모았습니다. 때문에 평소에 뉴스를 보면서 알게 모르게 불편함을 느꼈던 분들, 혹은 그렇지 않은 분들 모두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그냥 넘어갔던 것들에 대해 일깨워주면서, 작은 이슈 하나하나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해야 할지 알려주죠.


8.

세상에 무시해도 되는 불편함은 없습니다. 사소한 불편은 어쩌면 거대한 부당함이 숨겨진 걸지도 모르죠. 영화 속 숨겨진 감독의 연출을 알아내는 것이 소름 돋는 것처럼, 막연하게 넘어갔던 사회적 불편함과 그 속에 숨겨진 부당함을 알게 되는 것 또한 소름 돋을 겁니다. 「프로불편러의 일기」를 통해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불합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세상을 보는 안목을 길러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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