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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모험》- 릴리쿰을 읽다.

by 수빈 Soobin

1.

우리는 '만들기'를 하고 있는가?


예전에 초등학교 때 만들었던 고무동력기 이후로는 딱히 뭘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성인이 되니 더더욱 만들기가 귀찮다. 만들다가 망친다거나, 실패하는 게 싫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세상에 누가 실패를 원하겠는가? 아무도 자신이 만든 것이 실패작이 되기를 원치는 않을 것이다.


사회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본다. 과정을 볼 수 없어서인 것도 있지만,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이상, 굳이 노력을 들여 과정을 보려 하진 않는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노력했지만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주변 눈치를 보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직접 만들기보다는 전문가들이 만든 것들을 '산다'. 소비하는 게 익숙해지다 보니, 점점 물건을 만들고, 고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에어컨이 고장 나면, 사람을 부른다. 변기가 막히면, 사람을 부른다. 핸드폰이 고장 나면, 적당한 가격에 재구매한다.


우리는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거나 고쳐보지 않는다. 만지다 고장 날까 봐, 내가 만드는 것보단 전문가가 만든 게 훨씬 나으니까, 나는 손재주가 없으니까. 결국 우리는 만들지 않고, 끊임없이 '소비'할 뿐이다.

사진 : Unsplash.com


2.

그런데, 누군가는 실패를 '기쁘게' 여긴다. 실패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나아가 좋아한다. 바로 릴리쿰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본다. 자신의 작품이 성공했든 실패했든, 그들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깨닫고, 느낀다.


작품으로 탄생하기까지, 그들의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부분이 없다. 부품 하나하나에도 그 원리를 알아내려 한다. '이 의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이 핸드폰은 어떤 구조로 이루어져 있을까?' 하며 하나하나 파헤친다. 비록 핸드폰은 고장 나지만, 그들은 덕분에 핸드폰의 구조와 원리를 깨달았다. 중요한 건 다음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무언가를 이루는 것, 그것이 만들기다."
- 《손의 모험》中에서 -


그들은 직접 만들면서 하나의 물건이 지나온 길을 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더 건강한 삶과 분별력을 얻는다.


즉, 만들기는 비단 그 물건의 원리와 기술만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물건을 이해하면 이 '사회'를 알게 되고, 또 그 물건을 필요로 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 만들기가 사라진 시대에서,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 답을 구하는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즉, '만들기'도 중요하지만, '만들기'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것'이 핵심이다.


"자기를 표현하고자 하는 이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것,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하고 직접 만들어 쓰거나 고쳐 쓸 수 있는 능력을 장착하는 것, 그러고자 노력하는 것은 내 삶을 이루는 물건들을 주도적으로 장악해 삶에서 주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욕구에 가깝다.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듯 주어진 선택지에서 골라 삶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지 자체를 스스로 마련하는 일이다."
사진 : Unsplash.com

3.

메이커란 무엇일까?


우리가 생각하는 메이커는 일단 '어설픈 사람'은 아니다. 자격증, 전문 지식을 갖추고, 자신의 관심분야와 만들고 있는 것을 확실히 설명할 줄 아는 사람들이, 사회가 정의하는 '메이커'다. 왜? 실패하면 안 되니까. 실패작을 만들지 않기 위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는 것은 소비사회에서 당연한 거니까.


끊임없이 생산하고 성장해야만 한다는 사회의 강박이 노동으로, 소비로, 성장주의로, 우리의 삶에 선을 긋는다. 그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소비자가 되는 것뿐이다. 선 밖에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선을 넘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만들기와 분리되어 소비에 갇혀버렸다.


하지만 저자는 '메이커'를 다르게 정의한다. 관심사가 언제나 사방으로 튀고, 잘 정리된 지식도 없이, 간단한 걸 만들더라도 끝없이 인터넷을 뒤지고, 수많은 실패를 거쳐야 겨우 만드는 사람들이 '진짜 메이커'라 말한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누구나 메이커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만들기를 잊어버린 듯하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스스로 해결하던 시대,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와는 다른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직접 무언가를 해본다는 경험은 점점 드물어지고, 그럴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
사진 : Unsplash.com

저자는 소비 사회로 인해 변해버린 '메이커'의 개념에 아쉬움을 표현한다. 그도 그런 것이, 우리는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고만 생각하지, 왜 실패하면 안 되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실패'라는 것이 부정적으로 여겨져 왔으니까. 소비 사회에서 '실패작'은 소비되지 않으니까. 실패가 오로지 나쁜 걸까?


삶의 선택지 자체를 스스로 마련하기 위해서는 '만들기'를 해야 한다.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하고, 직접 만들어 보거나 고쳐보면서, 물건을 알아가야 한다. 이러한 경험은 자연스레 나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다른 분야로 '모험'하는 동기부여가 된다. 그렇게 되면 실패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늘 배우니까.


무언가를 만든다고 할 때, 예를 들어 의자를 만든다 빵을 만든다 할 때, 우리는 결과물인 의자와 빵에 무게를 두어 생각하지 그것을 만든다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 '만들기'라는 말의 의미를 한정하고 낯설게 보고자 함이 이 책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4.

다시, '릴리쿰'으로 돌아와 보자. 릴리쿰은 '나머지'라는 뜻의 라틴어다. '잉여'라고도 불린다. 그들이 바라보는 '잉여'는 소외된 실패자들이 아니다. 그저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다. 그런 잉여인간이 모인 곳, 릴리쿰에서 그들은 만들기를 통해 끊임없이 실험하고 도전한다.

사진 : Unsplash.com
현재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다. 입문자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릴리쿰에는 유독 입문자가 많다. 그들은 관심 분야가 다양하고 다른 분야로 뛰어들거나 합치는 일에 호기심이 많을 뿐 아니라, 그런 모험이 주는 동기부여의 힘을 안다.


그들은 '실험', '공작', '출동', '발사' 크게 4가지의 활동을 통해 '무(無)'에서 '유(有)'를 추구하는 '만들기'를 한다. 실험에서는 떠오른 것을 만들어 보고, 공작에서는 재밌거나 필요한 것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며, 출동에서는 놀이터와 워크숍으로 릴리쿰을 공유하고, 발사에서는 전시, 출판 등의 활동을 한다.


릴리쿰의 '만들기'는 실로 대단했다. <회로운 침공술> 워크숍은 반응이 좋아, 네이버 엔젤스의 후원을 받아 한 번 더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단다. 실패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현대 사회에서, 과정보다는 결과를 보는 시대에서, 끊임없이 도전했기에 이런 결과를 얻은 게 아닐까 싶다. 그야말로 '손의 모험'이다.


5.

정리하자.


'만들기'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만들기를 통해 하나의 물건이 지나온 길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모험'심도 생긴다.


하지만 우리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만들기' 보다 '사는 것'에 집중해왔다. 그러다 우리는 만드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잊어버렸다. 사고, 또 사고. 만들거나 고쳐보지 못한 채, 수많은 물건들을 끝없이 소비한다.


릴리쿰은 이러한 소비 사회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은 오히려 실패를 즐기며, 만들기를 통해 끊임없이 실험하고 도전한다. 그들은 여전히 모험 중이다.


'손의 모험'에 앞장서는 '릴리쿰'. 그들의 '만들기'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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