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들으며 책 읽기, 《재즈와 살다》
가을의 분위기를 담은 곡들은 대부분 조금은 쓸쓸하다. 무언가 말할 수 없는 고독감, 외로움, 씁쓸함. 점점 차가워지는 바람을 맞으며, 나도 모르게 생각에 잠기곤 하는 계절. 떨어지는 갈색빛 낙엽을 보며 한껏 외로움에 젖는 계절, 가을. 어쩌면 우리는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가을에「독서의 계절」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준 게 아닐까. 그런 만큼 가을 분위기를 담은 곡들은 뜨겁고 정신없는 여름의 분위기를 차분히 안정시켜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더더욱 Cannonball Adderley의 Autumn Leaves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 곡은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가을 노래'에 대한 편견을 깨 주었다. 가을의 분위기를 담았지만, 결코 고독감, 쓸쓸함 같은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봄 특유의 생기가 느껴진다.
https://www.youtube.com/watch?v=u37RF5xKNq8
노래에 집중하면서 절로 고개를 까딱하고, 발을 튕기며 리듬에 몸을 맡기게 된다. 한 음, 한 음, 설레는 마음을 가진 연주자가 열정을 다해 연주한다. 왠지 가을의 축 처지는 분위기가 아니라, 봄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생동감.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는 중년 남성이 아니다. 떨어지는 낙엽을 지그시 바라보는, 지난날도 추억이라며 웃음 짓는 중년 남성이 떠오른다.
스타트는 베이스. 비록 몇 음 되지 않지만 오히려 그 심플한 멜로디가 가을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를 만든다. 베이스 위에는 뮤트 트럼펫이 살포시 음을 얹는다. 낙엽이 흩날리는 거리를 걸어가는 중년의 남성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아마 그 남성은 중절모를 썼을 것이다. 갈색빛 낙엽이 발밑으로 떨어지자, 남성은 상념에 잠긴다.
다음은 색소폰, 재즈에 빠질 수 없는 존재. 육중한 음과 함께, 곡의 분위기는 풍성해진다. 남성은 떨어진 낙엽들로 가득한 공원에 도착한다. 색소폰의 화려한 연주와 함께, 곡의 속도가 빨라진다. 중년 남성이 낙엽 더미를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뮤트 트럼펫이 나오며 분위기는 다시 차분해진다. 낙엽 더미 놀이를 마친 남성의 걸음도 다시 천천히, 추억을 떠올리며 걷는다. 그 남성은 추억을 떠올리며 지난날을 되새기지만, 쓸쓸함을 느끼진 않는다. 지난날은 지난 날일 뿐, 그 시절도 좋았다며 옅은 미소를 짓는다.
피아노 솔로와 함께 분위기가 고조되다가 다시 한번 뮤트 트럼펫, 그리고 피아노의 은은한 마무리. Cannonball Adderley의 완벽한 Autumn Leaves다.
가을을 표현한 곡인데 어째선지 가을 특유의 쓸쓸함이 느껴지지 않는 건, 이 곡을 녹음한 때가 가을이 아니라 봄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 또한 곡에서 희미하게 봄이 느껴졌다. 연주자들이 마치 봄이 와서 한껏 들뜬 소년 같았다.
1958년 3월 9일 루디 반 겔더의 스튜디오에 녹음하러 오면서 이 5명의 연주자는 긴 겨울을 지나 약동하는 봄의 기운에 설레었을지도 모른다. 모처럼 비추는 햇살에 "이젠 무거운 겨울 코트를 벗어야겠군. 이번 녹 음료를 받으면 봄 양복을 하나 사볼까?"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수도 있겠다.
나아가 <Autumn Leaves>를 연주하기 전에 지난가을을 떠올리며, 시간에 의해 순화되고 추억이 되어버린 지난날이 그래도 좋았다며 즐거운 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건 가을의 상념보다는 봄의 희망 속에서 이 곡을 녹음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 봄의 기운이 떨어진 나뭇잎으로 가득한 가을을 그리는 연주에 희미하게나마 생기를 불어넣었을 것이다.
비록 곡을 작곡한 순간이 가을일지라도, 그 당시엔 쓸쓸함과 고독감을 한껏 불어넣었을 지라도, 곡을 녹음하는 때는 봄이었다. 따뜻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에, 그들은 들뜬 마음을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반년이 지났기에, 연주자들은 지난가을에 느꼈던 우울한 감정들, 씁쓸했던 나날들도 돌이켜보면 추억이 됐다며 옅은 미소를 뗬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가끔 다른 계절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어제는 눈이 쌓이는 소리가 그리웠고, 오늘은 바스락 거리는 낙엽 소리가 그리웠다. 다른 계절이 그리울 때, 재즈를 듣다 보면 간접적으로나마 그 계절을 느낄 수 있다. 눈을 감고 들으면, 그 계절의 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진 기분이 들어서 더 좋다. 그것이 내가 재즈를 듣는 이유다. Cannonball Adderley의 Autumn Leaves 덕분에, 오늘은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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