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 내가 남미로 떠난 이유

나의 여름 나의 남미

by 숲피

퇴사 후 여행지로 남미를 골랐다


남미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유럽, 북미,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우선 다녀온 적이 있는 곳은 배제했다. 아시아. 나중에도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은 곳도 배제했다. 아프리카. 금전적인 문제가 걸렸고 가장 정제되지 않은 곳은 뒤로 남겨두고 싶었다. 남미가 남았다.


그러나 단순한 가지치기 후 남은 대륙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시간을 쏟아도 될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끌렸다. 남미는 머릿속에 하나하나 떠올려본 곳들 중 가장 '색이 짙은 날것'이었다. 문명과 자연이 적절히 어우러진 곳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 어차피 돌아올 것이라면 가장 멀리 가고 싶었다. 우리나라의 대척점엔 남미의 우루과이가 있다. 또, 무뎌진 나에게 강한 자극을 줄 만한 강렬한 땅에 가고 싶었다. 남미 사람들의 짙은 피부색과 격정의 삼바, 탱고, 살사가 떠올랐다.


Colombia, South America
Colombia, South America
Dancers in Red, South America
Dancers in Green, South America



내 안의 여름을 찾기 위해 남미로 갔다


나는 여름을 사랑한다.

녹음은 더 짙게,

바닷물은 더 푸르게,

햇살은 더 눈부시게 만드는 여름의 힘을 사랑한다.

여름이라 더 아름답고 찬란하게 만드는, 여름 특유의 정서를 사랑한다.


남미의 사진을 뒤적이고 관련 책을 읽었다. 코끝에 짙은 땀냄새가 밴 여름 바람이 불었다. 아무래도 남미에 꼭 가야 했다.


어느새 살면서 나는 내 안의 뜨거움을 잃었고,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뜨겁고 생기 넘치는 사람이고 싶었다. 어쩌면 동경일지도 몰랐다. 아직 내 안의 여름을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뜨거운 에너지가 가득하던 시간이 한풀 꺾이고 삶의 얼룩이 물든 가을을 맞이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생각했다.


Photo by Daoudi Aissa on Unsplash



남미에서 내가 사랑하는 여름을 만났다


모든 게 날 설레게 했다. 자꾸만 밖으로 나가고 싶어 지는 몸뚱이도, 느지막이 고개를 내미는 여름 달도, 까만 어둠이 내려앉아도 거리에 짙게 깔린 활기찬 소음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내가 사랑하는 여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계절.


남미 사람들의 열정이 낳은 땀냄새가, 꾸밈없는 순박함이, 그 생기 넘치는 활기가 나를 다시금 살아나게 했다. 그 큰 대륙이 온몸의 감각을 일깨웠고 바람이 되어 끊임없이 나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눈부신 바다 위 찬란하게 빛나는 햇살과 해변의 부서지는 파도소리. 짙은 녹음이 드리운 생명력 넘치는 숲과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이파리들이 서걱서걱 몸을 비벼대는 소리. 벌컥벌컥 들이키는 탄산의 청량함과 터져 나오는 아이들의 싱그러운 웃음소리. 햇볕에 그을린 건강함과 지나가는 행인에게 건네는 따뜻한 환영의 소리….


그 소리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생명이 됐다. 그 생명을 살며시 흔들어 깨우면, 눈 앞엔 풍경들이 선명하게 펼쳐지고 코 끝을 간질이는 냄새가 자연히 피어오른다.


Brasil, South America
Cuba, Central America
Photo by Jodie Walton on Unsplash
Photo by Wil Stewart on Unsplash



돌아온 내게 남은 건 뜨거웠던 여름날 어느 순간의 일렁이는 조각들이다


가끔은 더위에 지쳐 헥헥댔지만 여름에 져도 슬프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난 여름 안에서 가장 빛났고 대담했고 아름다웠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난 불안하고 안정감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불안감이 예측할 새 없이 고개를 들이밀 때에도 마냥 두렵지만은 않다. 이건 아니다 싶으면 돌아오면 되고, 힘들다 싶으면 잠시 쉬어가면 된다는 걸 알았다. 한 템포 쉬어가도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쉼은 다음을 해낼 힘을 준다.


예전에 난 남들이 몰려가는 줄에 서서 번호표를 뽑아 들었고, 내 이름이 불릴 때까지 불안함에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한다면 좋은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가지고 싶다면, 이루어내고 싶다면 기회가 있는 곳에 최소한 가 있어야 한다. 그 정도의 용기는 꼭 필요하다.


어디로 갈지 정했다면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을 믿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 언제 어디서 나를 위한 인생 문이 열릴지 알 수 없으니.


Photo by Stephen Leonardi on Unsplash



이것이 지난 7개월간 그 거대한 대륙을 두 발로 밟으며 깨닫게 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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