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그냥 가지 말까?

4개월에서 7개월이 된 남미 여행의 시작

by 숲피

남미에 가기로 했다


처음 들어간 직장을 그만뒀고, 바로 다음을 준비하는 대신 나에게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시선은 차치하고서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지만, 그렇기에 하고 싶은 일 하나쯤은 한 번 해보고 싶었다.


해가 넘어가기 전 12월에 남미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한국이 추워질 즈음 따뜻한 남미 나라로 떠날 심산이었다. 남미로 떠날 결심을 한 게 벌써 작년 9월의 일이다.


▲ 광활한 남미 대륙 지도.




시계 방향 vs 반시계 방향


남미에 가기로 결심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인아웃 루트를 설정하는 일이다. 남미 대륙은 워낙 커서 인아웃 여행지가 다른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남미 여행을 끝마치고서 다시금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첫 여행지로 돌아가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보통 남미를 여행한다고 했을 때, 페루(리마)에서 시작해 아르헨티나(부에노스 아이레스) 또는 브라질(상파울루)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는 것을 반시계 방향, 그 반대를 시계방향이라고 부른다.(국민 루트는 페루 인, 아르헨티나 아웃이다.) 물론 중미에서 시작해 남미로 내려오거나, 남미에서 시작해 중미에서 마무리하는 여행자들도 많다.


각 방향에 따른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이를 잘 고려하여 자신의 여행 시기와 여행 기간, 취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대다수의 한국인 여행자가 선택하는 반시계 방향의 경우, 상대적으로 동행을 구하기 쉬우며, 여행 루트상 고도가 점차 높아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무리 없이 고산에 적응하기가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시계 방향의 가장 큰 장점은 반시계로 도는 여행자들이 워낙 많다 보니 다음에 갈 여행지에서 막 넘어온 여행자들로부터 가장 최신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kingdom-compass-706126-unsplash.jpg ▲ 반시계 방향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맞이하게 되는 페루의 마추픽추.




똑딱똑딱 나의 남미 여행 시작점은


나는 시계 방향을 택했다. 남미에서 꼭 하고 싶은 것들 중 여행시기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들 위주로 고려한 결과였다.


첫째, 적어도 3월이 되기 전엔 칠레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을 해야 했다.(4월만 되어도 파타고니아 지역은 추위 때문에 트레킹이 힘들어진다.) 둘째, 늦어도 3월 안에는 가야지만 우유니의 물 찬 소금 사막과 반영을 볼 수 있었다. 셋째, 페루는 한국의 겨울 기간이 우기이기 때문에, 마추픽추를 가려면 2월이 지나고 가면 좋았다. 마지막으로, 중미의 휴양지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면 좋을 것 같았다. 결단은 내려졌다. 여행 시작을 12월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계 방향으로 돌아야만 예상치 못하게 포기하게 될 경우의 수를 줄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비행기 티켓을 끊을 차례였다. 요즘엔 점차 남미로 많이들 떠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쉬운 여행지는 결코 아니었기 때문에 시작점부터 생각해야 할 게 많았다. 치안에 대한 문제도 고려해야 했고, 언어가 안 통하는 것도 문제였다.


브라질로 들어갈 것인가, 아르헨티나로 들어갈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남미=위험한 곳'이라는 수식이 성립하는데, 브라질은 그중에서도 특히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다녀온 사람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닐뿐더러 걱정과 달리 너무 좋았다는 후기들이 마음을 끌었다. 결국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가 내 남미 여행 첫 시작점이 됐다.


robert-nyman-442994-unsplash.jpg ▲ 죽기 전에 꼭 보고 싶었던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예수상.




2017년 12월 8일, D-day


전날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남미로 가는 편도 티켓을 호기롭게 끊어 놓고서는 하루하루 가까워 올수록 겁이 났다. 가는 게 맞는 걸까, 취소하고 하루빨리 취업 준비나 할까…. 하루에도 여러 번 생각이 바뀌었다.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으려 아무리 애쓴들 야속하게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 떠나는 날이 됐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슬그머니 일어나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이제 돌이키기엔 늦었다. 가야만 한다. 전날 하루 온종일 걸려 싼 55리터짜리 배낭과 보조 가방을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오히려 차분해진 나보다 부모님이 더 분주한 아침이었다. 앞으로 한동안 없을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빠는 이미 내 무거운 배낭을 이고 주차장으로 내려간 뒤였다.


떠나는 나를 배웅하기 위해 아빠는 월차를 냈고, 엄마는 연가를 냈다. 뒷좌석에 앉아 부모님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가라앉았다. 불효하는 걸까. 분명 한동안은 내 걱정에 잠도 설치실 거였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휘젓고 어느새 작별할 시간이었다. 아빠는 도리어 덤덤하게 이런저런 당부의 말을 건넸다. 마음은 그렇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았다. 엄마는 마지막에 결국 눈물을 비쳤다. 스무 살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 나를 두고 집으로 내려가던 엄마에게서 보았던 얼굴이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가 돌아서고 부모님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남미, 그냥 가지 말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언제 돌아오고 싶을지 모르니, 돌아오는 날짜를 열어두고 싶어 편도행 티켓만 끊은 것이 화근이었다. 아쉬우면 다음에 한 번 더 갈 수 있을 만큼 가깝고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될 거라 믿었던 게 잘못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비행기 출발 시간으로부터 무려 네 시간 전이었다. 아직 출국 수속 카운터가 열리지도 않았을 시각이었다.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자 커피 한 잔과 샌드위치를 사들고 야금야금 먹으며 카운터가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마음은 많이 가라앉아 있었고 이제 와서 떠나지 않으면 더 크게 후회할 거라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고 추슬렀다.


억지로 가라앉힌 마음으로 출국 수속 카운터에 섰다. 하지만 직원이 한국 입국 티켓이 없고서는 보내줄 수가 없다고 했다. 아무래도 미국 경유라 까다로운 듯했다. 누구도 탓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한국 입국행 티켓을 사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출국 거부를 당해 시작도 못한 채 여행이 막을 내리는 수가 있었다.


이리저리 찾아보다 한국행 티켓을 끊었다. 그제야 출국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으론 부족했던 건지 항공사에선 내가 입국심사에서 거절당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엔 항공사에 책임이 없다는 서약서에 사인을 받고서야 나를 보내주었다. 결국 난 제일 먼저 줄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체크인을 마칠 수 있었다.


IMG_9147 (1).JPG ▲ 12월 8일, 애틀란타를 거쳐 남미로 떠나는 비행기 티켓.




눈물로 얼룩진 중남미 여행의 시작


미국으로 가는 13시간의 비행 내내 나는 혹여나 입국 심사에서 거절당할까 마음을 졸여야 했다. 4시간의 경유 후 브라질로 들어가는 10시간의 비행 동안에는 혹여나 브라질에서도 입국을 거절하진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결국 한국에서 브라질까지 가는 내내 심란하고 어수선한 마음을 달래야 했다.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아무렇지 않게 욕 한 번 하고 털어 넘길 수 있는 별일 아닌 일들도 혼자 모든 걸 해내려니 별일이 되는 것 같았다.


그때는 몰랐다. 걱정과 심란으로 한껏 웅크린 마음으로 브라질로 날아간 그 날이, 4개월에서 7개월로 늘어나 버린 나의 중남미 여행이 시작된 날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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