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브라질!
경유 시간을 포함하여 약 서른 시간을 날았다. 애틀랜타에서 리우로 가는 비행기는 폭설로 인해 한 시간여 지연된 후에야 리우를 향해 몸을 날렸다.
비행기는 거의 텅 비다시피 했다. 기웃기웃 돌아보니 한 캐빈 안에 10명이 채 안 되는 승객들이 옆 자리에 몸을 걸치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나도 좌석 팔걸이를 올리고 최대한 편안히 몸을 뉘었다. 밤 비행기였던 데다 도착 한 날 바로 소화해야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기민한 정신을 애써 잠재웠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슬며시 졸린 눈을 뜨자 새까맸던 차창 너머로 푸른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창 밖으로 펼쳐지는 파란 하늘과 구름, 어딘지 모를 도시의 머리 위를 감상했다. 얼마 후 비행기가 몸을 돌려 서서히 아래로, 아래로 회항하기 시작했다.
“브라질은 왜 왔어?”
“여행하러 왔어.”
“얼마나 있을 거야?”
”열흘 정도 있다가 아르헨티나로 넘어갈 거야.”
”오케이. 웰컴 투 브라질!”
걱정했던 바와 달리 입국 심사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배낭을 찾아 입국장을 빠져나왔을 때, 긴장으로 굳어있던 몸에 힘이 풀리며 비로소 피로가 쏟아졌다. 하지만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서둘러 와이파이를 찾았다. 일정을 함께 하기로 한 동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행은 세계 여행을 하던 중 브라질로 넘어 올 참이었고, 나보다 도착 시간이 빨라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기로 되어 있었다. 비행기가 연착되어 예상보다 더 긴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와이파이 연결이 쉽지 않았다. 연결을 시도하는 와이파이마다 튕기기 일쑤였다. 동행이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지도 못한 채 넓은 공항을 다 뒤져 볼 수도 없었다. 급한 마음에 출입문 근처에 일렬로 늘어선 렌터카 샵 직원에게 다가가 도움을 청했다. 영어가 통하지 않아 핸드폰을 가리키며 "와이파이? 와이파이?"를 연신 외쳐대며 표정은 최대한 애절하게 지어 보였다.
직원은 답답할 텐데도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띄엄띄엄 영어를 섞어가며 성심성의껏 나를 도와주었고, 덕분에 동행과 무사히 만날 수 있었다. 모든 게 낯설고 온 몸이 긴장으로 얼룩진 '나홀로 여행객'에게 누군가의 작은 친절은 큰 힘이 되곤 한다. 낯선 곳에 발을 내딛자마자 받은 친절 덕분에 무섭게만 느껴졌던 리우의 첫인상은 다행히도 초록불이었다.
빵산에 도착하니 오후 여섯 시가 다 됐다. 해가 지기 전에 빵산으로 올라가기 위해 서둘러 케이블카에 올랐다. 사람들을 실은 케이블카가 천천히 하늘을 날았다. 구름을 헤치며 정상으로 향하는 케이블카 안에서 혹여나 천국으로 가는 길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하는 괴이한 상상을 했다.
날씨가 도왔다. 가히 최고의 풍경이었다. 적당한 구름, 온몸을 감싸는 눅눅한 공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많지 않은 관광객들…. 그리고 기대한 것만큼이나, 아니 기대한 것 이상으로 기이하고 비현실적이었던 돌산의 위용.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리우의 해안선이 아름답게 굽이치고 있었다. 점점이 떠 있는 흰 배들은 마치 바다에 가서 콕 박혀 버린 별 같았다.
멀리 두 팔 벌리고 서 있는 예수상은 안개에 휩싸여 현실과 이상 세계를 감히 구분 짓지 못하게 했다. 구름에 가려 모습을 감췄다가도 가만히 기다리면 다시금 살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예수상을 보면서, 기다리는 자에겐 언제나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신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신은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신을 보지 못하게 두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은 보는 이의 마음가짐일지도 모른다. 이토록 높은 산 꼭대기에 예수상을 지어 올린 그 옛날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어쩌면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건 아닐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예수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금세 해가 떨어지고 사위가 어둑어둑해졌다.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예수상으로 올라가는 미니밴 매표소에는 실시간으로 예수상의 안개 낀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안개에 가려 뿌연 화면을 마주한다 해도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예수상은 한 시간에도 수십 번씩 안개에 가렸다, 나타났다를 반복하기 때문에, 일단 올라가서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미니밴을 타고 정상에 올라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흐렸냐는 듯 안개가 걷혀 선명히 모습을 드러낸 예수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흔한 관광지의 이상과 현실' 비교 사진을 본 이들이라면 알 테다. 아침 일찍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수백 명은 되어 보이는 관광객들에 둘러싸여야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예수상의 위엄을 느끼기란 불가능했다. 사람들에 치이려니 오래 머무르기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몇 번의 안개가 걷히는 동안 예수상의 선명한 얼굴을 마음속에 새기고는 도망치듯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왔다.
리우의 센트로는 위험하다. 현지인들조차 밤에는 돌아다니는 걸 삼갈 정도니 말 다했다. 위험한 남미 대륙에서 제일 위험할지도 모를 브라질. 간단히 검색만 해 보아도 리우에서 여행자들이 겪은 흉흉한 사건들은 상당했고, 살인, 강도, 폭행, 갈취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리우의 센트로는 우범지역이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간 리우의 심장부. 거기엔 관광지로 잘 알려진 셀라론 계단이 있다. 하지만 그 부근을 조금만 벗어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그라피티로 온통 뒤덮인 허름한 벽과 쓰레기로 지저분한 거리, 초점 잃은 눈동자로 휘청이듯 걷는 빈민들….
카메라를 꺼내기도 겁이 났다. 핸드폰과 지갑이 든 가방을 앞으로 그러안고 빠른 걸음을 걸었다. 누군가 쳐다보면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얼굴엔 웃음을 띄우고 발걸음을 늦췄다. 웃는 얼굴에 나쁜 짓을 차마 하지는 못할 거라 생각했고, 두려운 티를 내면 손쉽게 타깃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눈이 마주칠라 치면 얼른 고개를 돌리고 시선을 피했다. 경계를 늦추면 안 됐다. 사고는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센트로를 빠져나와 재빨리 길을 건널 때였다. 한 남성이 뒤에서 나를 향해 고함쳤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내 쪽으로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걸로 보아 나에게 고함친 것이 맞았다.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고 어떤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반대편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코파카바나의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걸음엔 흥이 담긴다. 전혀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는 브라질 사람들의 흥과 열정이 넘실댔다. 넘칠 듯 넘치지 않는 파도 같았다. 어느새 내 걸음에도 흥이 담겼다. 춤추듯 한발 한발 흥겹게 거리를 걸었다.
코파카바나는 한 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꽉 찬 어느 공연 안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다. 시끄러운 사람들 틈을 헤집고 보면 좌판이 깔려 있고, 화려한 패턴의 가방, 옷가지, 조각품 따위를 훑어보며 걷다 고개를 들면 모래판에서 신나는 경기가 한창인 식이다. 한쪽에선 어린 친구들이 모래놀이를 하고, 다른 한쪽에선 청년들이 소리를 지르며 공놀이를 한다. 대낮의 바에서는 온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큼지막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웃통을 벗은 사내들은 큰 소리로 건배한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해변가에 일렬로 늘어선 바가 하나같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거리의 잡상인에게서 맥주 한 캔을 사서 바다가 보이는 모래 위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까만 밤하늘 아래서 한 손에 술을 들고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누구 하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이가 없다. 그저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부르고 몸을 흔들 뿐이다.
위험하다기에 최소한을 머무르기로 결심한 리우. 왜일까, 아쉬움이 꼬리처럼 늘어지는 이유는.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비현실이 온몸을 감싸는 이 기묘한 도시에 조금 더 머물다 가면 좋으련만.
아쉬운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음 여행지로 향하는 버스는 안갯속으로 신나게 걸음을 내달렸다. 리우 시내 어디서나 보이는 예수상이 손에 잡힐 듯 멀어져 갔다. 여전히 예수상은 그 자리에서 리우를 굽어보고 있다.
<여행자를 위한 작은 Tip>
*장기 여행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편도 티켓만 가지고 입국할 수 있는가?'이다. 답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경우, 남미 대륙 아웃 항공권(다른 대륙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요구하는 경우, 입국하는 나라를 나갈 거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육로 or 비행) 등 다양하다.
*리우의 숙소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해변가 근처에 잡는 걸 추천한다. 여행객들이 많은 해변가로는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가 있다.
*(악명 높은) 브라질에서 괜한 모험을 하고 싶지 않다면, 대중교통보단 우버를 이용하자. 한두 푼 아끼려다 여행을 망치거나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귀중품을 빼앗기기만 하면 다행이리라)
*예수상은 되도록 이른 아침에 가도록 하자. 강한 햇빛에 굉장히 눈이 부실뿐 아니라,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간 어마어마한 관광객 무리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