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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피 Apr 08. 2019

#03. 고요 속에 떠오른 열기구가 향하는 곳은

방비엥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오늘은 전날 예약해 둔 풀데이 투어를 떠나는 날이다. 호기로웠던 어제의 나는 어디 가고 아침부터 긴장으로 요상해진 배만 부여잡고 있는 내가 있다. 여기까지 왔으니 하긴 해야겠다 싶어서 예약을 하긴 했는데, 막상 하려니 은근히 무서워서다. 긴장에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 쌀국수를 억지로 입안에 욱여넣었다.


혹시나 투어차가 제시간보다 일찍 올까 힐끔힐끔 곁눈질을 하며 아침을 꾸역꾸역 먹는데, 성태우 한 대가 탈탈대며 숙소를 향해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를 첫 시작으로 성태우는 픽업에 나섰다. 한국인 여자 넷에 중국인 부녀 한 쌍. 중간에 잠시 멈춰서 방수백을 하나씩 받아 들고, 성태우는 불어오는 모래 바람을 한껏 맞으며 비포장길을 달린다.


짚라인이 첫 순서다. 캠프에 도착하니 이미 수십 명이 있다. 여러 투어사에서 모객한 사람들을 한 데 모아 함께 투어를 진행하는 듯했다. 곧장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장비를 착용하고, 짚라인 타는 법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듣는다. 손의 위치는 어떻고, 브레이크가 어떻고, 이동 중에는 브레이크를 잡지 말고, 블라블라블라. 큰일이다. 정신이 없다.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어버버 하는 새 끝나 버린 설명에 울상을 지으며 가이드를 졸졸 따라 다리를 건너고, 소들이 지나다니는 수풀 길을 지났다. 아름답고 한적한 전원 풍경인데 지금 그런 게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근심 가득한 한숨을 푹푹 내쉬며 잔뜩 깎아지른 오르막길 초입에 다다랐을 때, 다시금 성태우에 올라 꼬불 길을 힘차게 올랐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짚라인 줄이 얼기설기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짚라인 타러 가는 길 @여름의 무늬


머지않아 성태우가 정차하고, 짚라인을 타기 위한 나무 데크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아, 가고 싶지 않아…. 긴장감은 고조되고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이미 성태우에서 내려선 순간 중도 포기자 한 명이 나왔고, 계단 위에서 한 명의 포기자가 더 나온 상황이었다. 더불어 내 공포감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었다.




한남매, 하늘 날다


야속하게도 점점 차례는 다가오고 동생이 먼저 자리에 섰다. 처음에 설명을 들은 대로 손을 제 위치에 두지 않아 가이드와 뒷사람들의 우려를 샀지만, 갑자기 쌩하니 출발해 버리는 동생 놈 덕분에 걱정이 배가 됐다. 


"야!!! 조심하라고!!!"


그 뒤가 나였다. 혹여나 쪼리가 바닥에 떨어지진 않을까 걱정 투성인데, 가이드 중 어느 누구도 신경 쓰는 눈치가 없다. 마음을 다독일 여유도 없이 등 떠밀려 정신없이 장비를 줄에 걸고 발을 뗐다. 정신 차려보니 나는 공중에 떠있었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무섭지만은 않았지만, 자연히 목구멍에선 비명이 새어 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몇 번을 탔는지 모른다. 열 번, 혹은 그 이상을 탔으리라. 이미 시작해버려 중도에 멈출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횟수가 더해질수록 주변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기고, 그에 따라 자연히 재미도 속도도 붙고 있었다. 몇 번을 짚라인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 보니 점점 풍경이 나무에 가려지는 게 느껴졌고, 어느새 마지막 라인만이 남았다. 


마지막 피날레는 끔찍했다. 짚라인이 수직으로 달려 있고, 이제까지와 동일하게 장비를 낀 후에 두 손으로 줄을 꼭 잡고 있으면 그대로 낙하. 먼저 가는 사람들 비명 소리를 들어 보니 천천히 제동을 걸어서 내려 주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아 하고 악. 끈을 놓아 떨어지는 순간 내지르는 비명 소리가 순식간에 끌리듯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내 차례가 됐다. 무서워서 다리가 벌벌 떨렸다. 주저앉으려는 다리를 억지로 버티고 섰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이드는 장비를 이리저리 꿰더니 무작정 공중으로 밀어버린다. 동아줄 붙잡듯 두 손 꼭 모아 줄을 잡고 공중에 떠 있길 3초.


3, 2, 1.


꺄아~~~~~~~~~~~~~~~~~~~~악.


그리고 다시,


꺄~~~~~~~~~~~~~~~악.


중간에 멈추기에 이젠 천천히 내려주려나 보다, 했는데 그대로 2차 하강. 지상에 닿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고야 말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걸 했나- 하는 곡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지 아마.


짚라인의 마지막 피날레 @여름의 무늬




카약은 쏭강을 타고


허기진 배를 채울 점심시간이다. 단순히 줄에 매달려만 있을 뿐이라 힘들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내내 긴장해서인지 생각보다 고됐다. 구성도 알차고 맛났던 점심 식사가 끝나고, 이제는 각자 신청한 투어 조합에 따라 갈라져야 할 시간이 왔다.


구성이 알찼던 점심 @여름의 무늬


우리는 다음 순서인 카약킹을 하러 바로 옆 선착장에 가서 노를 받았다. 그리고 뒤뚱거리는 카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앞, 동생이 뒷자리다. 윽, 그런데 바닥에 뚫린 구멍으로 물이 숭숭 들어온다. 자박자박 차오른 물에 궁둥이를 담근 채 어설프게 노를 저었다. 어설픈 자세에 팔뚝이 애매하게 아파왔다.

 

"야 빨리 좀 저어봐."


뒤처질까 괜히 동생을 재촉했다. 하지만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카약을 떠밀어 주어서 다행히 별 힘을 들이지 않아도 카약은 앞으로 잘만 나아갔다. 심지어 땡볕이라 많이 더우려나 싶었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시원하기만 했다. 


하지만 간간히 강폭이 좁아지며 강물이 거세지는 부분이 있었다. 한 번은 방향을 너무 늦게 튼 데다가 수심이 얕은 구간이라 노를 저을 수조차 없어 카약이 옆으로 돌아간 채 떠내려 가다 뒤에서 오는 카약과 쾅! 충돌하고 말았다.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배가 안 뒤집힌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잔잔한 강물을 따라 한참을 흘러내려갔다. 노를 힘껏 젓다가 쉬다가. 양 옆의 풍경은 산자락이었다가, 작은 집들이 늘어선 어느 강가 마을이었다가, 해먹과 방갈로가 늘어선 강변 카페였다가 했다. 간간히 사람들이 튜브에 탄 채 강 위에 동동 떠 있기도 했다. 쏭강의 낮은 전혀 지루할 틈이 없다.


쏭강 @Pascal Müller on Unsplash




<꽃보다 청춘>, 블루라군에 가다


<꽃청춘>에 나왔던 블루라군 1에서 두 시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여기가 바로 손호준, 유연석, 그리고 바로가 다녀간 곳이란 말이지? 들어가 보니 우려했던 대로 한국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눈에 보이는 사람의 팔 할은 한국인인 것 같았다. 


블루라군 옆에는 탐푸캄 동굴이 있다고 했다. 입구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블루라군 맞은편에 음식을 팔고 있는 식당들 바로 옆에 동굴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블루라군 맞은편 @여름의 무늬


길 앞에서 목을 쭉 빼고 올려다보니 생각보다 경사가 꽤 가파르다.


"갈래, 말래?"


"고민된다. 우리 어차피 전망대나 동굴은 하나도 안 갔으니까 여기라도 가볼까?"


아래에선 동굴 입구가 보이지 않아 어디까지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가 보기로 했다. 둘 다 쪼리를 신고 있어 조심조심 돌계단을 밟고 경사로를 올랐다. 다행히 오래 지나지 않아 동굴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핸드폰 플래시를 켜 들고 습기를 머금은 공기를 가르고 동굴 깊숙이 발을 들였다. 동굴 내부엔 하늘을 향해 난 구멍에서 빛이 들이치고 있었다. 


탐푸캄 동굴 @여름의 무늬


돌아온 블루라군에선 여전히 다이빙이 한창이다. 각양각색의 포즈와 구호로 멋지게 다이빙에 성공하는 청춘들. 꽤나 높은 나무에 기어올라가 심호흡 몇 번에 마음을 다잡고는 발을 떼고 하늘을 난다. 콧구멍을 손가락으로 꼭 부여잡고 푸른 물속으로 풍-덩! 구경꾼들은 환호로 하나가 된다. 


블루라군 @여름의 무늬




여기는 일몰 맛집, 스마일 비치 바


운 좋게도 마침 우리가 들어설 때 해먹 맨 앞 줄에 자리가 났다. 치킨 바게트 샌드위치와 생과일주스를 한 잔씩 들고 자리에 앉았다. 아구구- 앓는 소리를 내며 해먹에 몸을 뉘이니 이런 호사가 따로 없다 싶다.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한 탓에 허기진 배를 허겁지겁 채우고 나니 나른한 졸음이 쏟아졌다.


스마일 비치 바 @여름의 무늬


눈을 가늘게 뜨고 그늘진 해먹에 누워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내맡긴 채 차분히 주변을 관망한다. 부드럽고 기분 좋게 눅눅한 바람이 살결을 간질이고 지나가고, 어느새 노을이 조금씩 땅 위로 내려앉아 사위가 황금빛을 띠기 시작했다. 내가 하루 중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다. 세상이 온통 노랗게 반짝이는 시간.


그런데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웅성대는 소리에 밖을 내다봤더니 이 시간이면 하늘에 떠오르는 열기구가 바로 코앞까지 내려와 있다. 땅과 닿을 듯 말 듯 지면까지 내려왔다가 다시금 하늘 높이 올라가는 열기구 하나. 커다랬던 열기구는 내 오므린 손가락만큼 작아졌다가 결국 점이 되어 사라져 갔다.


작아져 가는 열기구 @여름의 무늬


그새 강물에 비친 햇살은 타들어갈 듯 붉어졌고 푸르렀던 산은 잔뜩 먹을 머금었다. 본연의 입체감마저 잡아먹어버린 먹색의 산은 태양의 붉은빛마저 삼켜버리고, 사방에 잿빛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우리는 주변이 온통 먹먹해지고 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쏭강에 땅거미가 내릴 때 @여름의 무늬






<여행자들을 위한 작은 Tip>
*방비엥에서 일몰 명소를 하나 꼽으라면 주저 않고 스마일 비치 바를 꼽을 것이다. 음식도 맛있고 여유롭게 해먹에 누워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으니 방비엥에 들른다면 꼭 가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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