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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피 May 13. 2019

#05. 많은 것을 누려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야

므앙 응오이에서

루앙프라방을 떠나 므앙 응오이로


친절한 호스텔 직원들이 기억에 남는 루앙프라방(Luang Prabang)을 잠시 떠나 우리는 므앙 응오이(Muang Ngoi)로 간다. 그곳에서 며칠을 머무른 후,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맨발로 우리를 마중했다.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그들의 얼굴에 어린 은은한 미소가 그들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걸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성태우엔 서양 여행자들 뿐이었다. 모객이 끝난 성태우는 사원을 끼고 있는 어느 공터에 우리를 내려주었고, 그곳에서 옮겨 탄 미니밴은 모래바람을 가르며 한참을 달리기 시작했다.


농키아우 가는 길, 잠시 정비 중인 차 @여름의 무늬




뭐가 그리 급해? 서두를 것 없어!


므앙 응오이에 들어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곳, 농키아우(Nong Khiaw)에 도착했다. 므앙 응오이는 외부와 연결된 도로조차 존재하지 않는 라오스 북부의 시골 마을이다. 그렇기 때문에 므앙 응오이에 가기 위해서는 농키아우에서 하루에 두 번 운행하는 보트를 타야만 한다.


농키아우 @여름의 무늬


기사 아저씨에게 오늘 므앙 응오이에 들어간다고 하니 선착장 근처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우리 여행의 안녕을 빌어주며, 그는 라오어를 할 줄 아는 자신의 한국인 친구가 거기 있다고 덧붙였다.(실제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만!)


보트 매표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보트 출발 시간까지는 한 시간 가량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 틈을 타 재빨리 점심을 먹고 오기로 했다. 라오스의 속도는 한국의 그것과는 한참 달라 밥 한 끼 먹는 데 한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서두르는 편이 나았다.


보트 매표소 @여름의 무늬


이 곳에서는 무엇보다 기다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다른 손님이 없음에도 주문한 음식은 삼십 분이 훌쩍 넘어서야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고, 매표소에 사람이 안 보이더라도 언젠간 돌아오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직원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어련히 통하는 '매너'는 어쩌면 기대할 수 없다. 누가 봐도 내가 먼저 왔건만 내 앞으로 슬쩍 몸을 밀어 넣고 새치기하는 아줌마들이 있고, 매표소 직원은 내가 우두커니 서있어도 신경 쓰지 않고 옆사람과 잡담을 이어나간다.


므앙 응오이로 향하는 보트는 예정된 두시 반에서 삼십 분이 지난 세시가 다되어서야 탈탈대는 모터 소리를 내며 물을 갈랐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곳에선 기다림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안달하고 재촉하고 기분 상하는 대신 기다림을 손해라 여기지 않고 조금만 여유를 가진다면,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곧장 알게 된다. 여기서는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다. 나도 차츰 그것을 알아가고 있었다.


선착장 @여름의 무늬




남우 강을 거슬러 므앙 응오이에 가다


나무 보트의 그늘 아래 몸을 밀어 넣고 딱딱하고 좁은 나무 의자에 엉덩이를 겨우 걸쳤다. 모터 소리가 바람을 가르고, 비슷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풍경이 계속되었다. 바람에선 수풀과 흙이 뒤섞인 냄새가 났다. 흙빛의 강물이 튀어 오르고 주변의 산과 나무들은 햇빛을 받아 빛나는 초록이 되어 반짝였다.


남우 강을 가르며 @여름의 무늬


사람이 전혀 살 것 같지 않은 곳에 보트가 정차하고 현지인들 몇이 내려 어딘가로 사라지는 모습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들은 선착장도 없는 곳에 내려서 흙길을 밟고 올라가더니 어느새 나무 사이로 자취를 감추었다.


므앙 응오이 @여름의 무늬


한 시간쯤 뒤 우린 므앙 응오이에 도착했다. 짐을 내리고 선착장 계단에 올라서자마자 순식간에 방을 호객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어린아이들은 서툰 영어로 외국인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우리에게도 어김없이 호객꾼이 다가와 방값을 흥정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비싼 방은 필요 없었다. 남우 강변이 내려다보이고 해먹이 달린 곳이라면 방은 어때도 상관없었다. 적절한 가격선을 찾아 흥정하다 보니 가격이 점점 싸졌고, 선착장을 조금 벗어난 조용한 곳에 며칠간 머무를 방갈로를 구했다. 화려한 패턴의 낡은 해먹이 문 앞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남우 강변의 방갈로 @여름의 무늬




신비한 기운이 감도는 이곳, 므앙 응오이


해가 지기 전 마을 근처의 파노이(Pha Noi) 동굴에 다녀오기로 했다. 흙먼지가 날리는 길을 지나 마을의 유일무이한 사원 뒤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었다. 평탄한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매표소가 나오고, 비로소 경사진 길의 시작점이다.


파노이 동굴 가는 길 @여름의 무늬

    

마을의 뒷산이라고 만만히 봤다간 큰 코 다친다. 동생과 난 둘 다 쪼리를 신었기 때문에 한시도 주의를 놓지 않은 채 기다시피 경사로를 올랐다. 숨을 힘차게 몰아쉬며 나무로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난간을 붙잡고 오르다 보니 파노이 동굴이 나왔다. 그리고 거기서 오른 만큼 더 올라가면 마을 전경과 남우 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뷰포인트다.


작지만 근사한 전망대에서 올라섰다. 경치는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숨통이 탁 트였다. 산 아래로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바로 곁으로는 갈빛의 남우 강이 흐른다. 마을에 낀 물안개 덕에 신비로운 기운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 이 몽롱한 마을에서의 시간이 마구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므앙 응오이의 뷰포인트 @여름의 무늬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통통 다리를 두드리고 땀을 식혔다. 작은 물통에 조금 남아 있는 물을 털어 마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슬그머니 마을에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위가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부족하지만 모든 것이 차고 넘치는 곳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물색하던 중, 낮에 보트에서 내리자마자 마주쳤던 반가운 얼굴을 다시 만났다. 우리를 농키아우까지 태워준 기사 아저씨의 친구였다.(기사 아저씨의 전화를 받고 선착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김 선생님은 마을의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알려주는 중이셨다.


선생님과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므앙 응오이는 남우 강을 끼고 있는 라오스 북부의 시골 마을로, 800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500m 남짓의 흙먼지 길이 마을의 중심을 가르며 뻗어 있고, 사원 하나, 학교 하나, 작은 병원 하나(이마저도 외국인이 지어줬다고 한다.), 선착장도 하나가 있을 뿐이다. 전기가 들어온 것도 2013년의 일이며, 그제야 비로소 와이파이와 냉장고, 그리고 온수 샤워가 가능해졌다.

 

산들이 소복이 둘러싸고 있는 이 작은 마을의 모습을 두 눈에 담았다. 마을의 한적한 학교도, 마을 전체가 함께 사용한다는 천연 잔디 운동장도,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밥 먹는 모습도, 마침 어제 결혼했다는 여자의 집도, 그 앞에 쌓인 수백 개는 되어 보이는 그릇들도.


은행도, 자동차도, 쇼핑몰도 없는, 외부인의 눈에는 부족한 것이 차고 넘치는 곳이건만 마을 주민들의 삶은 누구보다 낙낙해 보이고 욕심도 허물도 없어 보였다. 가진 것과 행복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 듯 느껴졌다. 적어도 여기에서는.


므앙 응오이 마을 한 바퀴 @여름의 무늬




오고 가는 잔 속에 피어나는 따스한 정을 맛보다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우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셨다. 현재 선생님께서 머무르고 계시는 현지인 친구의 가정에서 다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초대받았던 아늑한 현지인의 가정집 @여름의 무늬


"싸 바이 디-"


아직은 익숙지 않은 인사말을 건네며 집 안에 들어서니 가족 분들이 환한 미소로 반겨주신다. 학교 선생님이시라는 아주머니와 학교 앞에서 노점을 하신다는 아저씨, 그리고 어제 막 돌을 맞이했다는 막내 아기와 두 아이들이 있는 작지만 안락한 집이었다.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 아이가 당연하단 듯 식탁에 접시를 놓고 엄마를 도와 저녁 상을 차렸다. 저녁 식사엔 나와 동생뿐만 아니라 멀리서 고향인 이 곳에 놀러 오셨다는 아주머니들이 함께 했다. 그들은 라오스의 북부 국경 근처 도시인 보께오, 그리고 루앙남타에서 왔다고 했다.


식사 시간, 사람들을 따라 손 씻는 물에 대충 손을 스치고 찹쌀밥을 떼어 손가락으로 동그랗게 굴렸다. 라오스의 찹쌀은 끈적이지 않아 우리네 쌀밥처럼 손가락에 들러붙지 않았다. 둥글게 뭉친 찹쌀밥은 소스에 찍어 먹어도 되고, 반찬과 곁들여 먹으면 되었다.


라오스식 현지 식사 @여름의 무늬


소스는 신맛이 굉장히 강했고 미역국 빛깔의 국물에서도 신맛이 났으며, 곧 내어진 오리고기는 오리의 모양새가 적나라했다. 또, 식탁엔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너구리 라면과 햇반이 올라왔다. 이 곳 사람들은 매운맛과 한국의 라면을 매우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식사 자리엔 술이 함께했다. 40도가 넘는다는 라오라오 술이다.


식사자리는 무르익어갔다. 과하지 않게 한두 잔이 식탁 위를 오고 갔다. 식사를 마친 후엔 달디 단 라오스의 믹스 커피 한 잔이 건네 졌다. 오고 가는 잔 속에는 타인이자 외부인을 향한 따스한 정이 넘칠 듯 찰랑댔다. 이제껏 지나온 도시들과 달리 진한 날 것의 향이 나는 이 작은 마을이 나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여행객들을 위한 작은 Tip>
*농키아우에서 므앙 응오이로 들어가는 보트는 하루 두 번(10:30, 14:30) 운행한다. 루앙프라방에서 하루 안에 므앙 응오이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한데, 농키아우행 첫 차를 타는 것이 안전하다. 편도 요금은 2만 5,000낍(kip)이다.
*므앙 응오이에서 다시 농키아우로 돌아오는 보트는 하루 한 번(9:30) 운행한다. 하루 안에 농키아우를 거쳐 루앙프라방으로의 이동도 가능하다.(차편은 많다.)
*므앙 응오이에 은행이나 ATM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머무는 동안 필요한 현금은 미리 준비해 가는 것이 좋다.
*므앙 응오이에서 방갈로는 미리 예약할 필요도, 예약할 수도 없다. 숙박 어플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곳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호객꾼들에게 둘러싸일 테니 흥정하여 방갈로를 구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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