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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May 07. 2020

노마드의 아내 말고, 나도 디지털 노마드가 되고 싶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벨베데레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서 작품 감상을 남편이랑 번갈아가면서 했다. 확실히 혼자 아무것도 모르고 구경하다가 설명을 들으며 그림을 보니 훨씬 유익했다. 사실, 벨베데레는 클림트의 작품으로 워낙 유명한 곳이라 그런 줄만 알고 갔는데, 반 고흐, 모네, 마네와 같은 유명한 작가 이름을 보니 반가웠다. 반 고흐가 정신 병원에 있었을 때 그 마을 풍경을 그린 작품이 있었다. 사람들이 보기에 따라 다들 다른 느낌과 감정이 들겠지만, 반 고흐가 정신병원에 갇혀있는 그 상황에서 어찌 저렇게 평화로운 자연 모습을 표현했을까, 라는 마음이 들었다. 어찌 보면, 그가 처해있는 상황이 그의 열정까지 가둬둘 수는 없었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그림을 그린 후 그는 삶의 마무리를 지었다. 그 설명을 듣는데 가슴이 찡했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도 그 결정을 미리 생각하고 있었을까.


벨레데레 미술관.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감상하는 걸 적극 추천한다


그리고 마네가 그린 초상화가 있었는데, 설명을 듣자 하니 마네가 시각을 잃어버리기 전에 그린 그림이었다. 마네가 그때쯤 건강이 좋지 않아서 큰 사이즈의 그림을 그릴 힘이 없어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고 한다. 또한, 힘이 덜 드는 파스텔을 더 사용했다고 한다. 그 설명을 들으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건강의 쇠약도 그 예술가의 열정을 막진 못했구나. 무언가를 그렇게까지 열정적으로 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난 죽기 전에 그런 일을 찾을 수 있을까. 몸이 아파도,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과정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미술관 위에서 볼 수 있는 정원


또, 기억에 남는 화가는 처음 들어본 사람이었지만 그림과 그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페르디난드 게오르그 발트 뮐러(Ferdinand Georg Waldmuller)의 ‘Exhausted Strength’라는 작품이었는데, 그 그림은 평안히 침대에서 자고 있는 아기와 방바닥에 지쳐 누워있는 엄마를 표현하고 있었다. 제목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아서 그 그림을 한참을 멍하니 보았다. 아마 내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그림일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가 되고 나니 그런 그림에 공감이 가고 더 애착이 갔다. 특히, 그는 노숙자들과 아동착취 등과 같은 사회적인 이슈들을 많이 그렸다고 한다. 그가 추구했던 것들이 동료들과 맞지 않아 따돌림당하고 외톨이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사회의 부정의를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한 그의 메시지는 그 시대에는 무시당했고 짓밣혔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흘러 그는 벨베데레 궁전에서 위풍당당하게 그의 메시지를 지금까지 전달하고 있으니 진정한 승자는 그가 아닌가.


아인슈페너 커피 (Einspänner). 여기선 비엔나 커피라고 하니 못 알아듣는다. 진짜 최고로 맛있다! 1일 1잔 했을 정도로!


지금 빛을 보지 못한다고 고개 숙일 필요 없다. 지금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멈출 필요도 없다. 이건 2017년 그 해, 나에게 쓰는 메시지였다. 다수에게 인정받으려고 선택한 여행도 아니었고, 어떤 이익을 얻기 위해 도전한 길도 아니었다. 난 나만의 길을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 욕심내지 말고,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지 말고 묵묵히 내가 선택한 이 길을 걷자고 말이다.


쉘부른 궁전. 구경거리가 정말 다양했던 곳이다. 정원을 포함해 규모가 꽤 크니 시간을 넉넉히 잡는 게 좋은 듯하다.


개인적으로 비엔나하면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은, 햇살 가득한 날 어떤 여성이 예쁜 노천카페에서 노트북으로 뭔가 열심히 일하고 있던 모습이다. 그분이 혼자 앉아서 커피 마시며 한참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 뭔가를 적고, 다시 또 생각을 하는 그 모습을 보았을 때, 난 그 근처 길가에서 뛰어다니는 아들을 바삐 쫓아다니고 있었다. 아들을 잡으러 뛰어다니면서 나도 모르게 곁눈질로 그녀를 쳐다보곤 했다. 그 순간 그녀가 너무 부러웠고 멋져 보였다. 그때 처음으로 디지털 노마드의 아내가 아닌 나도 디지털 노마드가 되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카페에서 혼자 일하며 커피를 마시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나도 내 일을 하는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과 꿈꾸는 것이 이렇게 어느 날 문득 내 마음에 생기기도 하나보다. 그 순간 난 비엔나에 있었고, 아들을 쫓느라 그 노천카페 근처에 있었고, 또 우연히 그녀는 내가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일하고 있었다. 다 이런 우연들이 모여 필연을 만들어 내다보다. 나 혼자 품었던 그 날의 꿈은 아주 작은 시작이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시작되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운명의 노천 까페. 꿈의 시작은 이렇게 불현듯 우리에게 다가올 수있다. 삶의 묘미가 이런거 아닐까.


비엔나는 튤립이 피는 시기에 방문하길 추천한다. 튤립이 여기저기 피어있는 비엔나가 참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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