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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May 15. 2020

놓치기 쉬운 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여행을 하다 보면 여기저기 찾아가는 일이 빈번하다. 그러다 보면 유모차에 가만히 있기 싫어하는 아이를 달래며 우리가 지칠 때가 많다. 하지만 아들의 입장에선 몇 시간 동안 유모차에 있는 게 충분히 지루할 수 있다. 우리가 관광지를 둘러볼 때도,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이동 중에도 꼼짝없이 어딘가에 앉아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우리가 해야 되는 일에 집중하다 보면, 자주 아기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할 때가 많다.

Fisherman’s Bastion에서 볼 수 있는 풍경


부다페스트에서 유명한 세체니 온천은 우리 숙소에서 걸으면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유모차에 있기 싫어하는 아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길 시작했다. 아들이 원하는 건 그리 큰 게 아니었다. 걸으며 풀 한번 만져보고, 흙도 만지고, 벤치도 만지고 올라가 보기도 하는 거다. 아들이 참 행복해했다. 그게 눈으로 분명히 보였다. 하긴 이 아이의 눈에는 처음 보는 이런 것들이 얼마나 신기할까. 근데 아이의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는 시간을 넉넉히 허락하지 않았다. 단지, 우리가 정한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 말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향한 목적지인가. 그곳에 도착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그 과정에서, 그 여정에 감사함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아닐까. 그 과정에 아예 머무르는 게 아니라면 속도가 다소 늦춰지더라도, 그 여정에서 놓칠 수 있는 순간들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과연 불가능한 것일까. 아이 덕분에 과정의 소중함을 배운다.


세체니 온천


그리고 그 ‘속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나이가 되면 어느 정도의 성취를 해야 하는, 사회의 기준에 스트레스를 받고, 걱정을 할 가치가 있을까. 물론, 책임감 없이 살자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다만 그 날, 그 길을 걸으며 생각했던 건, 각자의 ‘속도’를 존중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내 스스로에게 했던 생각이었다. 내가 30대 중반이니, 무언가를 이뤄 놓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내 스스로를 압박하기 일쑤이다. 나중에 아이들 웬만큼 키워놓고 나선 무슨 일을 할 건데, 넌 무슨 기술이 있니, 왜 그렇게 허성 세월 보냈니. 후회와 체념의 리스트는 끝이 없다.


Fisherman’s Bastion


다르게 생각해보면, 왜 30대에 뭘 꼭 이뤄야 하는 건가? 그건 누가 정한 건가? 물론, 호주에서 지낸 지난 13년이 나의 생각을 많이 바꿔주었다. 내 친구 어머니는 50대에 대학원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나이에 상관없이 새로운 직업을 찾아 다시 공부하고 다시 도전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단 걸 눈으로 직접 배웠다.

그 날 다시 다짐했다. 배운 걸 잊지 말자고 그리고 나만의 속도를 존중해주자고 말이다. 아들의 속도를 존중해주고 나니 그 날 소박한 평화를 얻은 것처럼, 내 속도를 존중해주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꺼라 믿는다.


부다페스트의 야경. 세계 3대 야경중에 하나라고 들었다. 밤거리를 걷고 있노라면 없던 낭만도 생길것만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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