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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May 27. 2020

또다시 3개월 징크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2005년 호주에 갔을 때, 처음 3개월은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3개월쯤 되니 한국도 그립고, 한국에 있는 사람들도 그리워져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때 그리운 마음에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를 엄청 봤었다. 디지털 노마드로 산 지 3개월쯤 되었는데, 그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삶은 반복되는 거 아닌가. 이 삶에 좋은 점과 겉으로 보이는 점만 나누는 것보단, 어쩌면 이 삶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장점과 단점을 같이 나눠주는 게 더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런 점도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시작한다면 이런 징크스를 겪어도 나보다는 좀 더 잘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여기인 거 같다. 올드타운은 그 안에 있을 때도 충분히 좋지만, 이렇게 멀리서 바라봤을 때 더 좋았다.


어디에서 무얼 보고 경험해도 허무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을 수 있다. 시드니에서 살 때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다고 수백 번 생각했었다. 근데, 일주일 혹은 며칠마다 이동하는 삶을 살다 보니 그 안정감이 그리울 때가 상당히 많다. 전에는 시드니를 떠나 세계 여행을 한다면 너무 신날 줄 알았다. 물론 그런 날들도 많다. 하지만 모든 날들이 그런 건 결코 아니다. 예전에는 몰랐던 일상에 대한 감사함이 느껴진다. 여기저기 숙소를 옮겨 살다 보면, 화장품을 꺼내서 놓을 때가 적당치 않아서 화장품도 조그만 가방에서 늘 꺼내 쓰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얼마 전, 두브로브니크에서는 화장실에 넉넉한 서랍장이 있어서 오랜만에 화장품을 꺼내서 얼마 있지 않은 화장품을 세워 놓고, 그걸 보면서 엄청난 행복감을 느꼈다. 그게 내가 찾았던 일상이 주는 안정감이었다. 알게 모르게 나도 그 일상이 주는 편안함이 필요했던 거다.


두브로브니크의 올드 타운


왜, 인간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가지지 않고 있는 것을 더 원하는 걸까? 자꾸만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원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근데 생각해보면, 자주 그랬던 거 같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이 좋게 사용한다면 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마음이 건강하지 못할 때 그런 갈망은 내가 가진 걸 누리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두브로브니크의 성벽에서 볼 수 있는 전경


감사한 건, 어쩌면 이번 여행이 아니었으면 느끼지 못했을 그 일상이 주는 편안함에 대한 소중함을 배웠다는 거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어 내가 또 이런저런 불평을 하게 되면, 그 일상을 그리워했던 이 기분을 기억해내서 예전과는 달리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그때 되면 여기저기 돌아다녔던 2017년이 그리워지겠지. 그래서 결론은 지금, 바로 오늘 제일 감사하게 살자는 거다. 이 날을 그리워할 날이 있음을 어렴풋이 안다. 육아에 지칠 때, 남편이랑 그렇게 얘기할 때가 많았다. ‘지금 이렇게 힘들지만, 나중에 분명히 지금이 그리울 때가 올 거야, 믿기 힘들겠지만 말이야.’

여행 중에 만난 나이 드신 분들이 우리에게 해주셨던 말씀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씀이 그거였다. 본인 자녀들이 어렸을 때가 그렇게 그립다고,  그때가 정말 좋았다고 말씀해주셨다. 힘들었어도 그때가 좋았다고 미소 짓는 그 어른들을 보면서 다짐한다. 나중에 그리울 거라면 오늘을 제대로 살아가 보자고 말이다.


올드타운의 다양한 모습
올드타운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봤던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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