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한나 May 29. 2020

100일 여행 기념은 라벤더향으로

크로아티아 코르출라섬& 흐바르섬

 두브로브니크는 좋았지만 관광객이 정말 많았다. 특히, 올드타운에는 늘 단체 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그래서 그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던 코르출라섬이 참 좋았다. 사람들도 별로 없고 한적하다. 그리 크지 않고 자그마한 크기도 맘에 들었다. 이제야 아드리아 해를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맑다는 말만으로는 절대 표현되지 않을 아드리아해이다. 아드리아해의 색깔은 여러 개다. 그 모든 색깔들은 청명하고 상쾌하다. 물 색깔이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고 계속해서 쳐다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에메랄드 빛보다 더 아름답다고 한다면 전달이 될까. 아드리아해는 사진으로도 글로도 전달하지 못할 것 같다. 나에게는 그만한 실력이 있지 못함에 서글프다. 아들이 이 섬에 있는 동안 조그마한 자갈들을 물에 던지는 놀이를 좋아했다. 나는 그걸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섬에서 가장 좋아했던 노을 진 풍경


관광 명소를 찾아 돌아다닐 필요도 없어서, 섬에 있는 작은 동네를 천천히 산책하고 다시 물가로 나온다. 잔잔한 아드리아해가 품는 석양을 보니, 장기여행으로 찌든 피로가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다. 결국은 여행의 피로를 여행으로 푸는구나. 짧게 여행하는 게 아닌 장기여행을 할 때는 중요한 게 바로 속도이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속도를 낮추고 제대로 쉬는 거다. 이건 머리로는 아는데 실제로 실천하기는 때론 쉽지 않은 부분이다. 여행을 왔으니 보고 싶은 거 많고, 더 많은 걸 경험해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지만,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때론 내려놓아야 하는 때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코르출라섬은 우리 가족에게 쉼을 허락한 고마운 섬이다. 이 섬에서 기억나는 곳 중에 하나는 마르코 폴로 집이다. 예전에 학교에서 배웠던 마르코 폴로였는데, 여행을 하면서 교과서에서 읽기만 했던 사람들의 흔적을 이렇게 보는데 참 신기하고 좋다. 우리도 장기여행을 해서 그런지, 탐험가였던 그의 흔적을 이 작은 섬에서 발견한 것만으로 뭔가 큰 힘을 얻은 느낌이었다.


우리에게 쉼을 선물해 준 작은 섬, 코르출라섬
본격적으로 아드리아해와 사랑에 빠진 건, 이 섬에서 부터이다.
마르코 폴로 하우스
한산한 작은 길거리를 걷다가 무심코 골목길 끝을 바라보면 바닷물을 볼 수 있는 게 좋았다.




그렇게 필요했던 휴식을 취하고 흐바르 섬으로 가기 위해 우린 다시 배에 올라탔다. 흐바르섬은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유명한 섬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크기도 더 크고 볼거리도 다양했다. 지내면서 왜 이곳이 제일 유명한 지 이해가 됐다. 언덕에 올라가면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는 다른 섬들까지 내려다볼 수 있고, 아기자기한 골목길에 예쁜 가게들이 줄지어 있고, 밤에는 마을에서 나오는 불빛들과 밤바다의 반짝이는 물결들로 기가 막힌 야경을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 곳에서 우리 여행은 100일째를 맞이했다. 시드니를 떠난 지 100일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여행을 하다 보니 날짜나 요일을 잘 모르게 지낼 때도 많고, 시간은 더없이 빠르게 지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가 마음속에만 품었던 꿈을 실행하는 데는 큰 결단이 필요했고, 사람들의 격려와 염려와 함께 시작한 여정이었다. 쉽지 않은 걸 알았지만 막상 하고 보니 예상보다 더 깨질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고, 깨지고 배우면서 때론 보기 싫은 나의 모습도 대면한다. 그러면서 내 자신을 조금씩 더 제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남편은 흐바르섬에서 유명한 라벤더향 주머니를 100일 선물로 내민다. 서프라이즈로 그 작은 주머니를 받고는 기분이 좋아진다. 라벤더향이 가득한 흐바르섬에서 100일을 맞이한 건 크나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인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 아기자기한 가게들
흐바르 섬 전체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스페인 요새
100일 여행 기념 서프라이즈 선물, 그리고 두번 방문한 까페


매거진의 이전글 또다시 3개월 징크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