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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Jun 05. 2020

모래 아닌 돌 위를 걸을 때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섬에서 조용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다시 육지로 돌아왔다.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바로 스플리트였다. 스플리트에서 가장 자주 갔던 곳은 리바 거리였다. 해가 저물어질 때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아서 스플리트 하면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게, 바로 노을 진 리바 거리이다. 그곳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어느 한국 아주머니께서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셨다. 사진을 찍어 드리고 우리도 사진을 부탁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플리트 리바거리


보통 그 연세의 아주머니들은 단체관광을 하기 마련인데, 혼자 여행하시는 게 신기해서 여러 질문을 했다. 그분은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말씀하셨지만, 유럽 여행을 그것도 혼자 하시는 게 대단하시다고 말씀드렸다. 들어보니 그분은 혼자 여행을 하시기 위해, 영어 공부도 하시고, 리서치도 혼자 하시고, 모든 예약도 알아서 하시면서 유럽을 몇 주째 여행 중이라고 하셨다. 여행 중 만난 사람들과도 친구로 인연을 맺어 이메일로 연락도 주고받으면서 그 친구를 만나러 여행 계획을 변경해서 만나러 간다고도 하셨다.

내가 혼자 그렇게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 그리 자신은 없다. 이 세상엔 참 용기 있는 분들이 많다. 그런 용기 있는 분들의 뒤엔 조용히 지지해주는 배우자가 있다. 그 아주머니도 멋지셨고, 그런 혼자 가는 여행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시는 그 남편 분도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스플리트 올드타운


우리가 갔던 곳 중에 또 기억에 남는 곳은 카스 주니 해변이다. 이 해변의 특이한 점은 바로 모래가 아니라 작은 돌들로 가득한 해변이었다는 거다. 어른인 나도 걷기만 해도 아팠던 곳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아들은 그 조그마한 발로 돌들 위에서 걷는 게 아니라 뛰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리 작은 아이가 어쩌면 저렇게 아파하지 않고 잘 걸어 다니고 심지어 뛰어다닐 수 있는지 너무 놀라서 한참을 아들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카스주니 해변으로 가는 길에서


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강한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네 발아래 돌이 가득한 길을 걸을 날도 있겠지만 오늘처럼 네가 씩씩하게 걸었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온다면, 넌 돌 위를 걷는 게 아니라 뛰기까지 한 아이였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어야겠다.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단단한 아이란 걸 알아야 때가 오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아프지만, 또 넌 내가 예상하는 것보다 더 꿋꿋하게 이겨내며 내게 미소 지을 수도 있겠지. 그 해변에서 이 엄마를 놀라게 한 것처럼 말이야.'


돌 위에 아기 발을 보여 여러 생각에 빠졌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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