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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Jun 26. 2020

소매치기에 대처하는 우리 부부의 자세

독일 베를린

 ‘잉카, 잉카!’ 소리치면서 아들이 뛰어다닌다. 동물에 크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아들을 데리고 베를린 동물원에 갔다. 아들은 코끼리를 잉카라고 부르곤 한다. 영어도 아닌 한글도 아닌 자기만의 언어이다.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기 시작한 아들이 신기하다. 베를린 동물원은 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동화책에 나올 법한 건물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동물을 너무 좋아라 하는 우리 아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정말 쉴 새 없이 뛰어다닌다. 아들이 저렇게 기뻐하니,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가벼워진다.


베를린 동물원


며칠 뒤 베를린 장벽을 향해서 천천히 걸어가면서, 과거의 사진들을 보고, 공원 중간에 설치되어있던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사람들의 증언들도 짧지만 조금씩 들었다. 그리고 가는 중간에 ‘회복’이라는 조각상을 보았다. 두 사람이 얼싸안고 있는 모습이다.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감정을 겪은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가는 길에 보았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호밀밭이었다. 호밀밭에 설명문이 있었는데, 거기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심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곳에는 평화도 있다.”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이다. 평화를 얻은 베를린 장벽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일상을 즐기고 있다. 데이트하는 연인들,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이 있었다. 이 평범한 일상을 갖기까지 이 땅은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견뎌야만 했었을까. 우리가 어쩌면 너무 쉽게 가지고 있는 오늘 하루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은 이 악물며 참아내야만 했을까. 어쩌면 난 매일 누리는 평화를 너무 당연시했었는데, 그 날 그게 당연한 게 아님을 베를린이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여러 생각에 잠기게 했던 베를린 장벽


베를린 대성당을 비롯해, 여러 장엄한 건물들을 보는 것도 우리 일정 중에 하나였다. 여느 날처럼, 우리는 아들을 유모차에 앉히고, 빠르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어! 내 지갑!” 하며 휙 돌아서서 지나온 길을 다시 걸어갔다. 난 유모차를 끌며 그런 남편 뒤를 영문 모른 채 따라갔다. 우리가 지나온 길가에는 몇몇의 청년들이 무슨 청원에 사인을 해달라며 종이를 내민 곳이었다. 우리는 거절하며 발걸음을 옮겼더랬다. 남편을 그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그는 영어로 무리 중에 한 명에게 소리쳤다.
 “내 지갑 내놔!”
나도 상황 파악이 안 돼서 놀라고, 그 무리 중에 한 여자도 멍하니 놀란 표정이다. 남편이 소리치는 게 위협적이라고 느껴졌는지 “날 건드리지 마”라고 말한다. 근처에 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자기 주머니에 있던 남편의 지갑을 꺼내 땅바닥에 던졌다.

나도 놀라고 당한 게 화가 나고 해서 그 여자를 향해서 소리쳤다. “너야 말로 우리 건드리지 마.” 참, 나도 여행하면서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한다. 내가 그렇게 그 여자한테 말할 줄은 몰랐다. 나도 놀라고 분해서 그렇게 소리쳤다. 남편은 바닥에 떨어진 지갑을 가지고 다시 나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나 다시 우리가 갈 곳을 재빨리 걸어간다. 두근대는 내 심장은 잠잠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남편과 돌아오는 길에, 지갑이 없어진 걸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니, 기분이 아무래도 이상해서 주머니를 확인했는데 역시나 원래 있던 곳에 없어서 바로 돌아갔다고 했다.


베를린 대성당, 소매치기를 당할 뻔 했던 그 날


그러고 나서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니, 그 여자가 남편 지갑을 가져갔다는 증거도 없었고 순전히 남편의 느낌으로 지갑을 달라고 한 건데 지갑을 돌려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여자가 지갑을 땅에 던질 때 다른 무리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마 그 무리들은 그 여자가 지갑을 던질 거란 예상을 못 한 거 같다. 남편이 너무 당당하게 큰소리로 요구하니까 자기도 놀랐지 싶다.

우리가 서로 한국말을 하는 게 이럴 때 유용하다. 몇 년 전, 남편과 둘이 런던에 갔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런던아이가 보이는 공원의 벤치에 둘이 앉아 있다가, 남편이 옷을 더 입는다고  일어났을 때, 작은 가방을 벤치에 잠깐 두었다. 그 순간,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한나야, 내 가방이 없어!”
우리가 영어로 말했다면 우리 바로 옆에서 남편 가방을  큰 종이가방에 넣은 남자가 알아들었을 거다. 남편은 그 남자가 자기 가방을 넣고 난 후에 움직임을 순간 목격했고, 영어로 말했다. “ 내 가방 내놔!” 그러자 그 남자도 순간 당황해서 남편 가방을 내동댕이쳤다. 똑같은 반응이다. 자기가 훔친 걸 던졌다.

우리 것을 당당하게 다시 내놓으라고 말하면 오히려 훔쳐간 사람들이 당황하는 걸 두 번이나 보았다. 물론, 우리는 훔쳐가고 얼마 안 돼서 이런 방법이 가능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한국어와 당당하게 요구하는 방법으로 당할 수 있었던 두 번의 소매치기를 피할 수 있었다. 남편의 무용담은 런던에 이어 베를린에도 쌓여간다.


다양한 모습의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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