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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Jul 01. 2020

나를 위한 박수

폴란드 워소 & 크라쿠프

 베를린에서 6시간 기차를 타고 폴란드의 워소에 도착했다. 우리가 갔던 다른 유럽 나라들에 비해 에어 비앤비 가격이 훨씬 더 저렴했다. 숙소 창문 밖을 보면 도시의 멋진 빌딩 숲이 한눈에 보이고, 대중교통도 편리할 뿐만 아니라 슈퍼마켓도 걸어 나오면 바로 코 앞에 있는데도 다른 나라 숙소의 반 값 정도이다. 물가가 더 저렴하니까 마음이 덩달아 편해진다. 우리가 보통 가는 곳보다 더 좋은 레스토랑에 가도 별로 부담 없이 주문할 수 있으니, 남편 얼굴이 환해진다. 대충 들은 바로는, 워소는 전쟁에서 피해를 많이 본 곳이라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이 꽤 많다고 했다. 높은 빌딩들과 화려한 쇼핑센터들이 즐비해 있는 이 곳이 피폐했었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저마다 과거의 아픔을 씻어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고 있나 보다. 하지만 워소의 올드 타운에 가면 또 확연히 다른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보였던 풍경
잠코비 광장
올드 타운 마켓


워소 다음에 간 도시는 크라쿠프이다. 크라쿠프의 중앙광장에서는 마차를 꽤 많이 볼 수 있다. 광장 근처에는 큰 시장과 유명한 성당도 있고 해서 사람들이 이 곳에 많이 모인다. 다른 여러 도시처럼 이 광장 또한 야경이 예뻐서인지 밤늦도록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광장 중간에는 계단식으로 된 조각상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계단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그 높은 계단을 혼자서 걸어 오르려고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미소 짓는다. 여행을 하면서 아들을 가만히 관찰할 때가 종종 있는데, 공통적으로 느낀 건 아들은 뭔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어려운 걸 하는 걸 좋아한다는 거다.


크라쿠프 중앙광장의 낮과 밤


예를 들면, 자기 나이 또래에 맞는 작은 놀이터가 있고, 그 옆에 더 큰 애들이 놀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아들은 작은 놀이터에서 조금 놀다가 금방 큰 아이들이 있는 놀이터로 달려간다. 그곳에 가면 보통 아들이 걸어가기 힘든 계단이나 그물 같은 것이 있는 데, 꼭 그걸 해보려고 한다. 위험에 보여서 내가 몇 번을 말려도 고집스럽게 다시 그물로 달려간다. 그럼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시도를 계속한다. 그러다가 그물에 걸려 넘어져도 절대 포기란 없다. 항상 쉬운 길이 있어도 굳이 어려운 장애물을 선택하고, 그걸 자기가 걸어가고 나서야 방긋 웃는다. 아들은 박수를 치는 걸 좋아하는 데, 놀이터에 있던  그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걷고 난 뒤에서야 이 세상 가장 행복한 웃음을 보여주며 스스로에게 박수를 쳐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참 귀엽고 대견스럽다.


바벨성에서 쉼없이 다니는 아들


새로운 것에, 그리고 자기의 능력으로 바로 되지 않은 어려운 것에 두려움 없이 시도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를 뒤돌아 본다. 난 오히려 어른이라 그런지 더 생각이 많고, 넘어지면 어떡하지, 실패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전전긍긍하며 두려워 하기 일쑤인데 말이다. 아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넘어지면 혼자서 아님 처음 만난 누나, 형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난다. 도움받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기가 원하는 걸 기어코 해내고 나서는 그 누구보다 자기가 먼저 박수를 친다. 자기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칭찬할 줄도 안다. 과거의 경험 때문에,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는 그 누군가 때문에, 무언가를 시도하기 망설이는 나에게 아들은 최고의 스승이다.


독특한 건축물들이 기억에 남는 바벨성에서


크라쿠프의 중앙 광장, 그의 도전은 당연히 계속되었다. 계단을 올라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난 생각한다.


 '앞으로도 너를 계속 응원할게. 때론 네가 아니라 이 엄마가 겁이 나더라도, 넘어질까 봐 두려워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비록 넘어지더라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네가 되길 바라며 뒤에서 지켜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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