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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Jul 08. 2020

여행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미국 사라토가

 두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아들과 사촌 동생의 딸을 바라보고 있다.  이 두 아이는 미국 사라토가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서로 각자 다른 나라에 살다 보니, 실제로 만난 건 처음이다. 사촌동생과 나는 어렸을 때부터 대학생까지 한국에서 같이 살았다. 나에겐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같은 존재여서 사촌이란 말을 넣기도 어색하다.

4개월의 유럽여행을 마무리 짓고 미국으로 왔다. 유럽에서의 일정은 가족끼리 이동하는 것 치고는 빡빡했다. 쉥겐 조약 때문에, 그 조약을 맺은 유럽 나라들에서는 3개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우리가 4개월 정도 있었던 건, 크로아티아와 몬테네그로 같은 비쉥겐 조약국에서도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있을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은근히 욕심을 부렸다. 그래서 미국에 있으면서는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아이들의 뒷모습


유럽 여행하면서 너무 먹고 싶었던 한국 음식들을 동생과 제부가 열심히 만들어줘서 많이 먹고, 맨날 걷다가 이제는 차로 이동하니 2주일 만에 3킬로그램 체중이 늘었다. 두 달 동안 여기 있으면서 동생과 같이 운동하기로 하고, YMCA에서 줌바나 요가를 하면서 지냈다. 매일이 다른 여행을 하다가, 어느 정도 예상되는 일정을 보내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얼마 정도의 기간이 지나자, 또 몸이 근질근질하는  같다. 이번 세계여행을 하면서 보니, 남편은 새로운 것들을 보며 힘을 얻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더 알게 되었다. 신기하도록 우리 둘이 정말 다르다. 서로 다른 것 때문에 연애할 때는 많이 부딪혔지만, 결혼하고 10년째가 되니 서로 인정하고 전보다 더 받아들이게 된다.


동생네 집에서 바로 나오면 있던 호숫가


사라토가는 뉴욕에서 차로 3시간 정도 걸리는 마을이다. 동생이 사는 동네는 큰 호수가 있어서, 걸어서 나가면 호숫가를 산책할 수 있고, 베란다에만 있어도 작은 호수를 볼 수 있는 여유로운 동네 었다. 공원에도 가고 근처 동물원도 다니며 가족이랑 같이 시간을 보냈다. 지금 떠올려보면 가장 좋았던 시간은 조카가 유치원에 가고, 남편이 아들을 봐줘서 동생이랑 둘만 동네 새로 생긴 카페에 갔던 거다. 몇 년 만에 만난 동생이랑 이야기하며 맛있는 커피를 마셨던 게 제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둘 다 엄마가 되니 몇 주 동안 지내도 둘 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었다.


Moreau Lake State Park


동생은 내가 어렸을 때 내 베개는 늘 젖어있었다고 말했다. 그걸 넌 알았구나. 생각해보면 동생이 나에게 애틋한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마음 아팠을 때 내 옆에 있어 주었기 때문이다. 동생이 그저 내 곁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힘이 되었다. 위로나 격려의 말들을 해주지 않아도 내 아픔을 알고 있고 곁에 있었던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제는 어렸을 때 우리에게 버거웠던 고통에서 벗어나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우리가 넘어가야 할 또 다른 산들이 우리 앞에 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낫다는 거에 동의했다.

어떤 이가 들으면 별 거 아닌 이런 일상이 내겐 가장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필요한 물건을 여행가방이 아닌 서랍에서 꺼내는 것, 같은 침대에서 잘 수 있는 것, 예상할 수 있는 일정, 익숙한 사람들과의 대화가 그리웠다. 동생네 가족이 아니면 가보지 못했을 사라토가라는 동네는 아직도 나에게 휴식의 공간으로 남는다. 세련되지 않지만 정감 있던 카페, 회전목마가 있었던 공원, 매주마다 갔던 도서관이 나에게는 일상의 회복이 되었다.


자주 갔던 사라토가의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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