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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Jul 21. 2020

안녕이 아닌 다시 만나자

미국 워싱턴

 2017년 6월 여름 크로아티아 자다르에서 지희 언니네 가족과 헤어지면서 나눈 인사는 안녕이 아니라 세상 어디선가에서 언젠가 다시 만나자였다. 그 어디가 워싱턴이고 그 언제가 그 해 9월인 걸 우리 중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기대치도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게 사는 재미 아닌가. 동생네 가족과 함께 필라델피아에서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워싱턴에 도착했다.

기차역에 나와있는 대니엘을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낯선 워싱턴이 더 이상 낯설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친구 동네에 놀러 온 거란 기분이 드니 말이다. 지희 언니 가족이 워싱턴에 몇 년 동안 살아서 우리 가족의 개인 가이드 역할을 해 주었다. 리서치할 필요도 없이, 그냥 언니네 가족을 졸졸 따라다니면 되니 편하게 여행했다. 워싱턴에 왔으니 안 가볼 수 없는 백악관도 가고, 미국 국회의사당도 구경하고, 조지타운에 있는 공원에 가고, 블루 보틀 커피도 마셨다.


링컨 기념관


버스를 타고 다니면 워싱턴 곳곳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해서, 두 가족이 같이 버스를 타고 링컨 기념관에 갔다. 사진보다 더 어마어마한 규모의 링컨 조각상을 보며, 그가 이뤄낸 업적에 대해서 생각하며 등을 돌렸다. 무심코 돌리는 순간, 바닥에 새겨진 문구를 보았다.
“ I have a dream.” 이란 문장이었다. 그 말이 왜 이리 마음에 와 닿는지. 마틴 루터 킹이 말한 그 한 문장이 힘이 있는 건 아마 그가 그의 삶으로 그 말을 직접 보여 주었기 때문일 거다.


내 시선을 끈 문구


남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스미스소니언 국립 자연사 박물관에 가고, 언니와 나는 그 근처에 있는 국립 미술관을 향해 걸어갔다. 워싱턴에서 두 번째 만나는 언니인데도 왠지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이 같았다. 우리 가족처럼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힘이 되는 걸 느낀 듯하다. 나를 제대로 이해해 주는 사람이어서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를 많이 의지하게 되었다. 사실, 삼십 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새로운 친구를 만나서 마음을 여는 게 쉬운 나이는 아닐 수도 있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좋은 친구 된 게, 세계 여행을 하게 돼서 얻은 큰 선물 중에 하나이지 않나 싶다.

그리고 더 감사한 건, 남편과 대니엘이 좋은 친구가 된 거다. 남편은 자기와 같은 디지털 노마드로 살고 있는 대니엘과 정말 잘 통한다고 했고, 엄마들보다 오히려 더 자주 연락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해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기분인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옆에 없어도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걸, 우리 둘 다 느끼고 있었다.


미국 국회 의사당


예전에는 난 표현하는 걸 잘하지 못했다. 내 생각과 감정을 억누르는 것에 익숙해서 내 마음을 입 밖으로 표현하는 게 자연스럽지 못했다. 그런 나는 남편을 만나 많이 변했다. 남편은 내가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사람이고, 자신의 감정에 대해 정직한 사람이다. 그를 통해 나도 내 감정에 솔직해지는 게, 나를 위한 거고 또 남들을 위한 거라는 걸 배웠다.

그래서 국립 미술관에 있는 카페에서 언니와 둘이 앉아 얘기하면서, 예전에는 쑥스러워하지 못했을 고마운 이야기를 했다. 우리 가족이 언니네 가족을 만나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말이다. 언니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우리 둘은 이런 인연을 만난 걸 신기해했다.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이런 기대치 않았던 만남인 거 같다. 이런 만남들을 통해서 내가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니 말이다. 언니가 먼저 물어봐준 덕분에 세계 여행한 기록을 쓰게 되었다. 덕분에 난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전에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말이다. 여행과 만남이 나에게 변화할 수 있는 힘을 전해주고 있다.


언니랑 같이 갔던 미술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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