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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Jul 30. 2020

나에게 있어서 라라랜드는

미국 LA

 뉴욕에 있었을 때, 뉴저지에 사시는 남편의 사촌 고모님 댁에서 며칠 지내며 시간을 보냈었다. 고모님께서 우리 가족을 너무 예뻐해 주시고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이번에 LA에 있으면서 또 다른 사촌 고모님 댁에서 며칠 지내게 되었다. 남편의 또 다른 가족들을 만나고, 아들을 처음 보여드리고 하니, 가족이란 게 이렇게 따뜻한 거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고모님 두 분 다, 남편이 어렸을 때 힘들게 자라서 조금 걱정을 했었는데 이제는 가정을 이루고 단란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너무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번 만남이 우리에게 더 뜻깊게 다가왔다.

LA에 도착하자마자, 신이 난 우리는 할리우드 거리에 나가 워크 오브 페임도 구경하고, 그 유명한 할리우드 사인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며칠 뒤에는 전형적인 관광 코스인 유니버셜스튜디오도 가고, 산타 모니카 해변도 갔다. 그중에서 내게 제일 의미가 있었던 건, 그리피스 천문대였다.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본 풍경


라라랜드라는 영화는 호주에서 세계 여행을 떠나기 전 본 마지막 영화였다. 아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여자 친구랑 둘이 영화를 보러 나섰다. 나는 개봉한 영화들도 잘 몰라서, 친구가 결정하는 걸 그냥 같이 보기로 했다. 친구는 그때 막 개봉했던 라라랜드를 선택했다. 예고편도 보지 못했고, 어떤 내용인지도 전혀 알지도 못한 채, 영화관에 앉아 아들 없이 친구랑 영화 보러 온 그 자체에 난 충분히 만족했다.

영화는 시작되었고, 뜬금없이 출연하고 있는 배우들이 춤과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난 사실 그 영화가 뮤지컬 영화인지 조차도 몰랐다. 별 기대 없이 잠잠히 영화를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세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정말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자 주인공이 꿈을 찾아 여러 시련도 겪고, 실패도 하게 되고,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포기하기 직전에 갔는데, 남자 주인공의 끈질긴 믿음으로 여자 주인공은 다시 꿈을 찾아가는 내용이었다.


아들보다 남편이 더 신나했던 유니버셜 스튜디오


남편과 연애할 때부터, 우린 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바람들이 무너지는 것도 같이 보고, 상대방이 지쳐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모습도 보았다. 내가 남편에게 늘 감사한 것 중에 하나는, 내가 나조차 믿지 못할 때 나를 믿어줬다는 거다. 갑상선암 수술 후, 뭘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을 때도 통번역 공부를 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밀어줬던 것도 남편이었다. 때로는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나를 믿어주고 내가 잘 될 거란 말을 해줬다.

나는 퉁명스럽게 오빠는 너무 긍정적이라 그런 거야, 하며 말했지만 나조차도 확신이 없는 나의 꿈들을 믿어주는 남편이 참 고마웠다. 글을 쓰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도, 정말 기뻐하며 잘 될 거라고 했다. 잘 되고 못 되고를 떠나서, 내가 하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응원해주는 내 편이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실패하더라도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런 도전에 뛰어들 수 있는 큰 힘이 되어준다.


이름도 예쁜 산타 모니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동안 얼마나 많이 남편이 나에게 넌 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는지 생각했다.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한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남편과 아들과 함께 그리피스 천문대에 서 있다. 천문대 아래로 도시들의 빛이 반짝인다. 날 믿어주고 어려움을 버텨준 남편이 내 옆에 서 있다. 때로 우리가 마주했던 어둠들은 우리가 갖고 있던 사랑을 더 견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을 같이 넘어서며 동지애가 생겼다. 사랑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묵묵한 기다림과 나조차 날 믿어주지 못할 때도 믿어주는 그 마음이 사랑의 한 모습이란 걸 남편의 사랑을 통해 배웠다.


여행하면서 영화에 나온 장소를 가보는 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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