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 아시아로 올 수 있는 직항의 옵션을 찾다가 우리가 발견한 게, 에바 항공을 통해 가는 대만이었다. 아시아 지역 중에 그동안 우리가 가 보지 못한 곳을 가보고 싶었기에 우린 고민하지 않고 대만을 선택했다. 에바 항공은 처음 들어보고, 14시간이란 장거리 비행이었기에 고민을 했다. 리뷰도 나쁘지 않았고 그 전에도 처음 선택한 노르지안 항공에 만족도가 아주 높았던 편이라, 이번에도 처음 타는 항공사란 사실이 그리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승무원분들도 아주 친절하시고, 좌석도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아기가 있는 걸 보고는, 알아서 비상구 쪽에 더 넓은 좌석도 주셨다. 아기가 힘들어할 때마다 복도 끝을 왔다 갔다 여러 번 걸어 다녔는데, 간식도 챙겨주시고 웃으면서 싫은 내색도 안 하셨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을 하고 나면, 몸이 확 지치기 마련이다. 대만에 도착한 날, 호텔로 걸어가는 길에 비가 질척 질척 내리기 시작하더니, 우리가 있는 동안 꽤 자주 비가 내렸다. 미국과는 시차가 많이 차이가 나서 우린 다시 또 시차 적응 기간을 거쳐야 했다. 이번에는 아기도 아기이지만, 나도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렸다. 새벽 2-3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날의 반복이었다.
타이베이 101
대만의 더위는 아침 7시부터 시작된다. 아들을 데리고 걸어서 놀이터만 나가도 그때부터 온몸에 땀이 주르륵 흐른다. 처음 며칠은 몸이 좋지 않으니 많은 것들에 대해 불평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차차 컨디션을 회복하니, 대만의 망고 빙수도 맛나고 음식들도 저렴하고 맛있는 게 좋다. 온갖 신선한 과일이 직접 들어간 아이스 과일 티는 내가 마셔온 것 중에 당연 최고였다. 역시, 사람의 컨디션을 회복시키는 것 중에 음식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길거리 음식도 이것저것 먹어보고, 뷔페식의 훠거도 먹고, 딘타이펑에서 딤섬도 먹고 힘을 내어, 그동안 아파서 보지 못했던 대만을 구경했다. 타이베이 101에 올라가 도시 전체를 보고, 그 근처에서 우연히 발견한 세련되고 예쁜 장식이 있던 길거리 마켓에 잠시 들려 디저트도 먹었다. 국립 고궁박물관, 중정기념당도 가고, 신린야시장도 둘러보았다.
마셔 본 아이스 과일티 중에 최고였던 티& 자주 먹었던 망고빙수
타이베이 101에 올라가서
대만의 야경& 반반 훠거
중정 기념당
그중에 가장 좋았던 건, 베이터우 온천이었다. 온천을 하진 않았지만 산책만으로도 만족스러웠던 코스 었다. 전철에서 내려서 온천을 향해서 걷기 시작하니 우리가 머문 도시지역과는 달리 수많은 나무들이 보인다. 그것만으로 기분이 상쾌해지는 기분이다. 길바닥은 비에 젖어 조금씩 빛나고 있었고, 우리의 목적지였던 지열곡(Thermal Valley)은 뜨거운 열로 인해 생긴 김이, 마치 하얀 안개처럼 그 계곡을 감싸고 있었다. 물론 이 야외 계곡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엄청나게 뜨거워서 가까이만 가도 그 열기가 대단했다.
베이터우 온천 가는 길에서 찍은 사진들
돌바닥과 나무로 지어진 쉼터들을 지나, 이 하얀 안개를 품은 계곡을 보니 뭔가 비현실적이다. 사실 여기는 우리가 있었던 곳에서 꽤 떨어져 있고, 남편보다는 내가 와보고 싶었던 곳이라 올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이렇게 와보니 오지 않았으면 큰 후회를 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괜히 미안해서 내가 원하는 걸 물어보지도 않고 포기해버릴 때가 종종 있는 데, 그러지 말고 떳떳하게 밀고 나가야겠다. 지금 돌아와서 기억을 더듬어 보니 대만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바로 하얀 연기로 뒤덮인 이 계곡이니 말이다. 그 하얀 연기에 쌓인 숲 속의 계곡을 본 건 처음이었는데, 뭐랄까 신비스럽다고 해야 하나. 그 신비스러움이 주는 아름다운 경치를 우리는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 높고 높은 타이베이 101보다, 화려했던 고궁 박물관보다, 한적하게 산책하며 마주 보게 된 하얀 안개의 계곡이 나에겐 더 좋은 추억이 되었다. 나중에 언젠가 다시 오게 된다면 온천을 제대로 즐겨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들게 만들었다. 아쉽게 떠날 수 있다는 것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