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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Aug 11. 2020

우리가 떠난지도 300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쿠알라룸푸르에서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낸 곳은 페트로나스 쌍둥이 빌딩 건물과 그 건물 바로 앞에 있는 KLCC 공원이다. 너무 더운 날이면 쌍둥이 빌딩 건물 안에 있는 쇼핑몰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냈고, 견딜만한 날씨에는 공원으로 나왔다. 쇼핑몰 안에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온 걸 느끼게 해주는 어마어마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넘쳐났다. 크리스마스 트리들부터, 나무집들로 만든 마을이 전시되어 있는 곳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이곳에 오니 비로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페트로나스 쌍둥이 건물이 가장 멋있게 보였을 때는, 낮보다는 저녁이었다. 밤이 되면 조명이 들어오는 이 건물을 KLCC 공원에서 바라보는 게 제일 좋았다. 또, 이 공원은 중간에 큰 호수가 있고, 아이들이 무료로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 아주 넓은 놀이터가 있어서 아들이 뛰어놀기에 최고의 장소였다.



이 도시에서 세계 여행을 시작한 지 300일이 되었다. 그 날은 평소보다 아들을 낮잠을 재우기가 너무 힘들었고, 남편과 나는 더 예민해졌다. 낮잠이 늦게 들어서 하루의 대부분을 그냥 호텔에서 지냈다. 저녁 8시쯤 호텔에서 나가, 타임 스퀘어 쇼핑몰에서 저녁을 먹고 조금 놀다가 다시 호텔로 들어왔다. 늦은 밤, 남편은 캔맥주를 난 사이다를 아들은 요거트를 마시며 축배를 들었다.


특별하지 않고 평소보다 오히려 더 지친 하루를 보낸 우리는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거니까 괜찮다고 서로를 다독였다. 예전에는 이런저런 기념일에 뭔가 조금이나마 특별한 일을 하며 축하하는 시간을 보냈는데, 아기가 있고 나서는 특별한 날들도 그냥 평범한 날들처럼 지나간다. 전에는 그게 좀 씁쓸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이게 더 좋은 거 같다.



하루 종일 징징거리는 아기를 달래느라 심신이 지친 날, 땀에 흠뻑 젖어 찝찝한 기분을 샤워로 씻겨내고 그냥 남편과 마시는 사이다 한 잔으로 마무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좋았다. 우리를 힘들게 한 주인공이 한 번 웃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또 언제 힘들었냐는 듯 웃고 있다. 웃으면 됐다 싶다.


300일이 될 때까지 우리는 아들과 함께 17개국, 41개의 도시를 방문했다. 숫자로 보니 참 많이도 다녔다 싶다.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순간 욱한 적도 많았고,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지라고 말한 적도 많았다. 그럼 왜 굳이 힘든데 그런 결정을 했냐고 누군가 묻는 다면, 우리는 마음의 꿈을 접는 게 더 힘들어서 그랬다고 답할 것이다.  우리 둘 다, 다시 하라고 하면 똑같은 결정을 했을 거라고 했다. 망설임 없이 우리는 떠났을 거라고 했다. 마음의 소리를 귀 기울이며 사는 게 흔치 않은 세상이 되었고, 우리는 넓은 길 놔두고, 발길이 별로 없는 길을 선택했다. 힘든 적은 많았지만,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정말 한 순간, 일분일초도 없었다. 그래서 난 그게 옳은 선택이었다고 믿는다. 아쉬움이 없는 선택이었고, 그 선택으로부터 오는 어려움들도 당연스레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다. 여행이든 삶이든 선택의 연속이니까, 그 선택으로 따르는 웃음도 눈물도 다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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