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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Aug 12. 2020

멀리서 보니까 그제서야 보이는

호주 퍼스

 세계를 돌고 돌아 다시 호주에 돌아온 지 벌써 3주가 지났다. 호주에 다시 돌아왔지만 우리의 여행은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오랫동안 살았던 나라였지만, 사실 나중에 가야지 하면서 늘 미뤘기 때문에 정작 호주는 많이 보지 못했다. 언제나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미루게 되는 게 바로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 여행이다. 말레이시아에서 호주로 오기 가장 가까운 곳은 바로 퍼스였다. 아주 단순하게 우리의 호주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퍼스에 도착해서야 우리가 퍼스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퍼스는 아름다운 해변이 많았고, 호주에서 유일하게 쿼카라는 귀여운 동물을 볼 수 있는 로트네스트 섬도 있다. 1시간 정도만 운전해서 가면 퍼스 중심가에서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막막한 사막이 있기도 하다. 호주에서는 비자 문제가 없기도 하고, 우리가 당분간 정착할 지역을 물색할 계획으로 천천히 움직이기로 했다.


퍼스 중심가에서


퍼스에 도착한 뒤 2주 정도는 퍼스 중심가와 주변 해변에 가보고 시드니에서 퍼스로 이사 온 친구들도 만나고, 3주째에는 로드 트립을 떠났다. 로드트립을 한 지 5일째, 우리는 그린풀이라는 비치에 갔다. 난 바위에 앉아 잠시 일기를 쓰고 있었고, 남편과 아들은 내 근처에서 놀다가 아들이 갑자기 저 멀리로 뛰어가자 남편도 뒤따라 가는 바람에 둘 다 내 곁에서 꽤 멀찍이 떨어졌다.

나는 자주 아들의 단점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해왔다. 아들이 너무 심각하게 밥을 안 먹어서 걱정한지도 오래되었고, 또래보다 말이 늦어서 염려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이 생활을 해서 그런 건가 하는 자책도 했었고 말이다.


이 글을 쓴 그린풀 비치


근데 저 멀리에서 아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같이 노는 모습을 보는 데, 나는 아들이 가진 장점을 제대로 잘 보지 못하고 너무 단점에만 집중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나와 참 다르다. 낯가림도 없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 손도 잡고 웃으며 먼저 늘 다가간다. 아들이 늘 그래 왔기에 그걸 너무 당연시 여긴 거 같다.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마음을 열고 관계를 하고 싶어 하는 성격은 좋은 장점인데 말이다.
놀이터에 가서도 아들은 늘 다른 아이들을 먼저 살핀다. 누구랑 놀까, 생각하는 게 보인다.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가는 게 나도 마음에 든다. 자기 자식 자랑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서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아들을 오히려 더 깎아내리지 않았나 싶다.

물론 주책스러울 정도로 자식 자랑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지만, 말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이 있는지 알고 있기에 아들을 세워주는 말을 많이 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들이 가진 단점을 어떻게 발전시킬까도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그가 가진 장점을 어떻게 하면 극대화시킬 수 있나 고민하는 엄마가 될 수 있으면 한다.


쿼카를 볼 수 있는 로트네스트 섬


따스한 말로 아이를 감싸 안아주는 그런 엄마가 되었으면 한다. 부모의 격려로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커가길 바란다. 말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지 머리로 아는 것보다,  오늘 그 앎을 실천하는 게 참 어렵지만 실천하는 부모가 되자고 다짐한다.

이렇게 멀리서 아이를 바라보니 그런 모습이 더 제대로 보인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내가 너무 나의 틀에 아이를 껴 맞추려 하는 건 아닌가 싶다. 난 쿨한 엄마가 될 거야, 하면서도 아들이 일반적인 기준에서 늦어진다고 생각하니 불안했나 보다. 그 틀을 벗어나게 해주는 건, 아들을 멀리서 그리고 천천히 관찰했을 때이다. 나의 어긋난 기대를 아이의 작은 어깨에 두고 싶지는 않았다. 그 작은 어깨를 어루만져주며, 그저 넌 잘하고 있다고 미소 짓는 엄마가 되고 싶다.


다양한 퍼스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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