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한나 Aug 19. 2020

그 어쩔 수 없는 게

호주 선샤인 코스트

 공룡을 너무 좋아하는 아들은 악어 사진을 볼 때마다 늘 공룡이라고 소리쳤다. 아무리 악어라고 말해봤자, 자신의 의견을 절대 굽히지 않았다. 그런 아들을 데리고 악어를 많이 볼 수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동물원에 갔다. 이 동물원은 호주의 유명한 환경운동가이었던 스티브 어윈이 운영했었고, 지금은 그의 가족이 그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시드니에는 타롱가 동물원이 있다면, 선샤인 코스트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동물원이 유명하다.

세계 여행을 하면서 아들 덕분에 여러 동물원을 다녔지만, 오스트레일리아 동물원처럼 호랑이 쇼를 하는 동물원은 본 적이 없다. 동물들도 정말 다양할뿐더러,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특히, 하루에 이렇게 많은 악어를 본 건 처음이다. 스티브 어윈의 사진이나 그림을 볼 때마다 그는 항상 악어와 함께 있었다. 그는 멸종 위기에 처한 악어를 구하는 일을 했다고 들었다. 사실 악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야생 동물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것에 온 삶을 바쳤다.


여러 모로 인상적이었던 악어쇼


이 동물원에서 하는 악어쇼에서 그의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을 큰 스크린으로 보여주었다. 카메라를 향해서 열정적인 목소리로 야생 동물을 보호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이런 야생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라는 말을 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저렇게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비록 스크린을 통해서 본모습이지만, 그가 얼마나 삶을 사랑하고, 자신의 소명을 사랑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에너지가 스크린을 넘어 아직까지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슬프게도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큰 가오리에 물려 삶을 마감했지만 그의 가족을 통해 그의 꿈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내가 가진 장점이 열정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그렇게 내 가슴속에 불타오르던 그 열정은 어디쯤에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 나여서인지 열정적으로 소리치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스크린 속에 그가 참 좋다. 그냥 보고 있어도 힘을 얻는 거 같은 기분이다. 한없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을 때, 티비에서 나오는 긍정적인 캐릭터들을 보면 기분 좋았던 것처럼 말이다. 나와 달라서 싫고 버거운 게 아니라, 나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냥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듣는 게 좋았다.  


동물원에서 에너지 폭발한 아들을 쫒아디니니 극기훈련 수준이다!


시간이 흘러서, 상황이 달라졌으니 젊음의 열정 또한 없어지는 게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때론 난 그 핑계를 댄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 이유가 아닌 다른 진짜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다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막연히 내 안에 뭔가가 더 있다는 느낌이 있다. 아직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미지근한 가슴으로 대하고 싶지 않다. 그럼 너무 슬플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뜨거운 가슴으로 살다가 눈을 감고 싶다. 그래서 눈을 감는 순간 미련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게 너무 순진하고 미련한 생각이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는 게 있지 않나. 그 어쩔 수 없는 게 때론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고 괴롭게 만들더라도 말이다. 그 어쩔 수 없는 것이 날 붙잡아 주는 중심일 수도 있으니.


 칼론드라 지역에 있는 Bulcock Beach
물룰라바 비치


매거진의 이전글 멀리서 보니까 그제서야 보이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