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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Dec 03. 2020

그때 떠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발리, 스미냑

 첫 번째 장기 세계 여행 후, 호주 골드 코스트에서 6개월 살았다. 그때 처음으로 일주일에 두 번, 아들은 데이케어에 가기 시작했고, 난 그 시간 동안 세계 여행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 덕분에 브런치에 이미 올린 글들이 완성될 수 있었다. 골드 코스트에 나름 정착하고 있었을 때 둘째가 생기길 바랐지만 우리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편은 다시 세계 여행을 하자고 했고 난 몇 달 동안 고민을 했다. 아들이 나름 데이케어에 적응 중이었고, 다시 떠나는 게 과연 맞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더 늦기 전에 한번 더 떠나고 싶단 마음도 들었다. 어떤 게 더 후회 없는 선택일까 고민하다가, 나중에 둘째 아이가 생기면 더 힘들 테니 지금 떠나자는 결론을 냈다. 이번에는 아시아 쪽만 도는 걸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못 가본 발리를 제일 먼저 가기로 했다. 주변에서 발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반응이 참 달랐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좋아서 다시 여러 번 가거나 아니면 어떤 이들은 더위나 식중독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다. 과연 우리가 경험하는 발리는 어떨까 궁금해졌다. 2018년 11월 19일, 우리 세 가족은 두 번째 노마드 라이프를 시작했다.

사실, 시드니에 다시 돌아와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그때 그 결정을 한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제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여행을 그리워하며 그 마음을 글로 채우고 있다. 떠나지 못하니, 떠났던 그 시절이 얼마나 애틋해졌는지. 그 마음을 어딘가에 남기고 싶어 졌다. 이것으로 나만의 여행을 대신하자. 여행의 기록이 여행을 추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거 같아서 말이다. 발리를 시작으로, 싱가포르, 한국, 일본을 거쳐 다시 시드니로 돌아온 여정이다. 여행하면서 쓴 일기를 기본으로 한 글이라서 컨디션이 좋았던 발리에서는 일기를 꽤 많이 기록했지만 싱가포르, 한국, 일본에서는 일기를 많이 쓰지 못해서 아마 발리 이야기가 많을 듯하다. 어쩌면 이번 기회로 기억을 더듬어 다른 나라에 했던 경험도 더 남길지도 모르겠다.





발리에 도착한 첫째 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공항은 엄청난 인파와 뜨거운 열기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 미리 예약해 둔 픽업해주는 택시가 있어서 운전사를 따라 주차장으로 갔다. 어린 아들과 여러 짐들이 있었기에 예약을 해두지 않았다면 고생할 뻔했다. 발리가 더울 걸 예상했지만 뭔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한 더위였다. 공항에서부터 등 뒤로 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아들의 머리카락이 젖어드는 것도 금방이었다. 우리가 살던 호주도 여름에는 꽤 더운 나라이지만 발리의 더위는 뭔가 차원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첫번째로 머물었던 호텔의 창 밖 풍경


호텔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있는데, 아들이 안절부절못하고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처음 보는 모습이라 당황하기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모습을 보니 나도 어쩔 줄 몰랐고, 또 아이가 너무 불쌍했다. 나중에 보니 변비 때문에 그런 거였고, 호텔룸에 도착하자마자 팬티에 큰 일을 보았다.(이 일이 호텔 로비에서 생기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던지)

아프고 힘겨워하는 아들이 너무 안쓰러워, 여기서 또 우리 뭐 하고 있는 거지 싶기도 했다. 첫날부터 너무 긴장하고 더위에 지치니 진이 다 빠진 느낌이었다. 쥐어짜 내도 아무것도 나올 것 같지 않은 기분이다.


발리에서 머물 땐 수영장이 있는 곳이 필수인 듯하다


며칠이 지난 후에도 더위에 많이 지친다. 하루에 샤워는 두 번이 기본이다. 어떻게 이런 더위에 살지 싶다가도, 종종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긴팔, 긴바지에 심지어 재킷까지 입고 있는 걸 많이 보았다. 적응이란 게 그런 거겠지 싶다. 우리가 이 더위에 적응하는 데 2주가 좀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이 지나니 더위에 대한 불평은 입에서 사라졌다. 더위와 공존하는 법을 조금씩 터득했다고 해야 하나. 우리가 발리에 처음 있던 지역은 스미냑이라는 곳인데, 이 곳은 길이 꽤 좁아 유모차를 끌 수 없다. 그래서 땡볕에 걸으려면 아들을 남편과 내가 번갈아 안고 걸어야 하니 지치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은 피하고, 그나마 온도가 나아지는 오후 늦게 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호텔에 있는 수영장도 하루에 거의 두 번씩 간다. 물속에 들어가면 뭔가 제정신을 차리는 느낌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그 더위 자체가 더 이상 불편하지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말이다. 다른 것들이 우리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호텔 근처에 있던 카페 밖과 안의 풍경. 발리는 신선한 음료수가 저렴해서 정말 맘껏 마셨다. 그리운 것들 중에 하나이다.


날카로워진 인상을 풀게 해 주는 건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순박한 미소이다. 어찌 하나같이 다 착한 미소를 가졌나 싶다.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미소 덕분에 나도 덩달아 웃게 되어 버틸 수 있는 거 같다. 이 더위를 말이다. 지침과 피곤함을 말이다. 혼돈과 불안정을 말이다. 마더 테레사가 괜히 평화가 미소로부터 시작된다고 말씀하신 게 아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걸 거다. 나의 평화는 인도네시아 사람의 미소로 회복되고 있으니 그녀의 말씀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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