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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Mar 12. 2021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흔적을 마음에 담는다

발리, 스미냑

 발리의 스미냑이라는 지역에 한 달 넘게 머물렀던 이유는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서였다. 한 달 동안 보낼 유치원이 스미냑 지역에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세계 여행을 할 때는 한 달 동안 한 곳에 머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유치원에 보낼 기회가 없었지만, 두 번째 세계여행은 그 전보다 더 느리게 움직일 예정이라 유치원도 보내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시도는 해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도전했다. 애들은 부모의 생각보다 더 강할 때가 많은 걸 수차례 경험했으니 말이다. 

유치원에 간 첫날, 가자마자 인도네시아 아이가 다가와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며 새로운 친구라고 챙겨주니 아들도 같이 놀면서 적응을 잘한 거 같다. 끝나는 시간에 픽업하러 갔을 때, 선생님께서 아들이 친구들과 벌써 잘 지내고 대화도 먼저 하면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점심은 잘 먹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잘 놀고 재밌어하니 다행이다. 경비아저씨도 아들의 이름을 기억해주고 불러 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오는 아이들이 많을 텐데도 그렇게 노력하시는 게 참 따뜻했다.


스미냑에 머물었을 때 갔던 식당


유치원을 가는 한 달 동안 그래도 나름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같은 숙소에 지내기로 하고 유치원 근처에 작은 스튜디오를 예약했다. 큰 호텔이 아니고 규모가 자그마한 숙소여서, 직원들과도 친하게 지내게 돼서 발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숙소가 되었다. 이 숙소는 작지만 그래도 주방이 있고 따로 침실은 없지만 거실 겸 침실이 있는 구조였다. 우리 방을 청소해 주는 직원이 있었는데, 매일 보다 보니 정든 인연이 되기도 했다. 그 직원은 두 아이의 엄마였다.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아들이 그 직원에게 스티커를 줬는데 그걸 아이들에게 주려고 너무 소중히 다루는 게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가진 풍선을 몇 개 주었더니, 본인 아들이 풍선을 사달라고 졸랐었다고 한다. 가슴 한켠이 시리다. 풍선 사달라고 졸라도 사 줄 수 없는 현실의 무게가 느껴졌다. 뭐를 더 줄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렸지만 또 자존심 상하거나 기분 나빠할까 봐 천천히 하기로 했다.

 

우리 숙소 바로 옆에 있어서 정말 자주 갔던 그리운 단골 식당


어느 날, 집 앞에 미니마트를 가려고 나서는 데 그 직원이 청소하고 있었다. 그 날은 자신의 딸을 데리고 왔다고 했다. 쑥스럼이 많은 아이라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눈도 잘 못 마주친다. 미니마트에서 우리 음료수를 사면서 직원과 그녀의 딸의 음료수도 샀다. 음료수를 건네니 쑥스러워 잘 받지도 않는다. 엄마가 인도네시아어로 설명해주니 그제야 받는다. 직원이 청소하는 동안 딸이랑 우리 아들은 같이 색칠 놀이를 했다. 우리 집을 청소할 때가 되어 같이 올라가서 놀라고 했다. 풍선을 가지고 한참을 낄낄대며 놀던 아이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웃음은 통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우리 작은 스튜디오에 가득하다. 그때가 발리에서 지낸 시간 중에서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소중한 순간이 되었다.  


숙소에서 만난 다른 한국 가족들과 간 카페에서의 시간. 이런 순간들이 귀하고 기억에 더 남는다


그녀의 딸과 우리 아들이 깔깔 웃으며 시간을 보낸 그 하루가 그렇게 평온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삶에 대해서 배운다. 유명한 곳을 가서 사진을 찍고, 맛난 음식을 먹는 것이 여행의 큰 재미이기도 하지만 더 마음에 남는 건 사람이고, 그 사람과 교류를 통해 배우는 마음이며 따스함인 것을 말이다. 우리를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으로도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그들의 순수함 덕분에, 성실함을 보면서, 해맑은 마음이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발리에 오니 사는 게 참 단순해지고, 복잡한 생각들이 조금씩 정리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살아가면서 나중에 더 기억되는 건, 거대한 이벤트 적인 일들이 아니라, 별거 아닌 순간들의 연속일 것 같은 느낌이다. 우연히 길 걷다가 문득 눈을 들어 바라본 저녁노을, 피곤한 하루의 끝에 마주한 두 아들의 미소, 선선한 여름밤의 기분 좋은 산책, 갑자기 먹은 아이스크림의 달콤함과 같은 사소하지만 기쁜 일들이 그리워지고 있다.

 

2018년 12월 발리에서


한 달간 우리 집이 되어준 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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