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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Jan 28. 2023

도전했다는 걸 후회할 일은 없을 테니까

다시 또 노마드

 장기 세계 여행을 마친 뒤, 시드니에 돌아와 산 지도 그새 3년 반이 넘었다. 발리에서 둘째를 가진 후, 싱가폴과 한국에서의 심한 입덧, 회복 후에 일본에서 태교 여행한 뒤로 시드니에서 둘째를 출산했다. 얼마 뒤, 코로나19가 생기고 처음으로 락다운이란 걸 경험했다. 우리가 얼마동안 시드니에 살지 몰랐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시드니에서 생활은 그리 나쁘진 않았다. 둘째가 태어나고 육아에 매진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버거운 날의 연속이었고 하루 이상의 시간에 대해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시드니에 돌아와서도 뭔가 집에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아이들도 잘 자라고, 육아도 고단하지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우리의 마음은 뭔가 말할 수 없는 허전함이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 늦기 전에 다시 한번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그때 왜 한번 더 떠나지 못했을까,라고 나중에 후회를 한다면 지금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후회를 한다면 해보지 않은 것일 테지, 결코 도전했다는 걸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 뻔했다.


첫째 아이가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고, 둘째는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알아보니 호주 학교에서는 Distance Learning이라고 해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가능했다. 여행하면서도 충분히 첫째를 교육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보다 여행을 통해 배우는 것이 어쩌면 더 많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1년 정도 슬로우 트래블을 계획 중이다. 첫째 아들을 데리고 한 세계여행은, 기간으로 치면 2년 정도지만 뒤돌아 보니 꽤 자주 이동했었다. 이번에는 둘째 아들까지 데리고 가는 여행이라, 그전보다는 더 천천히 그리고 아시아 지역만 둘러볼 예정이다.


시드니 생활을 정리하면서, 미니멀리스트로 살자는 내 결심이 많이 흔들렸던 걸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정리할 짐들이 너무 많아져서 말이다. 애가 둘이니 여기저기서 받은 것들도 많아졌고, 남편이 산 물건들도 꽤 많았다. 물건들이 많아졌을 땐, 마음이 정말 답답해졌는데 그 물건들을 없앨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없이 자유로워진다.  여러 가지를 정리할수록 우리의 결정이 맞는 거라는 확신이 들고, 시드니에 미련이 없어진다. 떠날 시간이 왔을 때는 이미 마음이 알아차리는 것 같다. 우리의 시간이 되었다.


지난번에도 살던 집, 가구, 차 등등 모든 걸 정리하고 떠난 터라 이번에는 경험이 있으니 더 수월하겠지 싶었지만 이젠 아이가 한 명이 아니라 둘이나 보니 어쩌면 예전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모든 결정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장기 여행을 떠난다는 그 말 자체는 뭔가 신나 보이지만 그 뒤에 보이지 않는 과정은 꽤 지난하다. 지겹고 고된 과정을 거치며 가구를 팔고, 차를 팔고, 집을 정리해 나갔다. 그동안 두 아들들은 하루에 수백 번 싸웠으며 내 목소리는 점점 괴성이 되었다. 가족과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하면서 시드니 생활을 정리했다. 드디어 내일이면 우리 가족은 이곳을 떠난다. 떠난다,라는 말을 쓰기까지 오래 걸렸다. 떠난다,라는 말이 주는 설렘을 이제야 조금씩 느끼고 있다. 바로 어제까지도 사야 하는 것, 처리해야 하는 일들에 정신이 팔려 우리가 정말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길 시간조차 없었다. 이게 현실이다. 어쨌든 비행기 타기 전 날 밤이 되어서야 조금 실감이 난다고 하면 믿을까.


2023년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그 길에서 무얼 경험하고 느끼게 될까. 조금은 두렵고, 그보다는 조금 더 설렌다. 코로나 이후 처음 가는 공항이다. 공항에 가는 것 자체가 그냥 좋다. 4년 만에 다시 찾는 발리는 어떤 새로운 모습일까. 우리 아들들은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 수많은 질문들을 안고 떠난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정리하고 싶어서 오랜만에 글을 쓴다. 우리의 여정이 결국 날 다시 글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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