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란에서 머물렀던 호텔 위치는 골목길로 들어가야 해서, 둘째 아들과 길거리를 걸어가다 큰 개들이 골목길을 막고 있어 다시 호텔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 이후에는 짐바란에서는 걸을 시도를 하지 않고 고젝(발리에서 우버처럼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타고 이동했다. 둘째가 워낙 큰 개를 무서워하고 나도 무섭기도 해서 우리 둘이 걸어 다니는 게 두려웠다. 짐바란을 떠난 우린 사누아( 사누르라고 하기도 한다)에 도착했다. 지난번에 발리에 왔을 때 오지 못한 곳에 지내고 싶어서 정한 곳이다. 우리 가족은 워낙 비치를 좋아하니까 비치에 걸어갈 수 있고 덜 번화한 곳을 찾다 보니 여기 오게 되었다. 사누아에 도착하자마자 신기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유모차를 가지고 걸어 다니기도 짐바란보다 편하고, 길도 발리 치고는 넓은 편이고, 웃기지만 심지어 개들도 릴랙스해 보인다. 이상하게 무섭지가 않다. 여기서는 개들이 지나가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고, 아이들도 개를 이제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 쇼핑센터에 갈 일이 있어서, 쿠타 쪽을 몇 번 갔는데 교통체증도 엄청나고, 번잡해서 거기 있다가 사누아 쪽을 오니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우리 동네로 돌아온 기분이다.
사누아에 있는 비치를 산책하며
사누아 쪽이 가족한테 인기가 많다고 들었는데 왜 그런지 알겠다. 쿠타나 세미냑 쪽에 비해서는 교통체증도 덜 하고, 큰 쇼핑센터가 없어서 덜 복잡하다. 비치도 쿠타나 세미냑 쪽보다는 더 깨끗하고 수영하기 좋다. 유모차를 가지고 다니기도 훨씬 편하다. 여러모로 사누아를 선택한 게 옳았다고 느껴진다. 사실, 짐바란 일주일과 사누아 일주일 정도로만 계획했기 때문에 그 이후는 발리에서 정하자고 했다. 사누아 있는 호텔에 머무르면서 여기에 더 오래 있는 게 맞는 거 같아서 근처에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아파트를 찾았다. 호텔에는 주방이 없어서 아무래도 장기로 있기에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리고 사누아의 장점을 하나 더 말하면 발리에서는 흔치 않은 비치 산책로가 있다는 점이다. 산책로에서 사람들이 자전거를 많이 타기 때문에 붐빌 때도 있지만, 그래도 타이밍이 맞으면 여유롭게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어서 저녁식사 후 걷는 그 시간이 기억에 남는다.
호텔 주변을 걸어다니며 사누아에 익숙해지고 있다
첫째 아들 온라인 학교 공부를 남편 혼자 가르치는 건 더 이상 무리라고 결론을 지었다. 사누아에 있으면서, 나도 같이 첫째 아들 공부 시키는 거에 참여하게 되었다. 시간 조정이 아직도 필요하지만, 그래도 짐바란에 있을 때보다는 남편이 덜 힘들어하게 되었다. 온라인 공부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부모의 가이드가 훨씬 많이 필요한 상황이라, 혼자 맡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아직도 어렵지만 그래도 나 혼자 아들 둘을 데리고 하루를 보내는 일도 점점 나아지고 있다. 첫째 아들 공부시킨 다음, 수영장에서 두 아들을 데려가 물놀이하고, 씻고 옷 갈아입힌 후에 식당에 나가 점심 식사 후 디저트까지 먹으러 간 날은 뭔가 뿌듯함이 들었다. 그전에는 자신 없던 일들도 막상 부딪치게 되니 그냥저냥 하게 되는 걸 보면서 더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
첫 번째 장기여행을 마친 뒤,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그때 더 누릴 수 있었는 데 육아 때문에, 다음 여행 계획 때문에 등등 여러 이유들로 그 순간의 집중하지 못했던 기억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던 일들이었지만, 한 발짝 물러서 보면 충분히 누릴 수 있었던 거다. 그래서 이번 장기여행에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는데, 고된 시간이 계속 이어지니( 주로 육아와 온라인 공부 때문에 그럴 때가 많다)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일 때가 많다. 그래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걸 자꾸만 놓친다. 하지만 우리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 사실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있는 틈이 있다는 걸 깨닫곤 한다. 그 틈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커질수록 우리의 마음이 자란다. 그 자라난 마음속에서는 아이들이 달리 보인다. 아이들의 짜증 속에서 보이지 않았던 아이들의 필요들이 차차 보인다.
그 날의 기억. 아침 수영의 묘미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바닷가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 모래놀이를 하며 아이들은 더 밝아진다. 자연 속에서 오롯이 가족과 함께 피부를 맞대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이들의 얼굴도 우리의 마음도 빛으로 나온다. 그리 많은 게 필요한 게 아니다.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과 자연으로부터의 위로. 땀으로 덮인 살갗이 그리 차지 않는 고요한 바닷물에 닿는 순간, 마음이 녹는다. 그래, 이걸 놓치지 말자. 나에게 주어진 이 자연의 힐링, 모래 놀이에 신중히 집중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언젠가 크면 더 이상 모래놀이도 안 하겠지), 갑자기 해변에 소나기가 내려도 나쁘지 않은 이 기분, 젖은 수영복에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그 순간의 자유로움을 말이다. 사진으로는 남길 수 없는 그 기분을 글로 남기며 다짐한다, 후회 없을 수 없겠지만 후회를 덜 남기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