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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Mar 07. 2023

Zero to Hero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발리 도착하고 2주간은 호텔에서 지냈다. 장기로 지낼 곳은 주방이 있는 곳이 좋을 거 같아서 우리가 마음에 든 지역인 사누아에 작은 서비스 아파트를 찾았다. 지난번에 왔을 때도 가장 기억에 남은 숙소는 사이즈가 큰 호텔이 아니라 한 달 동안 머물렀던 자그마한 스튜디오였다. 숙소 직원들이랑도 친해지고 직원의 딸과 우리 아들이 같이 놀고 수영도 한 기억이 좋게 남아서 이번에도 작은 숙소를 찾고 싶었다.


발리에서 가장 오랜 머무는 숙소. 애들은 이제 '집'이라고 한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환한 미소의 직원들이 우릴 반겼다. 첫인상부터 좋다. 우리 방은 바로 수영장 앞이어서 너무 편했고, 햇빛도 잘 들어서 맘에 들었다. 전에 있던 호텔들이 약간 어두운 편이어서 다른 것보다 그게 제일 좋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멍하게 수영장을 바라다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소나기가 무지하게 내리는 밤, 비가 떨어지는 수영장 물을 보면서 희한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오션뷰가 좋은 줄 알았는데 수영장뷰도 좋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직원들도 너무 선하고 만날 때마다 세상 환한 미소로 인사한다. 지나칠 때마다 어찌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난 그들처럼 성실히 살아가고 있는가, 질문하게 된다. 그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도 좋은 에너지를 받는 기분이다. 왔다 갔다 하면서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화하면서 참 많은 걸 배운다. 어느 날, 쌍둥이 아들 중 하나를 잃어버린 엄마의 이야기,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시골에 있는 엄마와 아기 남동생에게 보낸다는 청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스쳐 지나가는 말들 속에서 의연하게 자신의 삶을 나누는 그들의 강한 마음이 내 마음에 와닿는다.


걸으면서 구경하는 새로운 우리 동네


발리에서 고젝을 많이 타고 다니는 데, 그러다 보면 운전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어떤 운전기사와 대화를 나누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집도 잃고, 차도 잃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웃으면서 했다. 그게 나에게 일어난 일이었다면 과연 난 저 사람처럼 허허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면서 " Zero to Hero"라고 말했다. 아, 저런 삶의 태도면 저분은 영웅이 되고도 남겠다 싶다. 나에게도 저런 강단이 있길.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의지가 내 안에 있길.


Sindhu Beach. 매번 가도 비치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릴 반겨준다. 파도도, 하늘의 모습도, 선셋의 색깔도 매일 매일 다르다.


일주일 전에 머물렀던 호텔도 걸어서 비치를 갈 수 있었는데 이번 숙소도 걸어서 비치를 갈 수 있었다. 이번 비치는 저번보다 더 한산해서 더 좋다. 지난번에는 파도가 없어서 아들이 아쉬워했는데 이번 비치는 파도가 적당히 있어서 애들 놀기도 좋다. 비치 바로 앞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밤수영했던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 발리에 좋은 점은 저녁에도 수영을 할 수 있을 만큼 바닷물이 따뜻하다는 거다. 며칠 지나면서 살펴보니, 현지인들은 낮에는 땡볕이라 그런지 거의 수영하지 않고 해가 저물고 나면 물속에 들어가 수영을 한다. 암튼, 물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겐 사누아가 딱이다. 장기로 머무는 숙소로 옮긴 이후에, 더욱 발리 생활에 적응되는 거 같다. 첫째 아들의 온라인 공부도 차차 나아지고 있고, 어느 정도의 루틴은 생기니 우리들도 마음이 편해진다. 이 루틴이 새로운 나라를 가면 다시 또 변하겠지만, 여행하면서 새로움에 적응하는 걸 배우고 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계획을 변경할 수 있는 유연성은 삶의 태도 중 정말 중요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계속해서 변해가는 환경에 유연히 대처할 수 있는 마인드가 생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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