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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Apr 21. 2023

그때서야 나로 돌아온 것 같다

육아 스트레스는 혼자 있는 시간으로 푼다

 둘째 아들은 호주에서도 데이케어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코로나19에 영향이기도 했고, 세 살 때까지는 내가 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세 살이 되고 나서 여행을 떠났으니, 데이케이에 가보지 않고 발리로 오게 되었다. 남편이 일하는 사이, 두 아들을 나 혼자 보는 게 버거워서 데이케어에 보내 보기로 했다. 처음 시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둘째는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안 들어가겠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첫째 아들은 들어가자마자 친구 만들어 공놀이하고. 엉엉 우는 둘째 아들을 안고 20분 정도를 달래도 보고, 이것저것 놀만한 곳에 데려가도 무조건 울기만 했다. 희망적이지 않아서 어떡하지 그러고 있는데, 선생님이 오셔서 내가 갈 준비됐으면 자기가 아들을 보겠다고 하셨다.  자기가 아들을 보고 계속해서 울면 나한테 연락해 줄 테니까 가보라고 하셔서 난 바로 옆 카페에 가서 대기했다. 솔직히 당연히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해서 불안한 마음으로 휴대폰만 붙잡도 있었다. 계속해서 울고 있을 아이를 걱정하면서 말이다. 근데 기적적으로 연락이 오지 않았고, 둘째 아들이 처음으로 나랑 떨어져서 1시간 10분을 머물렀다. 오버가 아니라 나에겐 기적 같은 일이었다. 둘째는 워낙 나한테 껌딱지여서 아빠 아니면 내가 둘째에게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했는데 그래도 아이가 낯선 땅에서 모르는 선생님과 저 정도의 시간을 보낸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동이던지.  


아이들이 갔던 동네에 있던 데이케어


첫째도 온라인으로 공부하니, 답답해하는 것 같고, 워낙 활동적인 아이라 뭔갈 배우면 좋을 거 같아 일주일에 한 번 태권도를 시작했다. 좀 더 어렸을 때 시드니에서 태권도 수업에 가 봤는데 싫다고 해서 시작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Trial Lesson가 보고 엄청 좋아해서 바로 등록했다.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다른 아이들과 만나고, 태권도도 배우고 하니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런 시도들도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슬로우 트래블을 하니 가능한 것 같다. 아이들의 필요를 무시할 수 없으니, 다른 아이들과의 만남이 가능한 곳에 정기적으로 가는 게 건강한듯하다.


태권도 시작하고 너무 좋아하는 첫째 아들

호주에서 여행 계획하면서는 첫째 아들 온라인 공부 시키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어려울지 몰랐는데 여기 와서 막상 시켜보니 만만치 않다. 첫째 아이도, 이렇게 부모님과 공부하는 게 처음이다 보니 적응기간이 필요한 게 이해하지만, 하기 싫다고 징징거리거나 빈정거리는 태도를 보이면, 진짜 욱할 때가 너무 많다. 처음에 도착한 짐바란에서는 내가 둘째를 보고, 남편이 일하면서 첫째 공부도 시키는 걸 시도해 봤는데 잘 되지 않았다.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공부도 제대로 못 시키고, 이도저도 안 되는 일주일을 보내고는 결국에는 어찌 됐든 내가 해야 하는 걸로 결론을 내렸다. 둘째를 보면서, 첫째를 공부시키니 자연스럽게 둘째는 영상을 보여주는 시간이 많았고, 첫째는 영상을 보는 둘째를 보면서 왜 자기만 공부해야 하냐고 억울해한다. 아, 정말 속이 뒤집어진다.

단전부터 올라오는 화를 아이에게 내며 하루가 지나갈 때가 많았고, 난 늘 미안하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이가 불쌍하기도 하고.


다행히도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아이도, 나도 온라인 공부에 익숙해지면서 상황은 나아졌다. 첫째 아들은 칭찬에 약한 스타일이다. 근데 난 칭찬을 잘해주지 못했다. 답답하고 내 뜻대로 따라와 주지 않을 때가 많았으니 그런 것 같다.  칭찬할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진심을 다해 칭찬을 해주기 시작하니 아이도 태도가 급격히 좋아진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 더 잘하기 시작한다. 물론 매일이 그렇지 않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온라인 공부가 수월해지기 시작하니, 전체적인 일상에 안정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이제 첫째 아들을 공부시키면서, 둘째에게 영상을 보이지 않고 같이 놀아주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오전에 이렇게 2시간 정도 공부 시키면 진도는 따라갈 수 있는 정도이니, 그 이후로는 둘이 같이 놀게 하고 점심을 먹는다. 점심 먹고 난 뒤에는 보통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있으면 남편이 일 끝나고 돌아온다. 이런 루틴을 찾기까지 한 달 정도가 걸린 거 같다.


내가 아들 둘 보는 시간에 주로 수영하거나 점심 먹으러 나갔다


일주일에 몇 번 나에게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첫째가 온라인 학교에 적응 잘해서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아침부터 오후까지 아들 둘을 케어하는 건 쉽지 않다. 호주에 있을 땐, 첫째가 학교에 가니 학교 끝나는 3시까지는 둘째만 돌보다 여행 오니 아이 둘을 함께 보니 여러모로 지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에게 허락된 한, 두 시간의 휴식이 얼마나 꿀같았는지. 그런 시간이 있어서, 충전되고, 이렇게 브런치 글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듯하다. 싱글이었을 땐, 육아가 이렇게 힘들지 몰랐다. 애들의 싸움에 지치고, 징징거림에 지치다가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오면 그때서야 나로 돌아오는 것 같다. 길거리를 혼자 걸을 때면, 왠지 혼자서 여행 온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이쁜 카페에 앉아 브런치 글을 쓰면 마음이 평안해진다. 번잡하고 어지러웠던 머리가 서서히 나아진다. 그 길지 않은 시간에 내 마음이 쉬게 되고 충전하게 되니 숙소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그래, 다시 또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이 생긴다. 육아 스트레스에는 커다란 해결책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숨 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 그런 시간이 없는 날이면 육퇴 후 보고 싶은 영상을 보며 머리를 식힌다. 별거 아닌 아니지만 그런 시간이 엄마에겐, 아빠에겐 꼭 필요하단 걸 시간이 갈수록 더 느낀다.


발리에서 혼자만의 시간들. 커피 마시면서 브런치 글을 쓰거나, 마사지 받거나, 자연보면서 멍 때리거나. 이 시간들 덕분에 나혼자 아들 둘 보는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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