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란에서의 일주일을 돌아보면 발리에서의, 그리고 노마드 삶의 적응기간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미 한번 첫째 아들을 데리고 2년 이상 노마드 생활을 해봤기에 어느 정도 예상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첫째가 호주 정규 교육을 온라인으로 받고 있고, 3살이 된 둘째가 있는 노마드 생활은 첫 번째 노마드 생활과는 많이 달랐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버거운 시간들이 몰아쳤고, 그 일주일 동안은 뭐가 뭔지, 우리가 맞는 선택을 한 건지 의문의 의문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새로운 패턴에 적응하느라 아이들도 신경질을 많이 부렸고, 우리 부부도 일과 육아, 아이 공부시키는 모든 과정이 벅찰 때가 많았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어찌 됐든 아이들 위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거 같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만족해야 모두 다 편해지는 여행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짐바란에 있을 때 주변의 키즈클럽이나 애들이 좋아할 만한 곳을 자주 갔다. 거기에 가서 애들이 잘 놀아야 그나마 우리 부부가 쉴 수 있으니 여기저기 리서치해서 돌아다녔다. 첫째는 키즈클럽 가고, 둘째는 낮잠 든 그 틈이 우리에겐 황금 같은 휴식시간이었다. 그때 마신 아이스 라테가 어찌나 맛있었는지.
Mal Bali Galleria에 있는 유료 실내 놀이터
Movenpick 호텔에 있는 키즈 클럽 ( 호텔에 머무르지 않아도 돈을 내면 이용가능하다)
남편이 일하면서 첫째 아들을 공부시키는 게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다. 공부시키는 데 시간이 많이 뺏겨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자 우리의 루틴도 많이 엉망이 되었다. 짐바란에서는 계속 계획을 변경해 가면서 우리에게 맞는 스케줄을 찾기를 시도했다. 남편이 첫째와 공부할 때면 둘째는 어찌나 소리를 지르며 아빠한테 간다고 난리를 치는지. 그래서 둘째를 보려고 수영장에 가면, 첫째는 왜 자기는 공부하고 수영장 못 가냐며 징징거린다. 아, 둘 다 행복해지는 길은 없는 것이니?
암튼 이렇게 노마드 생활 + 온라인 학교+ 육아의 균형을 맞추려다 보니 참 어려운 일주일이었다. 고생한 우리들에게 준 선물은 바닷가에서 선셋을 바라보며 저녁식사하기. 짐바란에서 사실 가장 유명한 게 선셋디너이다. 호주의 물가와 비교하면 엄청 좋은 가격으로 선셋을 즐기며 신선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다. 일주일 머물렀던 짐바란에서의 하이라이트였다. 사실 4년 전에 발리 왔을 때, 차를 빌려서 데이 트립했는데 짐바란에서 선셋 디너를 먹는 게 그 코스 중에 하나였다. 그때 기억이 너무 좋아서 이번에 처음 머무른 곳이 짐바란이기도 했다. ( 발리에 늦은 밤에 도착해서 공항에서 가까운 곳에 머무른 게 더 큰 이유이긴 하다)
비치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데 웬일로 첫째가 징징거리지도 않고 바닷가에서 혼자 놀다가, 조용히 혼자 바다를 바라다본다. 원체 활발할 성격의 아이라 이런 모습이 상당히 낯설다. 자연이 주는 힘이라고 해야 하나. 그 자연의 모습에 압도되어 고요해진 녀석을 보니 마음이 이상하다. 뭔가 7살짜리 아들이 많이 커버린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 이후로도 계속 첫째는 비치에 있는 식당에 가자고 한다. 그게 좋았나 보다. 첫째가 처음 발리 왔을 때는 3살 정도였으니 기억을 많이 하지 못하는 데, 이제 7살이 되니 많을 걸 기억하니 참 좋다. 파도가 점점 차올라 우리 앞에 있던 테이블은 다 없어지고 우리가 비치 바로 앞에 앉게 되었다. 파도 때문에 중간에 유모차도 젖고 가방도 옮기고 했지만 그것 조차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짐바란 비치에서 선셋 디너
몇 주 지난 지금 뒤돌아보니, 그땐 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나 싶다. 물론 그땐 나름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아이들의 징징거림에 지쳐서 제대로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으니, 과거의 날 마냥 탓할 수만은 없겠지만 말이다. 모든 것에는 적응기간이 있기 마련인데, 그 적응 기간을 너무 내 위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어른의 속도에 아이들을 맞추는 건 상당히 무모한 일인데 말이다. 이 모든 건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게 인생의 씁쓸함이지 싶다. 결국에는 다시 또 속도의 문제이다. 이건 지난 장기여행 때 이미 터득했다고 자부했는데. 역시 자만은 피해야 한다. 정말 무서운 게 아 그건 이미 알아,라고 생각하는 게 오산일 때가 많다. 아는 것과 그걸 실천하는 건 별게의 문제일 테니. 이미 지나간 시간은 어쩔 수 없으니 남아 있는 시간 동안 망각하지 말고, 아이들의 속도를 존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