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한나 May 12. 2023

여행의 끝엔 어떤 마음이 자리할까

세 번째 오니 더 보이는 싱가폴

 발리를 떠나 우리의 두 번째 여행지인 싱가폴에 도착했다. 도착한 날 공항에서 부터 정신없었다. 짐을 찾을 때 유모차를 가져오는 걸 잊은 채 나왔다. 클룩으로 미리 예약해 놓은 픽업차를 타러 가는 길에 유모차가 없는 걸 깨닫고는 남편은 운전사한테 연락해서 기다려 줄 수 없는지 연락하고 난 그 사이 열심히 달려 다시 입국장으로 향했다. 예약할 때 운전사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한정이 있어서 마음이 엄청 급했다. 직원한테 물으니,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서 공항에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서류를 받아와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맙소사. 다시 인포메이션 센터로 달려가 서류작성하고 공항직원들이 들어가는 입구로 들어가 다시 가방 검사하고, 심지어 여권도 맡기고 유모차를 찾으러 미친 속도로 달려갔다. 다행히 유모차는 금방 찾았고, 맡겨 놨던 여권도 돌려받고 다시 공항을 100미터 달리기 하듯 달려 남편과 아이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다. 싱가폴 첫날부터 아주 정신이 하나도 없다.


도착한 숙소는 티옹바루 근처여서 세련된 도시의 싱가폴이 아닌 뭔가 예전의 느낌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걷다 보면 벽화도 나오고, 유명한 베이커리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먹을 수 있고 소담한 동네 정경이 마음에 든다.


티옹바루 산책하면서 찍은 사진들

싱가폴에는 대학교 동창이 살고 있어서 그 친구 가족과도 시간을 보내니 아들들이 너무 좋아했다. 여행하니까 온라인 학교를 다니니 또래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친구가 많이 그리웠나 보다. 한번 만나고 나니 친구를 또 만나고 싶다고 계속 징징거린다.


사실 싱가폴에 오니까 저번에 왔던 기억이 생생해진다. 그때, 둘째를 임신한 초기였는데 몸이 안 좋아서 응급실까지 가고 아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계획했던 일정보다 더 오래 있어야 했다.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너무 아파서 싱가폴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누워만 있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옆에서 방방 뛰며 놀고 있는 둘째 아이를 보니, 우려했던 것과 달리 건강하게 태어나 준 것 만으로 충분히 감사하다. 싱가폴에 오니, 둘째가 뱃속에서 잘 싸워준 덕분에 이 세상에 나와 살아주는 것만으로 얼마나 대견한지 느낀다.


저녁 식사 후 클락키를 가니 야경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아파서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던 싱가폴을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롭다. 아들 둘의 손을 잡고 가든 바이 더 베이도 가고, 머라이언 파크도 가고. 다시 찾은 싱가폴은 그때처럼 잘 정돈되어 있고 어딜 가도 너무 깨끗해서 발리와는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전에 가든 바이 더 베이 갔을 때는 뮤직쇼는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맞아서 쇼를 본 게 너무 좋았다. 약간 현실적이지 않게 황홀한 거대 나무들과 시티의 야경, 잔잔한 음악과 화려한 조명들이 어우러진 쇼를 어린아이들도 집중해서 본다. 거의 끝날 때쯤,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리랑이다. 괜스레 마음이 찡해진다. 타지에서 아리랑이 주는 감격이란. 그 순간이 싱가폴에서의 하이라이트였던 것 같다.


 머라이언 파크와 가든 바이 더 베이


어느 날인가, 오래된 내 수영복에 구멍이 나서 수영복을 사러 혼자 오차드 로드에 나갔다.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니 얼마나 신이 나던지. 왠지 혼자 여행 온 기분도 들었다. 화려한 건물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전형적인 도시의 모습이다. 원체 길치인 난 그날도 어김없이 길을 잃어 뒷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뒷골목은 번쩍번쩍한 쇼핑 거리와는 참 많이 달랐다. 그늘 진 곳에 누워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었고, 트럭 뒤에 제대로 의자 없는 곳에서 노동자들이 내리고 있었다. 싱가폴에 또 다른 모습이다. 여기 세 번째 오니 그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모습들이 눈에 더 들어온다. 예를 들면, 푸드 코트에서 일하는 고령의 노인분들 말이다. 푸드 코트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나이 드신 분들이 정말 많이 일을 하고 계신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고령의 노인들이 많이 일하는 나라는 본 적이 없다. 참 신기하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화려한 도시의 이면이다.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남편이 어떤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거기서는 싱가폴이 복지 혜택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나왔다고 한다. 싱가폴에서 사는 친구에게도 물어보니 비슷한 대답을 들었다.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혹은 보여도 그냥 넘기고 만 일들이 여행을 할수록 더 궁금해지고,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런 게 여행의 매력인가 싶다. 할수록 질리는 게 아니라 더 하고 싶어 지고, 더 가고 싶어지는 마력. 여행에 중독이 된 것일까. 우리의 여행의 끝엔 어떤 마음이 자리할까, 궁금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과는 달리 그 찰나의 순간을 온전히 붙잡게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