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에서 차로 한 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다는 편리함과 레고랜드가 있다는 점에서 선택한 우리의 세 번째 도시는 조호바루이다. 지난번에 세계 여행했을 때, 남편이 가고 싶어 했던 곳인데, 내 입덧이 너무 심해지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모든 여행을 멈추고 한국에서 세 달 동안 쉬었다. 그래서 어쩌면 싱가폴 이후에 당연히 갈 곳으로 정한 것 같다. 싱가폴에서 조호바루로 가는 국경을 차로 이동하는 경험은 신기했다. 버스나 기차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짐도 많고 아이 둘이 있으니 차로 가는 게 더 나을 듯해서 예약했는데 좋은 결정이었다. 이민 심사할 때도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차에 앉아서 여권만 보여주면 돼서 엄청 편하게 도착했다.
조호바루에서는 호주에서 온 친구 가족도 만나고, 싱가폴에서 온 친구들도 만나고 해서 아들이 엄청 신나 했다. 레고랜드는 연간 이용권을 사는 게 두 번 입장료와 비슷해서, 연간 이용권으로 사고 세 번 놀러 갔으니 본전 이상은 찾은 셈이었다. 레고랜드에서 첫째는 생애 처음 롤러코스터도 타고, 둘째도 많이는 아니지만 놀이기구도 타고, 난생처음 4D 영화도 봤다. 갈 때마다 6시 끝나는 시간까지 꽉꽉 채워서 놀았다.
친구 가족들과 함께 갔던 레고랜드
마지막으로 갔을 때, 닌자고 쇼(레고쇼)를 봤는데 그 내용 중에 'Journey of the heart'라는 말이 나왔다. 마음의 여정. 우리의 마음은 이 여행을 통해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호주에서 모든 짐을 정리하고, 차도 팔고, 여행 캐리어 몇 개 들고 떠난 지금 우리는 무얼 채우고 있는 걸까. 물론 어려움 점이 더 많을 수도 있고, 아들 둘이랑 하는 여행이니, 고되고 지칠 때가 많다. 그런데도 다른 세상에 대한 열망은 더 강해져 간다. 여행이 남기는 여운이 마음에 채워져, 알고 싶은 세상은 더 많아진다.그리고 닌자고 쇼에서 나온 또 다른 말은 'Unlock your possibility'이었다. 마흔이 넘은 시점이지만 아직도 뭔가 해내야 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다. 아직도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많고, 해낼 수 있는 것도 이 세상에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여행을 하면서 아이들도 그들의 가능성에 대해서 알아가고, 세상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레고랜드에서 봤던 닌자고쇼.
조호바루는 레고랜드를 찾는 가족들이 많아서인지 쇼핑몰에 가도 키즈 카페도 있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옵션이 많아서 좋았다. 확실히 가족들이 여행하기 편한 곳이다. 싱가폴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면 이동가능하다는 큰 장점이 있어 싱가폴에 온 김에 들리기 좋은 옵션인 것 같다. 차로 이동해서 다른 나라에 갈 수 있다는 재밌는 경험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조호바루 다음으로 간 네 번째 도시는 멜라카이다. 차로 이동하는 데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그전부터 관심 있었던 곳이라 쿠알라룸푸르 가기 전에 머물기로 했다. 멜라카에 도착한 날, 호텔 근처에서 대충 저녁 식사를 하러 나왔는데 어마어마한 더위에 놀랐다. 동남아 쪽을 돌고 있어서 무더위에 제법 익숙해졌는데 뭔가 숨쉬기 힘든 더위라고나 할까. 더위에 너무 지쳐 걷기도 힘들어 대충 고른 식당에서 애들과 남편은 식사하고 난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멜라카에서 잡은 숙소는 쇼핑몰과 연결되어 있어서 꽤 편했다. 작지만 수족관도 있고, 키즈 카페도 있어서 더위를 피할 옵션이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멜라카는 포르투갈의 영향도 받고, 네덜란드의 영향도 받은 흥미로운 도시다. 강을 중심으로 산책로가 형성되어 있는데 더위 때문에 낮에는 나올 엄두가 나지 않고 해가 지고 나와 몇 번 산책을 했는데 한밤에도 더위는 여전해서 밤이어도 땀이 비 오듯 흐른다. 그래도 밤에 걸었던 강가 산책은 꽤 좋았다. 풍경도 좋고, 며칠 머리가 아파 호텔에 있다가 나오니 기분이 나아졌다. 걷다 보니 베트남의 호이안과 약간 비슷한 분위기가 있기도 하다. 강가 근처에서 걷다가 둘째 아들은 잠들고 첫째 아들과 셋이 앉아 여름밤에 늦은 저녁을 먹던 시간이 꽤 행복했다. 둘째가 생기고 나선, 이렇게 셋만 보내는 시간이 첫째에겐 소중하단 생각이 든다. 셋이 있을 때면 징징거리거나 짜증 부리지 않고, 아빠와 엄마의 온전한 관심을 받아 사랑스러워지는 첫째를 보면 애틋하다.
멜라카에서 밤 산책
멜라카의 더위에 너무 지쳐 가보고 싶었던 곳을 다 갈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저녁 식사 후, 우연히 걷다가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관광지에 도달한 밤이 있었다. 그렇게 계획이 없이 가게 되어서, 더 좋았던 기억이다. 여행의 묘미 중에 하나는 이렇게 계획하지 않았지만 예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다. 결국 그런 우연들이 차곡히 쌓여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나중에 그리워할 기억들이 늘어난다.
멜라카로 이동하면서 창밖에 풍경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이렇게 장기여행을 하고 있다는 게 문득문득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처음 발리에 있었던 게 꽤 오랜 전 일처럼 느껴졌다. 고작 몇 달 전이었는데 말이다. 그 사이에 반복해서 짐을 싸고 풀고, 남편과다투고, 아이들을 끊임없이 혼내면서 많이 지치기도 했다. 그런데 다른 도시로 이동을 하면 그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과 갈망이 그동안의 고됨을 이겨버린다. 그러니까 이렇게 계속 여행을 이어갈 수 있는 거겠지. 다른 세계, 다른 사람들, 다른 생각들에 대한 호기심이 끊임없이 우릴 자극하고 이끄니까 당분간은 그 이끌림에 우리 마음을 실어보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