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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Aug 19. 2024

자연이 가진 힘은 생각을 비워주는 데에 있는 듯하다

괜찮다고, 더 나아질 거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말레이시아에서 1시간 걸려 비행기를 타고 태국의 푸켓으로 이동했다. 쿠알라룸푸르에서 고생한 기억이 상당해서 여행에 지칠 만도 했지만 웬걸 푸켓에 도착해서 공항에서부터 미소 가득한 태국 사람들을 보니 뭔가 마음이 풀린다. 숙소까지 차로 이동하는 데 1시간 정도 걸렸는데, 새로운 나라의 낯선 풍경을 바라보니 또 기분이 좋아진다. 남편한테 나 정말 여행에 미친 거 아니냐며 자조하는데, 남편도 똑같은 마음이라고 한다. 아무리 여행 중에 예상 못한 일들도 있고, 개구쟁이 두 아들을 데리고 생고생하는 날도 엄청 많은 나날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새로운 곳에 도착하니 다시 엔돌핀이 돌기 시작했다. 


태국에서도 푸켓을 선택한 이유는 이곳이 바로 우리의 허니문이었기 때문이다. 파릇한 신혼이었을 때 온 여행지를 아이들과 다시 오면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허니문으로 왔던 곳이라고 하니 신기해하며 관심을 보인다. 여러모로 심신이 지쳐 있던 우리가 별거하지 않아도 그냥 좀 쉬기도 좋은 곳이었다. 쿠알라룸푸르의 빌딩숲 사이에 숨이 턱 막히는 더위를 경험하다가, 물론 푸켓도 상당히 덥지만 그래도 견디기 꽤 괜찮은 정도라 해야 하나. 바닷가 근처라서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라 그럴 수도 있는 것 같다.



첫번째 숙소는 애들이 좋아할 만한 액티비티가 많고 직원들이 너무 친절해서 만족스러웠다


푸켓에서는 카론비치 근처에 첫 번째 숙소를 잡았는데, 크지 않지만 직원이 아이들 봐주는 키즈 클럽이 있어서 우리 부부가 쉬기에 아주 적합했다. 호텔 키즈 클럽마다 각자 특징이 있는데, 우리에게 가장 좋은 키즈 클럽은 직원이 애들을 봐주는 곳이다. 보호자가 있어야 하거나, 직원이 있어도 애들과 놀아주지 않는 곳도 있는 데 그런 곳은 둘째 아들이 아직 어려서 잘 떨어져 있으려고 하지 않아, 우리 둘 중에 한 명은 같이 있어야 해서 제대로 쉬지 못한 기억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푸켓에서 있던 이 호텔은 직원들이 꽤 적극적으로 애들과 놀아줘서, 마음 편히 애들을 맡길 수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러 호텔 근처로 걸어 나가 식당에 갔는데, 그 식당에 있던 주인 아들과 우리 첫째 아들이랑 정말 잘 놀았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애들은 저렇게 잘 놀 수 있는게 신기했다. 태국어를 하고 영어를 하면서 노는 두 아이,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망설이지 않고 서슴없이 서로에게 다가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아 보였다. 식당에서 나오면서 태국 온 지 며칠 만에 새 친구가 생겼다며 첫째 아들은 신나 했다. 여행을 하면서 좋은 순간은 이런 때 같다. 자연스레 그들의 일상에 스며드는 시간들. 로컬 사람들과 부대끼며 잠깐이나마 엿보고 함께 즐기는 순간들.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가 허니문 왔을 때 머물렀던 카타비치에 놀러 갔다. 벌써 13년이 지났으니,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았다. 정말 놀랐던 건, 우리가 있던 호텔로 가는 길이 정말 번화했었는데, 그 번잡했던 곳이 다 사라졌다는 거다. 상점들이 다 문을 닫았고, 그전에 활기 넘치는 분위기는 온데간데도 없었다. 실로 마음이 허무했다. 지나간 세월이 느껴지기도 했고, 확실하지 않지만 코로나를 못 버티고 없어진 가게들인 거 같아서 슬펐다. 사실 푸켓 뿐만 아니라 발리에 갔을 때도, 코로나 이후에 망한 가게들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도 많았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정말 다르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씁쓸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허니문때 우리 둘이 머물렀던 카타비치를 넷이 되어 다시 가니 기분이 신기했다. 13년이 흘러 많이 변한 카타비치



어느 날인가 푸켓에서 첫째 아들이 영원히 여행하며 살 순 없냐는 질문을 해서 깜짝 놀랐다. 자기가 호텔에서 나오는 영상을 봤는데 어떤 아이들은 학교에 안 가고 여행하면서 세상을 배운다며. 깜짝 놀라서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참,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질문을 많이 한다. 여행하느라 온라인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하도 징징거리길래, 애도 여행이 힘들겠구나 생각했는데, 생각보다는 여행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아이들의 마음은 어른들이 가늠하지 못할 때가 더 많은 듯하다. 



푸켓에서 두 번째 있었던 숙소는 방타오 비치 근처이다. 여기 키즈 클럽은 직원이 있는 게 아니라서 그건 아쉬웠지만 장점은 비치가 바로 호텔 앞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고 수영장도 첫 번째 숙소보다 훨씬 커서 아이들이 물놀이하기 좋았다는 것이다. 호텔에 있는 식당에 앉아서 바로 코 앞에 있는 해변에 노을 진 풍경을 바라보는 게 최고의 힐링 포인트였다. 선셋이 주는 그 위로는 어떤 말보다 나을 때가 많다. 자연이 가진 힘은 우리의 생각을 비워주는 데에 있는 듯하다. 여행하면서도, 여러모로 싸워야 할 것들이 많다. 육아에 늘 부족하게 느껴지는 마음, 엄마의 역할뿐 아니라 첫째 아들을 온라인 학교 공부를 시켜야 하는 상황이라 가뜩이나 부족한 엄마인데 스트레스가 이래저래 쌓여만 갔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해 준다는 죄책감과 공부를 시킬 때 아이와 씨름해야 하니 정신적으로 지칠 때가 많았다. 그래도 그런 날, 가만히 노을을 바라보면, 머리가 비워졌다. 자연은 일일이 내게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충고하지 않지만, 나에게 누구보다 강한 위로를 준다. 괜찮다고, 그리고 더 나아질 거라고.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어쩌면 그래서 여행에서 지치지만 (노마드 생활이니, 육아와 교육을 동반한 여행이기에) 그래도 계속 장기 여행을 하게 되는 것도 문득문득 경험하는 이런 순간들이 그 지친 마음을 이겨버려서 그런 듯하다.


방타오 비치, 가족끼리 조용히 쉬기 좋았던 여행지.  선셋이 주는 힐링 덕분에 재충전의 시간을 잘 보냈다. 여행에도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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